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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
2015-05-23 07:29:10최종 업데이트 : 2015-05-23 07:29:10 작성자 : 시민기자   이대규

'축만제'는 수원의 서쪽에 있는 '서호'를 이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보면 1799년 정조의 명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조성된 호수라고 되어있다. 이는 화성 축성과 함께 가뭄 극복을 위해 조성한 관개 수리시설로 우리나라 근대 농업의 발상지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당시 농사의 중요성과 함께 이곳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표석의 휘호를 보면 넘치는 그 기운이 가슴을 쳐 오르며 마치 오늘을 점지해주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음각된 표석의 글씨를 잘 알아볼 수가 없게 얼룩져 있는 모습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마치 누군가가 진흙물을 찍어 발라놓은 것만 같아 발길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천연바위에 생긴 이끼처럼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가싶었지만, 보기에는 얼굴에 멍든 자국처럼 생겨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1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1
 
정조대왕께서는 축만제를 쌓고 이때부터 지금의 농업기술연구소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농사를 잘 짓는 전국의 농민들로부터 터득한 기술을 써 올리도록 했으며,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 소득을 높이기 위해 정조대왕 자신이 직접 윤음을 써서 내렸다고 한다. 
이때 윤음을 쓰느라 며칠 째 밤을 새며 닭 울음소리를 듣는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고 하니 애민 군주의 마음이 읽혀져 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어찌 이곳 수원을 위한 것 만이었겠는가. 하나의 시범도시로 하여 국가발전을 위해 확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날은 날씨가 매우 흐려서 물빛도 흐렸다. 그동안의 가뭄이 해소되어 충분한 수량을 보이고 있는 호수 가운데 인공 섬은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사람이 범할 수 없는 천계를 보는 듯 했고, 이곳에 사는 새들이야말로 정조대왕의 후광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만 같아보였다. 천석만석의 일용할 물고기들을 호수에 물 반, 고기 반으로 천년만년 그렇게 자기들 맘대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2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2

제방아래 서둔들에서는 트랙터가 논을 갈고 농부들의 일손도 더없이 바빴다. 하얀 찔레꽃이 향기로운 제방을 거닐며 바라다본 서호와 서둔들의 풍경은 잘 조화된 한 폭의 그림 같았다고 할까. 오행이나 풍수지리는 볼 줄 몰라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풍요를 느끼게 해주었다. 

실로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그때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릿고개를 잊게 해준 더없이 우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고마운 존재였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고 있어 입맛을 좇아 품종을 개량하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농업생산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곳이 바로 여기 서호 축만제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무엇보다 농촌진흥청의 이전으로 하여 이곳 농사시험장도 어디 옛날만 같으랴싶었고, 허전한 마음에 나는 '여기산' 아래 자리 잡은 옛 농촌진흥청 건물들을 향해 자꾸만 시선이 끌려가고 있었다.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3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3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여 호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찾아가보기로 했다. 전에는 이곳 '항미정' 앞에서 샛문을 통해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물통에 굳게 잠겨 있어 별 수 없이 멀리 돌아서 들어가야만 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나간 집' 같다고 하였을 것이다. 쓸쓸한 가운데 휑하니 누가 보아도 이곳은 나간 집 자체였다. 

넓은 잔디밭과 길가에 늘어선 매실나무에는 벌써 수확할 정도의 굵은 매실들이 주렁주렁 눈길을 끌었다. 
숲속의 요정처럼 나는 두리번거리며 언젠가 오래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농업과학관'앞에 가보았다. 현관문은 굳게 닫힌 가운데 전북 혁신도시 이전에 따른 휴관 안내문만 붙어있었다. 
'그동안 수원에서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전북 혁신도시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겠습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울컥해오는 심정은 아마 수원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4
서호를 돌아서 옛 농촌진흥청 가보니_4

이는 우리 농업사의 일대 반란이거나 혁명일 것만 같았다. 그 허전한 마음 가눌 길이 없던 나는 '탑 라이스'라고 하여 밥맛이 좋다는 소문에 몇 번 찾아오기도 했던 구내식당으로 가보았다. 다행이 문은 열려있었고, 식사 시간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있어 근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농촌진흥청은 떠났지만 함께 있던 '농업기술 실용화재단'과 '식량과학원'등 일부는 아직 남아 있다며, 식당을 이용하는 직원 수는 전에 비해 3분의1정도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식당도 떠날 것이라며, 체육시설로 바뀐다고 말했다. 역사의 맥이 끊긴 것만 같은 허탈감에서 시민들의 마음이 어서 치유될 수 있도록, 이곳에 새로운 공원이 조속히 들어서기를 기대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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