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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
2015-04-13 17:11:52최종 업데이트 : 2015-04-13 17:11:52 작성자 : 시민기자   공석남

오랜 기다림으로 반갑게 만났다. 겨울 지나 봄을 맞는 나는 몸살을 앓았다. 나무나 새싹처럼 뭔가 내 놓을 것도 없는데 계절을 탄다. 따스한 날씨 덕에 광교산 진달래꽃을 보러 갔다.
잠자던 숲이 환하게 깨어났다. 도로엔 벚꽃으로 화려하고 숲엔 눈 뜨는 나무들과 진달래로 을씨년스런 날씨를 날려 보낸다. 또한 사람들의 물결도 곱다. 어린아이와 강아지들도 재잘거리는 숲길이다.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1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1

햇살 받아 빛나는 진달래를 보며 웃음 띤 얼굴엔 걱정도 시름도 없다. 그저 행복한 모습이다. 진달래꽃이 피면 내 유년은 무척 바빴다. 바구니 하나 들고 뒷동산으로 간다. 시골은 지금처럼 오염된 곳이 아니었다. 청정지역이었고 그냥 꽃잎을 따 먹어도 좋았다. 봄이면 아카시아나 진달래 꽃잎을 먹으며 자랐다.
엄마는 진달래꽃 잎으로 꽃술을 담갔다. 언니랑 꽃잎을 따오면 찹쌀로 밥을 하고 누룩을 넣고 꽃잎을 함께 비벼 항아리에 넣었다. 아랫목에서 술이 익을 동안 이불을 덮어 놓았다.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용수를 넣어 청주를 떴다. 그 빛깔은 어떻게 형언할 수 없이 고왔다. 

엄마는 숙부님이 술을 좋아하셔서 갖다드리러 가셨다. 언니와 나는 엄마 몰래 그 술 맛을 보고는 쓰다고 뱉아 버렸다. 헌데 언니가 '당원'이라는 감미료를  넣어서 다시 먹어보라 했다. 우린 야금야금 먹다가 둘이는 그대로 쓰러져 아침까지 잤던 기억이 있다. 무척 혼나긴 했지만 진달래술을 그렇게 마셔본 기억이다.
전에는 집에서 술도 담갔지만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한 꽃잎이다. 화전보다는 꽃술을 마시고 세상모르고 잤던 일이 진달래만 보면 생각난다. 진달래는 엄마의 꽃이었고 고향생각을 불러온다. 그 꽃에는 유년의 아릿한 기억이 숨어있다. 철부지 어린 아이가 있고 사랑하던 가족들의 숨결이 들린다. 

어디나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어난다. 어느 봄날 관악산에 갔다가 친구가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너덜거릴 때, 난감했던 기억이다. 내려가기도 그렇고 올라가자니 등산화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뒤에서 그걸 본 분이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 단단하게 매 주었다. 얼마나 고맙고 황송했는지 모른다.
등산복에 부착된 허리띠였다. 그것은 넓고 질겼다. 우린 생각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허리띠도 없는 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친구는 그 발로 겅중겅중 뛰면서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더니 조금 위에 한 무더기 피어있던 진달래를 조심스럽게 꺾어 화환을 만들었다.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았다. 쓸모없는 운동화 끈으로 몇 송이씩 묶어서 동그랗게 만들어 그분의 머리 위에 얹어 주었다. 진달래 화관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할 수가 없었다. 우린 큰 박수를 쳤고 그 분도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화관을 써보기는 처음이라며 웃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짜리 엄마였다. 아이가 보고는 저 달라고 했다. 어려울 때 힘을 준 그분도 봄이면 진달래 속에서  피어난다.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2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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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3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3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아이들도 신나게 걷는 길이다.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삼림욕장으로 더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진달래가 핀 길은 어른이고 아이고 모두 즐겁다. 아장아장 걸음연습을 하며 신나하는 쌍둥이를 만났다. 참으로 귀여웠다. 활짝 핀 진달래 옆에서 눈웃음치는 얼굴이 귀엽다. 
저희끼리는 뭐가 통하나 보다. 살짝 디카를 디밀자 만져보고 싶은 듯이 한 손을 내민다. "한 번만" 하자 살짝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온 산을 물들이는 진달래다. 아이의 맑은 눈과 잘 어울린다. 잎이 나고 줄기에 힘이 뻗을 나무로,  아장아장 걷는 걸음이 뛸 수 있는 힘을 내게 주듯이 봄은 시작의 의미를 준다.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4
진달래가 깨우는 광교산_4

광교산 숲길에 붉게 피어난 진달래는 겨우내 참았던 기쁨을 토해내는 빛이고, 세상과 첫눈을 맞추는 부끄럼의 빛일지도 모른다. 새색시처럼 고운 볼에 앉은 수줍음처럼 잔작하다. 잎보다 먼저 내민 꽃봉오리는 그 하나로서도 제 빛을 안고 있다.
눈에 확 띠는 그런 멋도 아니지만 은근히 사람을 끄는 매력을 담고 있다. 한번쯤 그 옆에 서보고 싶게 한다. 잘난 체 하지 않으며 누구든 포용하는 힘을 발산하는 빛이다. 그러기에 봄날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겨울 숲을 헤치고 첫 선을 보인 것이리라. 꽃샘추위를 견디고 한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숲길에 나온 진달래를 보러 발길을 재촉하나보다. 다소곳이 숙인 듯 꽃 이파리 아래 기쁨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좋은 꽃과의 인연은 아름답게 오래도록 남는다. 해마다 피는 꽃을 보며 그날들을 떠올리곤 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광교산으로 모인다. 아직은 한창이다. 지기 전에 진달래의 예쁜 모습을 담기 위한  손길이 바쁜 하루였다. 셔터를 누르는 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등산화의 저벅거리는 소리가 광교산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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