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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
2014-05-13 11:12:31최종 업데이트 : 2014-05-13 11:12:31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나는 이 골목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利害)가 없다/그래도 골목은 늘 나를 받아준다/삼계탕집 주인은 요새 앞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다/나이 먹어가지고 싱겁긴/그런다고 장사가 더 잘되냐/아들이 시청 다니는 감나무집 아저씨/이번에 과장 됐다고 한 말 또 한다/왕년에 과장 한번 안해본 사람······ 그러다가/나는 또 맞장구를 친다/세탁소 주인여자는/세탁기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나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피차 미안한 일이다/바지를 너무 댕공하게 줄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골목이 나에 대하여 뭐라는지 모르겠으나/나는 이 골목 말고 달리 갈 데도 없다/지난밤에 이층집 퇴직 경찰관의 새 차를 누가 또 긁었다고/옥상에 잠복을 하겠단다/나는 속으로 직업은 못 속인다면서도/이왕이면 내 차도 봐주었으면 한다/다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몰라도/어떻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고/누군가는 이 골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국 시인의 '골목 사람들'이란 시(詩)다. 다소 길어 행간 몇 줄만 인용하려다 아니다 싶어 전체를 다 올렸다. 생동감 넘치는 골목길의 풍경이 그대로 전달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곱씹을수록 수원의 원도심인 행궁동 일대 골목길 풍경과 겹쳐진다. 물론 여느 골목길풍경이 다 고만고만하겠지만 시인의 자조 섞인 넋두리처럼 '왕년에 과장 안해본' 사람이나 '이 골목 말고 달리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이 이곳 행궁 마을에도 다수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 골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시인의 종언(終言)처럼 이들 역시 마을의 일원으로서 골목길의 주인공이다.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3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3

"아, 우리마누라 궁둥이 찍으려고? 별로 안 예쁜데...."
"아이쿠 알겠습니다. 아버님 상추가 참 싱싱한 것이 맛있겠어요. 이따가 어스름이 오면 훔쳐가야겠는 걸요!"
"그렇게 하세요. 솎아가면 더 좋아요."

담장 아래 도시텃밭에 상추 고추 부추 쑥갓이 실하게 컸다. 점심때 삼겹살이라도 구어 드실 요량인가. 노부부는 당신들이 먹을 만치만 뜯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겨워 외지인이 카메라를 들이미니 남편은 당신의 아내를 예쁘게 찍으란다. 게다가 상추도 솎아서 뜯어가란다. 야박한 세상이라더니 그건 뉴스에나 나오는 말인가 보다.

지난해 9월 '2013 생태교통 수원' 페스티벌을 성공리에 마친 행궁동 마을 골목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축제 이후 행궁마을은 당시보다도 더 찬란하게 변신했다. 
지금은 길마다 꽃 대궐이다. 노부부의 자투리 텃밭처럼 꾸며진 공간이 수두룩하고 담장으로 이어진 골목길이 온통 봄 길이다. 꽃들이 난만한 쌈지공원은 누구나 쉼터로서 최상급이다.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1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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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2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2

행궁동 공방거리부터 이곳 생태교통 마을까지 걷노라면 어느 하나 똑같은 데코가 없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이라지만 품격이 다르다고나 할까. 입소문이 나 여행객이 많이 다니는 공방거리는 화려함으로 무장하고 젊음을 뿜어내는 청년들이다. 반대로 이곳 생태교통 행궁마을은 중년의 묵직함으로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거미줄처럼 길과 길로 엮어져 이룬 골목길 행궁마을, 마을의 변신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걸려서 되는 것은 아닐 터,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행궁마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늘 골목 어귀에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들, 자가용의 난립 등으로 사람들의 통행에 지장이 갈 정도로 어수선하던 골목길이 변화되기까지 이웃 간의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났었다. 
이제는 '내 탓이요, 네 탓이요'를 하기 전에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치우고 그 자리에 꽃을 심었다. 맑고 고운 풍경이 행궁마을 도처에 숨어있다.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4
행궁마을 골목길 풍경은 '화해'다_4

어느덧 5월 중순이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고통의 눈물이 이제는 말랐거니 생각하다가도 팽목항의 이야기만 떠올리면 금세 눈자위가 빨개지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하는 소리가 이명처럼 울린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성찰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즈음 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성당 등 종교시설에 의지하여 아픔을 위로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걸으면서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갖자. 지금 이 시간 행궁마을 골목길은 침묵 속 고요다. 세상사 모두 담고 있는 이곳에서 슬픔으로 상처 난 마음 편안히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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