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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문화재 비교답사를 통해 편견을 없애야
2023-04-24 09:33:45최종 업데이트 : 2023-07-07 13:25:5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수원화성을 수없이 답사하면서 모르거나 궁금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일성록, 홍재전서, 정조실록 등을 탐독하며 스스로 알아갔다. 수원화성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을 떴을 때부터 국내의 다른 성곽을 답사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치열하게 맞붙었던 충주지역과 한강, 남한강 수계의 산성과 전국의 읍성을 답사했다. 시대별, 지역적 성곽의 특징, 성벽, 성문, 옹성, 치, 곡성, 암문, 여장 등의 양식과 구조 등을 비교하며 수원화성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축성 원형을 볼 수 있는 장안문에서 북서포루 구간의 성벽 일부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축성 원형을 볼 수 있는 장안문에서 북서포루 구간의 성벽 일부



고창의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경주 경주읍성, 명활산성, 월성, 진도 용장성, 진도읍성, 오산 독산성, 춘천 봉의산성, 청주 상당산성, 용인 석성산성, 처인성, 강화도 강화산성 등을 답사했다. 단군시대 초기에 쌓은 강화도의 정족산성, 고구려가 쌓은 성인 파주 덕진산성, 연천 호로고루성, 백제가 쌓은 공주 공산성, 충주 장미산성, 신라가 쌓은 보은 삼년산성, 단양 온달산성, 적성산성, 충주 충주산성, 여주 파사성, 안성 죽주산성, 용인 할미산성 등을 답사했다.

수원화성 서1치와 북서포루

수원화성 서1치와 북서포루



비교 답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우리나라 성곽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고구려 산성에 대한 정보는 만주지역 등 옛 고구려 강역에 있던 수백 개의 성을 답사하고 기록한 책과 발굴 보고서를 통해 고구려 성제에 대한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수원화성이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타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수원화성을 온전히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화성성역의궤란 기록 밖의 실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수원화성의 뿌리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수원화성 화성장대

수원화성 화성장대, 현판은 정조대왕 글씨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삼랑성(강화도 정족산성)은 조선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쌓았다"고 기록했다. 4000여 년 전에 고조선은 치성을 갖춘 석성을 쌓았다. 치성을 갖춘 석성의 전통은 고구려로 이어졌고 고구려가 산성의 나라가 되어 동북아 최강국이 된 것이다.

산성의 나라였던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 등 중국과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성제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당시에 중국은 수많은 전쟁에 패배하면서 우수한 고구려 성제를 모방해 성제를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 수어장대, 현판은 화성유수를 역임했던 박주수 글씨인데  화성장대 글씨와 닮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 영토 대부분이 편입되지 않아 우수한 고구려 성제의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다. 조선후기 까지도 광개토대왕비의 존재를 몰랐을 정도였다. 수원화성을 축성할 당시의 지식인들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석축산성의 전통이 단군 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고구려의 우수한 성제를 중국이 모방한 것인데 중국의 성제가 조선의 성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원화성 축성 당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군시대를 이은 고구려의 우수한 성제를 이어받은 것이다. 수원화성에서 볼 수 있는 옹성, 여장, 성벽, 치성, 장대, 포루, 각루 등에서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쌓았던 석축산성의 탁월한 우수성을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의 성제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성제를 이어받은 것이다.

남한산성 들여쌓기를 한 치성과 성벽

남한산성 들여쌓기를 한 치성과 성벽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성곽 양식과 축성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비교 대상이 된다.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후 4번째 답사를 다녀왔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때 쌓은 왕성이었다는 설과 삼국사기 기록에 673년(신라 문무왕 13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쟁,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치열한 전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수원화성보다 먼저 쌓은 남한산성에서도 우리 고대의 성제를 볼 수 있다. 성벽의 하부 구조와 성벽에서 옛 성제를 관찰할 수 있고 수원화성 화양루 가는 길인 용도의 원형을 남한산성 남문에서 동문 구간에 설치한 남옹성에서 볼 수 있다.

남한산성 제1 남옹성, 수원화성 용도와 비슷하지만 옹성 끝에 대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남한산성 제1 남옹성, 수원화성 용도와 비슷하지만 옹성 끝에 대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수원화성만 답사하고 수원화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성곽이라고 말한다면 우물 속의 개구리 같은 말이다. 전국에 산재해있는 여러 성곽을 답사해 수원화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고대로부터 성제가 어떻게 발전했고 수원화성에 녹아들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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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남한산성,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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