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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궁과 같이 편안한 광교산
수원의 과거와 미래가 있는 곳 광교생태마을
2013-01-18 00:34:32최종 업데이트 : 2013-01-18 00:34:32 작성자 :   

어머니 자궁과 같이 편안한 광교산_1
광교산 입구 광교저수지에서 바라 본 광교산

사람들은 광교산 능선을 어머니의 자궁이라 표현하며 영원한 안식처라 말한다. 그것은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말발굽 모양, 항아리 모양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수원의 생명을 잉태하고 문화를 탄생시킨 물의 발원지가 있기 때문이다. 광교산 능선은 수원을 탄생시킨 자궁인 셈이다. 그 근원은 물이다.

물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 물을 따라 또 생명이 모여들고 집단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이룬다. 물은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 모두의 DNA가 녹아있는 곳, 지역문화의 뿌리가 살아있는 곳이다. 광교산 자락은 그 물을 품고 있다. 

광교산이 머금었다가 뿜어내는 물은 원천지천, 수원천, 서호천, 황구지천 등의 이름으로 수원의 대지를 적시고 수원비행장 부근에서 하나로 모여 화성과 오산을 거쳐 평택을 지나 서해바다로 빠져나간다.

그 중 수원천은 흥미롭다. 발원지(문화적 발원지)가 학의 전설이 서려있는 미학사지며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관통하면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전하는 퉁소바위, 비경인 용지와 화홍문, 남수문 등을 휘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물을 머금어 뿜어내는 광교산은 어떤 곳일까?
높이는 582미터로 낮은 편에 속하고 능선도 완만해 가족단위의 등산객이 많다. 여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숲과 중간 중간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친근한 산이기도 하다.

원래 광악산이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고 이곳에 머무를 때 갑자기 산에서 빛이 솟아 하늘로 올라갔다. 왕건은 군사들에게 "듣거라 저 빛은 우리가 민족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빛으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앞으로 광교산이라 부르도록 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부처님과 연이 닿아있는 산이다. 그래서일까? 광교산에는 8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이후 사찰들이 하나둘 폐사되면서 광교산은 명성을 잃었지만 다시 조명을 받고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진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 광교산이라 했다는 설화 때문인지 영산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해방이후 전국에서 굿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더불어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됐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IMF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 전에는 수원을 뒤에서 지켜주고 있는 산 정도로 인식했고 굿을 위해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IMF이후 산에서 위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본격적으로 왁자지껄한 산이 됐다고 한다.

어머니 자궁과 같이 편안한 광교산_2
절터약수터 (미학사지)에 남아있는 탑신

89개 사찰이 있었던 광교산

말발굽 형태의 광교산 산행은 일반적으로 말발굽 우측 끝 지점인 반딧불이 화장실에서부터 시작된다. 능선을 타고 반대편 끝으로 오는데 는 대략 6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일주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보통 정상에 오른 후 절반 지점인 절터약수터에서 내려온다. 반대편 끝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하산지점을 대부분 중간 지점인 절터약수터로 잡는다.

절터약수터는 지리적으로 둥근 반원형 말발굽의 중심점에 있어 컵을 엎어놓은 형태인 n자형으로 본다면 가장 높은 지점에, 바로 놓은 형태인 U자형으로 본다면 가장 깊은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에게 절터약수터라 불리는 곳에는 미학사(미약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이 절은 비구니들이 모여 수행하던 사찰인데 어느 날 한 비구니가 아이를 잉태하게 됐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학이 나타나 아이를 점지해줬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화는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한 나그네가 길을 잃고 사찰을 찾았는데 그 사찰에는 쌀이 부족해 스님들조차 끼니를 제대로 잇기 어려웠지만 남은 쌀을 모아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눈이 그치자 나그네는 홀연 떠났고 스님들은 굶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늘에서 쌀자루가 떨어져 보니 학이 쌀을 물어다 주고 있었다. 학이 나그네로 변했다가 다시 학으로 변해 보은했다는 얘기다.

