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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의 ‘수원처녀’ 아시나요?
1972년 제작된 레코드판에 담겨…75년 영상 속 서노대‧화성장대 모습 보여줘
2019-01-30 14:45:29최종 업데이트 : 2023-09-15 14:16:5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철쭉꽃 딸기 꽃이 초원에 피면은/ 타네요 수원처녀 가슴이 타네요/ 달뜨는 호반 길 임과 놀던 길/ 첫사랑을 맺어놓고 멀리 떠난 사람아/ 서장대의 푸른 꿈을 잊으셨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포도 익을 때면 설레는 그 마음/ 꽃다운 수원처녀 가슴을 달래요/ 달 밝은 호반 길 임과 걷던 길/ 행복주고 사랑주고 멀리 떠난 사람아/ 서장대의 푸른 꿈을 잊으셨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노래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며칠 전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주인장이 이미자의 '수원처녀'라는 노래를 불렀다. 함께 한 친구들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기자는 처음 들어 봤지만 다른 친구들은 여러 차례 들어서인지 잘 알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사를 보여줬다.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수록된 1972년 레코드판 / 사진제공 윤의영씨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수록된 1972년 레코드판. 사진제공 윤의영씨

검색하다 보니 약 3분가량의 유튜브 동영상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젊은 시절의 이미자가 수원화성 화성장대와 서노대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어서 관심이 갔다. 영상이 시작되는 전주 부분은 서암문 옆 서포루 방향에서 팔달산 서쪽과 서노대를 찍은 모습과 이어서 정조대왕 능행차 모습도 보였다. 주인장은 1960년대 후반에 처음 부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영상의 배경인 수원화성은 1970년대 후반에 복원된 것이다. 간단히 인터넷을 통해 조회해 봤지만 주인장의 기억과는 차이가 있었다. 술자리에서의 관심은 이 노래가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와 동영상의 제작시기였다. 친구들의 시선이 기자에게로 집중됐다. 기자가 정확히 밝혀보라는 것이다.

이후 수원관련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윤의영(화성연구회)씨로부터 레코드 사진을 받았다. '수원처녀', '잊을 수 없다'가 타이틀곡인 백영호 작곡집이다. '수원처녀' 등 이미자 노래 3곡, '잊을 수 없다' 등 남진 노래 3곡, '나는 어쩌나' 등 김부자 노래 2곡 등 총 10곡이 수록된 레코드판이다. 이 레코드판은 1972년 5월 30일 지구레코드공사에서 발매한 것이다.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수록된 1972년 레코드판 / 사진제공 윤의영씨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수록된 1972년 레코드판. 사진제공 윤의영씨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관련 기록을 찾아봤다. 수원처녀는 이용일 작사, 백영호 작곡으로 1972년 5월 30일 이미자의 노래로 발매된 것이 맞는 것 같다. 수원처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소양강처녀가 있는 것 같다. 2008년 9월 1일자 수원일보 기사에 의하면 춘천시장으로 재임했던 원병의씨가 1971년에 제10대 수원시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소양강처녀'처럼 수원을 대표하는 애창곡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문화공보실에서 근무했던 정광희 전 팔달구청장은 "노래를 만들어 다방, 요정 등에 무료로 나눠줬다. 그런데 히트를 못 쳤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수원문화원 기록에는 "수원을 노래한 음악 중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대표적인 곡인데 1972년 수원시 공모에 당선된 곡으로 당시 시비 200만원을 들여 음반을 제작, 각 시도와 관내 다방, 유흥업소에 배부해 보급시켰다"라는 전 e수원뉴스 김우영 편집주간의 글이 나온다. 
이미자가 수원처녀를 부르는 동영상, 정조대왕 능행차 행렬 뒤로 현수막에 흐릿한 글씨가 보인다. / 사진은 유튜브 영상 캡쳐

이미자가 수원처녀를 부르는 동영상, 정조대왕 능행차 행렬 뒤로 현수막에 흐릿한 글씨가 보인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한편, 이미자가 수원화성 화성장대와 서노대를 배경으로 수원처녀를 부르는 동영상은 레코드 판이 나오고도 몇년 후인 1975년 10월 중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영상 속 정조대왕 능행차 행렬 뒤 흐릿한 현수막에 '제5회 전국 가축 품평회'라는 글귀를 통해 제작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경기도 멀티미디어 자료실'에서 1975년 10월 17일자에 찍은 같은 내용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1975년 10월 15일 제12회 화홍문화제(현 수원화성문화제) 행사 때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가 있었다. 노래 영상이 여러 시기에 편집된 것이 아니라면 1975년 10월 15일 촬영한 것이 맞을 것 같다. 영상 속의 이미자 모습도 30대 초반인 것으로 보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상 촬영일이 1975년 10월 15일인데도 수원화성 화성장대, 서노대 부근이 완벽한 모습은 왜일까? 수원화성 복원 백서인 '수원성복원정화지'에 의하면 수원화성은 1974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의 복원 지시가 있었고 1975년 5월 착공해 1979년 9월 완공했다. 복원공사는 4단계로 나눠 진행했는데 1975년 1단계 1차 복원공사는 장안문에서 서장대까지, 2차 복원공사는 서장대에서 팔달문까지 완료했다.
동영상 속 현수막의 글씨와 같은 내용의 사진, 1975년 10월 17일 찍은 사진 / 사진은 경기도 멀티미디어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동영상 속 현수막의 글씨와 같은 내용의 사진(1975년 10월 17일 촬영).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기록으로 봤을 때 화성장대와 서장대 주변은 1단계 1차 복원공사 현장이었고 10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화성장대와 서노대는 1971년도에 이미 복원이 되었다. 아마도 동영상 속의 화성장대와 서노대는 1971년에 복원된 것이고 주변 성벽과 여장은 1975년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화성장대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794년 9월 29일 완공됐고 1795년 윤2월 12일 정조대왕이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을 지휘했던 곳이다. 1920년대에 소실된 것을 1971년부터 복원공사를 하던 중 준공을 앞두고 벼락을 맞아 부서져 1973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1994년 5월 7일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12월 5일 복원됐다. 2006년 5월 1일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2007년 4월 6일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성장대 현판도 정조대왕 친필 현판이었던 것이 1973년에 박세림 서예가의 한글 글씨로 바뀌었다가 불에 탔고, 1994년 양근웅 서예가의 글씨로 바뀌었다가 불에 탄 이후 2007년 복원할 때 정조대왕이 원래 썼던 글씨로 걸었다.
 
이미자가 부르는 동영상 속 수원화성 화성장대와 서노대 / 사진은 유튜브 캡쳐

이미자가 부르는 동영상 속 수원화성 화성장대와 서노대. 사진/유튜브 캡쳐

단순히 수원처녀란 노래와 동영상의 배경을 추적하다보니 수원화성의 복원과정과 화성장대 비운의 역사까지 알게 되었다. 귀중한 문화재가 여러 차례 방화로 소실된 전례가 있는 것으로 봤을 때 CCTV에만 의지할게 아니라 문화재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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