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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개간을 위한 정조대왕의 지혜
‘수원길 七色효행길’ 만석거에 서다
2014-07-31 22:17:28최종 업데이트 : 2014-07-31 22:17:2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파장시장을 지나 한참을 걸어 만석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는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七色 효행길'은 호수 옆 산책길을 따라 이어진다. 산책길은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총길이가 1300m로 남녀노소 모두가 걷기 편한 길이다.

황무지 개간을 위한 정조대왕의 지혜_1
만석거 산책로

만석공원에 있는 저수지의 이름은 만석거다. 만석거는 정조대왕이 수원을 신도시로 건설하면서 장안문 북쪽에 있는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만든 인공 농업용수 저수지다. 수원화성 성역이 한창이던 정조 18년 전국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농민들은 고통을 겪었다. 넓은 땅은 있으나 물이 부족하여 황무지나 다름없이 버려진 이곳을 수원화성에 터를 잡은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 먹고살수 있도록 황금 옥토로 바꾸기 위해 저수지 축조를 결정했다.

황무지 개간을 위한 정조대왕의 지혜_2
만석거 저수지

만석거는 축조결정이 있던 다음해 3월 1일 공사가 시작되어 5월 18일 완공됐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 삼남지방은 전부 가뭄의 피해를 입었으나 만석거 인근은 저수지가 완공되자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척박했던 땅이 황금옥토로 변했고, 만석거의 농업용수를 이용한 수원의 들녘은 풍년의 효과를 거두었다.

저수지 한 가운데는 인공 섬을 만들었다. 섬은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섬을 만들어 새들의 보금자리를 건설한 것을 볼 때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겼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여기산에서 여름을 나는 철새 백로들이 많이 찾고 있다. 백로는 수원의 새로 지정된 시조(市, 鳥)로 보호되고 있다.

현재의 호수 크기는 인근지역 농토의 농업용수 확보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 현재는 만석공원이 개발되면서 야외음악당, 쉼터, 잔디밭, 주차장, 자전거 도로, 산책로 등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원래 크기의 3분의 1만이 남아있다.

해가 서산에 걸려 뜨거운 열기의 세력을 잃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민들은 태양의 열기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나 양산을 펼치지 않고 산책에 나서고 있다.

황무지 개간을 위한 정조대왕의 지혜_3
영화정

산책에 나선 시민들을 따라 걷다보니 호수 산책길 1300m를 한 바퀴 돌았다. 만석거 둑에는 무궁화가 활짝 피어 꽃길을 이루고 있다. 만석거 동쪽에는 영화정이 있다. 영화정은 만석거가 완공된 정조 19년 병진년에 중건된 건물로 이곳에서 신구관(新舊官) 부사 유수들이 거북모양의 관인(官印)을 인수인계하고 업무를 시작하였던 곳으로 일명 교구정으로도 불리었다. 현재의 영화정은 서남쪽에 8칸의 평면구조를 하고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황무지 개간을 위한 정조대왕의 지혜_4
남수문 모형 다리

만석거 동쪽 상류에는 수원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의 수문인 남수문 모형의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9개의 수문이 있는 남수문은 수원화성 남수문이 복원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석공원 산책길을 벗어나자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을 참배하기 위해 길을 걷던 능 행차 행렬이 재현되어 있다.

만석거 축조는 농업으로 백성의 삶을 유지해 가던 시대의 대역사였다. 정조대왕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단순히 백성의 이주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 되었던 농업 생산에 많은 관심을 가진 성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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