이런 전설 때문에 미학사는 아름다울 미자를 쓰는 美鶴으로 불리기도 하고 쌀 미자를 써서  米鶴이라고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전설 모두 학(鶴)이 등장하는데 학은 우리네 삶과 친숙한 존재로 길상인데 장수를 의미하기도 하고 격이 높은 선비를 비유하기도 하며 또 입신출세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미학사는 길상의 의미인 학(鶴)과 더불어 아이를 임신했다거나 쌀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등 다산, 풍요, 번창의 의미도 담고 있어 상서로운 길지(吉地)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절터약수터의 정확한 명칭은 미학사지 약수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보물 제 14호 진각국사탑비가 있었던 창성사지와 지네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오는 지네절터는 광교산에 있었던 절중에서 기록과 설화 등이 남아있는 3개의 절이다. 이 세 곳에는 탑신, 주춧돌, 기단 잡석 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미학사지와 함께 창성사지가 유명한 것은 지금은 매향동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옆 전각으로 이전된 보물 제14호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때문인데 이 비는 1382년 창성사에 주석하다가 입적한 진각국사에 대한 기록으로 1386년 창성사 경내에 세워졌던 것이다.

또, 광교산 소류지 상류에 있는 지네절터는 샘물터와 주춧돌, 기단 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교리에 따라 엄청나게 불어난 지네를 죽이지 못하고 승려들이 절을 떠났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불교의 생명존중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찰이다. 

어머니 자궁과 같이 편안한 광교산_3
기자는 수원의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는 광교산 자락과 마을을 1년간 집중 취재하고자 한다

광교산 줄기 그리고 마을에는 무엇이 있나?

광교산이 감싸고 있는 상광교동, 하광교동을 들여다보면 입구인 광교저수지에서 가장 안쪽인 13번 버스종점까지 물 따라 작은 평야로 이뤄져있다. 약 4km다. 그 사이로 수원천과 광교천이 흐르며 하천 주변과 산언저리에 60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농사와 함께 등산객을 상대로 보리밥집을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사찰이 번성했던 것만큼 불교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하광교동과 상광교동에는 불당골 (佛堂谷)이라는 명칭이 있다. 하광교동은 비석거리 뒤편 골짜기며 상광교동은 시내버스 종점 못 미쳐서 오른쪽에 있다. 불당골이란 지명은 이곳에 부처님을 모신 불당들이 있어 유래됐다.

그런가 하면 영험한 바위도 하광교동과 상광교동 두 군데에 있다. 하광교동에는 문암골 못 미쳐 개천을 건너면 보이는 바위로 '문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상광교동에는 '당바위'가 상광교동 버스 종점 부근 법성사(현 창성사) 뒤쪽 산에 있다.

하광교동 '문암'은 신라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동문 밖에 있던 바위 세 군데를 즐겨 찾아서 그 바위 이름을 문암이라고 명명했다고 하고 또 고려 말 8학사 중의 한 사람인 이고 선생이 이곳에서 발을 씻고 머리를 감으며 수련했다고 한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는 바위다.

또, 상광교동 '당 바위'는 풍수지리적으로 기와 혈이 뭉친 영험한 바위로 여겨져 예로부터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이 바위 뒤편 산맥을 끊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문암'과 연관이 있는 이고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팔달산에 은거하고 이성계가 벼슬을 권했으나 이를 극구 사양한 선비로 수원지역의 지명이 생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팔달산, 권선리, 학사정, 조대, 망천 등이 모두 이고 선생과 관련이 있다. 그의 묘가 하광교동 문암골 부근에 있다.

최근, 이곳에서는 흥미로운 움직임이 있다. 수원의 대표적인 산소공급원인 광교산이 승용차 매연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소달구지와 자전거가 다니고 느티나무 아래서는 책을 읽는 여유로운 풍경의 차 없는 청정생태마을을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말발굽 모양 광교산이 둘러싼 분지 형태로 어머니 자궁과 같이 편안한 곳. 수원지역 생명과 문화의 탄생인 물의 발원지가 있는 곳. 상수도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 돼 자연생태가 살아있는 곳. 유서 깊은 불교문화와 영험한 자연의 신비가 살아있는 곳. 수원의 과거가 있고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곳. 기자는 그곳으로 1년간의 여정 그 첫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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