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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에 진달래꽃 절경
수원의 꽃, 진달래가 절정이네요
2015-04-12 01:54:35최종 업데이트 : 2015-04-12 01:54:35 작성자 : 시민기자   이명선

유독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좋아하셨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이맘때면 생각난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시고 봄이 오는 날이라며 칠판에 하얀 백묵을 꾹꾹 눌러가며 김소월의 시를 쓰셨다. 그리곤 눈을 감고 '나 보기가~ 나 보기가 역겨워~'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으시는데 이제 청춘의 꽃물이 살짝 들기 시작하는 우리들이 보기에도 사연 많은 시였음이 느껴졌다. 특히나 처음 시작하는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나 보기가'를 꼭 두 번 연속으로 이어서 읊으시는데 왜 두 번 하지? 하는 의아함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분위기에 취해 여쭙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우리들의 입에서도 자동적으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시구가 읊어졌음을 보면 꽤 오랫동안 진달래꽃을 입에 달고 산 듯하다.

칠보산에 진달래꽃 절경_1
연분홍 봄바람이 부는 진달래꽃

이른 봄볕이 따스한 곳이면 어디든 피는 꽃이 진달래이다. 말갛게 세수한 모양새로 살짝 홍조를 띈 꽃잎을 보노라면 수줍은 처자모습도, 엄마모습도 참 많이 닮았다. 겨우내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따사로운 햇살 한 줌에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땡글주먹 쥔 꽃망울이 매달린다. 화사한 애달픔이 자홍빛으로 피어나 과하게 진하지 않은 색이라 좋다. 혼자보단 무리지어 핀 진달래꽃을 보면 더 좋다.

누구나 한두 가지쯤은 진달래에 얽힌 추억들이 있을 정도로 친숙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진달래는
'두견화, 참꽃'이라 불리는데 내 고향에선 창꽃이라 불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십리 길, 그 길에서 진달래꽃을 엄청 따먹었다. '봄 사돈은 꿈에도 보기 무섭다' 할 정도인 봄의 보릿고개를 풀어준 것 중의 하나가 진달래였다 하니 얼마나 많이 따먹었을지 짐작이 간다.

간혹 철쭉과 헷갈려 피는 시기가 우연히 겹친 철쭉을 따먹고 배탈이 나는 아이가 한둘씩은 꼭 있었다
. 어른들은 혹여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함인지 진달래꽃이 무리 지어 핀 뒤쪽에 **병 환자가 있다고 해 한동안 겁을 먹고 진달래꽃 근처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무서움 뒤로 철쭉꽃을 먹고 배 아파 학교에 가지 않는 그 아이가 마냥 부러워 나도 한 움큼 철쭉을 집어 들었으나 그 꽃을 차마 넘기지는 못했다. 이것도 구분 못하는 바보라며 애꿎은 그 아이 흉만 보았다.

여학생들은 가사 실습시간에 꼭 한 번씩은 진달래 화전을 만들었다
. 하얀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동글한 모양으로 빚은 후 약한 불에 익히면서 다른 한쪽 면에 꽃술을 떼어낸 진달래꽃을 살포시 올려놓으면 완성이다. 눈과 입이 즐거운 진달래 화전을 한 입 베어 물면 봄이 입안에서 토도독 터졌다. 봄나물을 캐러 산으로 들로 다니며 보았던 진달래가 꽃전이 되어 입으로 들어오는데 어찌 맛나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 예전에 먹었던 화전이 그리워 아이들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 '꽃달임'이라고 불리며 진달래꽃을 얹어 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달콤한 꿀을 발라먹는 화전이 동난 기억 이후로 다시 화전을 만든 기억이 끊겼다. 이제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들어줄 아이들은 없지만 그 맛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손끝에 화전을 올리며 봄의 색을 내고 싶다.

칠보산에 진달래꽃 절경_2
진달래는 꽃이 먼저, 철쭉은 잎이 먼저 나온다

진달래꽃싸움을 한 기억도 있다. 진달래의 수술은 십여 개이고, 암술은 긴 것이 하나 있는데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맘에 드는 꽃술을 골라 서로 잡아당겨 끊어지지 않으면 이기는 것이다. 승부가 날 때까지 몇 번이고 번갈아 가며 꽃싸움을 했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가방을 들고 갔던 벌칙이 어렴풋하다강한 꽃술을 찾는다고 진달래꽃을 수도 없이 땄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그 싸움이 꽤 재미있었던 듯하다
특별히 무언가를 이용해 놀만한 문화가 없었으니 주변의 자연물이 놀이도구였다. 닌텐도라는 손바닥만 한 세상에 몇 시간이고 빠져 있는 지금의 아이들은 전혀 상상도 못한 재미없는 게임이지만 그땐 어떤 것보다 흥미진진했고 스릴 넘쳤던 게임이었다. 꽃술의 위력이 셀수록 더 신났던 게임이자, 놀이였다.

한 짐 가득 나무가 들어있던 아버지 지게 위로 예외 없이 가장 먼저 보이던 것도 진달래꽃묶음이었고
, 방울방울 매달린 진달래가지를 병에 꽂아 두어 산야의 진달래보다 조금 빨린 꽃을 볼 수 있게 해주신 것도 아버지의 작은 배려였다.

겨울채비를 하며 코스모스를 눌러 붙인 창호지가 장난기 많은 동생들로 인해 구멍이 난 경우
, 운이 좋으면 진달래꽃이 새겨지기도 했다. 색이 연한 진달래꽃이 창호지를 장식하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예쁜 누름꽃이 되는 경우에는 옆에서 한몫 거들었다. 문틀에 발라진 창호지에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서 창호지를 향해 물을 뿜으면 무지개가 작은 물 입자 사이로 뜨면서 쭈글쭈글한 창호지가 팽팽하게 펴졌다. 손가락 넣은 구멍이 생기기 전까지는 연분홍의 진달래를 계속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칠보산에 진달래꽃 절경_3
진하지 않은 진달래꽃더미

집 뒷산 칠보산에서 올해처럼 많은 진달래꽃을 본 경우가 없었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보이는 곳마다 진달래꽃천지다. 지나던 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누군가에게 물으니 작년에 산의 덤불도 제거하고 산자락을 정비했더니 올해 이리 많은 진달래가 피는 것이라며 20여 년 만에 처음이라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참말 그러하다. 지저분하고 보기 싫게 잘려져 여기저기 뒹굴던 잔솔도 안 보이고, 깔끔하게 새 단장을 한 산의 모습이 보기에도 시원해보였다. 생태습지 지역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도 있고, 친환경 공법으로 산림 상태를 복원한 지역이란 표지도 있다.

칠보산에 진달래꽃 절경_4
칠보산을 찾는 사람들

이제 움트기 시작한 새순들이 연초록으로 산야를 칠하고 있는 중에 마르고 앙상한 가지 끝에 만개한 진달래꽃이 절정이다. 봄 한철 격정스럽게 피어나 도심의 도로가엔 벚꽃 외에 다른 꽃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데, 멀리서 바라보아도 고운 분홍색의 자태가 드러난 진달래꽃은 이곳 칠보산에서 아름다움으로 눈부시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유치원생들의 알록달록한 봄나들이가 유쾌한 미소로 내게도 전달이 된다.
진달래꽃이 대기오염에 약하다니 오래도록 진달래의 봄빛에 물들려면 우리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특히나 수원의 꽃, 진달래를 짧은 봄날의 시간보다 길게 보려면 흔한 꽃이라는 생각보다 더 많이 심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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