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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 조선의 상징물 '수원향교'
2017-07-22 18:32:27최종 업데이트 : 2017-07-22 18:32:2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팔달산 남쪽 수원중앙도서관 아래, 팔달구 보건소 옆에 수원향교가 있다. 도청 입구 오른쪽 일방통행 도로로 들어가 매산초등학교를 지나서 왼편에 있다. 팔달문 방향에서 가다가 중동사거리에서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의 옛 부국원 건물, 오른쪽의 대한성공회 수원교동교회를 지나 오른쪽에 홍살문과 하마비가 보이는데 그 안에 수원향교가 있다.

수원향교 가는 길에는 대한성공회 수원교동교회가 있다. 영국 캔터베리에서 우리나라 초대 주교로 부임한 요한 주교가 1904년에 세운 기독교 전파 초기의 교회로서 1908년 신명학교와 진명유치원을 설립해 선교의 횃불을 들고 수원지역 개화기 교육에 앞장선 현장이기도 하다. 교회 앞에는 수원시 향토유적 제19호인 옛 부국원 건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농업과 관련된 종자, 비료 등을 판매했던 회사로 근대유적이기도 하다.

수원향교, 대성전
수원향교, 대성전

1789년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팔달산은 수원을 대표하는 주산으로 동쪽에 화성행궁, 남쪽에 수원향교, 서쪽에 사직단을 거느리게 되었다.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화성행궁은 성 중심에, 수원향교는 성 밖에 남게 되었고 사직단은 광교산 자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수원향교는 1291년(고려 충렬왕 17) 당시 수원의 읍치였던 화산 앞에 세워졌었는데 1789년 가을 정조대왕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재의 화산으로 천장하면서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게 되었고, 동시에 수원향교도 건립된 지 500여 년 만에 팔달산 남쪽 기슭으로 옮긴 것이다.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가장 먼저 향교를 옮겼다는 것은 유교국가인 조선의 향교에 대한 중요성과 상징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수원향교, 홍살문과 하마비
수원향교, 홍살문과 하마비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했던 성균관의 하급 관학으로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해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과는 차이가 있지만 서원이 발달하면서 향교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오늘날 사교육으로 인해 공교육이 황폐화된 경우와 비교가 된다. 1864년(고종 1)에 집권한 대원군이 서원의 특권을 없애고 설치를 금하면서 대부분의 서원이 철폐되었고, 1894년(고종 31)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문묘를 향사하는 기능만을 갖게 되었다.

홍살문 안으로 들어가면 태극문양이 선명한 솟을 3문이 보이는데 향교의 정문이다. 정문은 항상 닫혀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 작은 협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팔달산 남쪽 경사면이 급해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아 평지를 다진 후 건물을 지었는데 전체적으로 5단으로 되어있다.

한글본 정리의궤의 문선왕묘도, 화성원행도 8폭 병풍 중 '화성성묘전배도'
한글본 정리의궤의 문선왕묘도, 화성원행도 8폭 병풍 중 '화성성묘전배도'

수원향교의 구조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 되어있다. 솟을 3문 뒤에 유생들이 학습하던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그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하던 동재, 서재가 있다. 그 뒤 내 3문으로 들어가면 좌우에는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던 동무, 서무가 있고 가장 위쪽에 선성(先聖)의 위패를 봉안한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수원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과 우리나라의 현인 등 모두 25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월 1일과 15일에 분향하며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고 한다.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 - 4월 5일)까지 수원을 방문했던 정조대왕은 공식적인 첫 번째 행사로 수원향교 대성전에 전배를 했다. 조선시대에서 향교는 대단히 중요한 상징성이 있었던 것이다. 화성원행도 8폭 병풍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화성성묘전배도'가 바로 그 그림이다.

명륜당 좌우의 동재와 서재가 맞배지붕, 1907년 헤르만 산더가 찍은 사진 속 동재와 서재는 팔작지붕
명륜당 좌우의 동재와 서재가 맞배지붕, 1907년 헤르만 산더가 찍은 사진 속 동재와 서재는 팔작지붕

현재의 수원향교는 1959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1907년 헤르만 산더가 찍은 수원향교 사진과 비교해 보면 잘못 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홍살문 오른쪽에 있던 하마비가 왼쪽으로 갔고, 솟을 3문에는 화성성역의궤 그림과 옛 사진에도 없던 태극 문양을 그렸다. 명륜당 좌우에 있는 동재, 서재는 팔작지붕이었는데 맞배지붕으로 바뀌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문화재 복원을 대충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무더위에 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원향교와 주변의 성공회, 부국원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수원향교는 주말에는 문을 닫아 평일에만 관람할 수 있다. 수원화성, 화성행궁을 관람하고 연계해서 관람하면 좋은데 아쉽다. 주말에도 문을 열어놓았으면 한다. 주말에 문을 닫는 곳은 수원향교밖에 없는 것 같다. 무더위에 수원여행은 수원향교로 가보자. 고목이 된 은행나무가 반갑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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