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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
봄꽃 절정 뽐내는 이목동 삼풍농원 앞 천변로
2015-04-07 15:03:38최종 업데이트 : 2015-04-07 15:03:3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미국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죽어 있던 땅에서 어렵사리 라일락꽃을 키어내야 했기에, 차라리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준 겨울이 따뜻하다고 역설했다. 
황무지 행간 구절처럼 봄비가 잠든 뿌리를 뒤흔든 것일까. 4월 초순 한차례 봄비가 내리더니 봄의 절정 꽃 잔치로 가는 곳마다 눈이 부시다.

특히 이곳, 이목동 삼풍농원 앞 천변은 경이로울 정도다. 천변으로 축축 늘어진 능수벚꽃과 샛노란 개나리가 만발했다. 신(神)이 색채의 마술을 부렸다. 인간의 솜씨론 이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빚어내지 못하리라.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천변 위 꽃 터널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세계요, 신선이 노니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세상이다.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1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1

"저쪽 삼풍 농원 한번 들어가 볼까나?"
수원에서 나고 자란 선배가 알려준 덕분이다. 그냥 스쳐 지나간다면 절대로 만나볼 수 없는 슈퍼-뷰 공간이다. 꽃 멀미가 날 정도로. 수원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 만난다. 30여 년 전 수원에 정착하면서 차를 타고 수없이 지나치면서 보아온 '삼풍 수영장'이었지만 발걸음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영장 들어가는 입구에 아주 정겨운 풍경이 눈길을 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영업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크리넥스 티슈 크기만한 창구와 함께 입장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선배를 따라 농원으로 들어서다가 이 찬란한 천변 풍경을 마주했다. 
마음으로 눈으로 한껏 담으라는 내면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손은 카메라 셧터를 누르기 바쁘다.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2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2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3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3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가꾸지 않아 더 아름다운, 그자체로도 빛나는 봄꽃의 향연이다. 꽃망울에서 '팡 팡 팡' 절정을 향해 터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흠흠 코를 연신 벌름거린다.
꽃의 이끌림에 따라 농원 안으로 들어선다. 영화로웠던 옛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연못가에서 한참을 서성거린다. 규모가 상당히 큰 정원을 따라 꽃들이 만개했다.

"당시 청춘 남녀 데이트 장소로 이곳 노송지대와 서둔동 푸른지대가 가장 인기였지. 나도 혼인하기 전 아내와의 첫 데이트 장소로 여길 찾아왔으니까. 지금은 규모가 꽤 줄어든 거지만 당시엔 최첨단 가든으로 유명했지. 옛날엔 여기서 결혼식도 꽤 했는데... 지금은 멋진 웨딩홀에서 모두들 하지만."

에버랜드 등 인근에 놀이공원이 생기면서 그 값어치가 떨어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선 럭셔리했을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운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분이 꽃담을 손질하는 것을 보니 관리는 이어지는 듯하다. 이곳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아련한 향수에 젖을 것 같다.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4
수원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있었나요?_4

정다운 아날로그 추억의 공간에서 나와 다시 천변 꽃 터널로 눈길을 둔다. 봄날 오후의 조용한 시간, 침묵의 시간을 깨고 장년의 남자가 터널을 가로 지른다. 아무리 봐도 신선의 세계다. 저곳을 통과하는 순간 어쩌면 선계나 앨리스가 겪은 이상한 세계로 들어갈지 모르겠다. 그러고 싶다. 저토록 찬란히 빛나는 풍경이니 이상한 나라면 어떻고, 안견의 몽유도원이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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