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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있는 선정비에는 어떤 내력이 있을까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 선정비
2023-04-26 10:12:03최종 업데이트 : 2023-07-07 13:25:0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 입구에는 선정비 수십 개가 줄지어 서 있어 장관이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것인지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서 전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정비 뒤로 보이는 성벽과 함께 고풍스러우면서도 조화롭기까지 하다.

1907년 헤르만산더가 찍은 사진이 있는데 초가집을 배경으로 비석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는 제각각이며 높이는 지붕에 닿을 정도이고 두 개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당시 수원 어느 거리의 선정비로 추정되는데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천덕꾸러기 애물단지였을까,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비석이었을까.

수원에도 많은 선정비가 있다. 중동사거리 등 수원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를 노송지대 길가에 전시하다가 현재는 수원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27기, 수원화성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10기를 전시하고 있다. 선정비(善政碑)란 훌륭한 정치를 베풀었던 관리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다. 유애비(遺愛碑), 불망비(不忘碑), 송덕비(頌德碑), 애민비(愛民碑), 청덕비(淸德碑), 청백비(淸白碑)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른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선정비는 말 그대로 훌륭한 정치를 베푼 관리의 공덕을 기려 백성들이 스스로 세워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널려있는 선정비가 모두 백성들 스스로가 세운 것은 아니다. 탐관오리들의 비석도 많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관리들 스스로가 백성들을 동원해 세운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선정비가 아니고 백성의 원성이 담긴 '원성비'이다. 옛 기록에도 백성들이 사모하여 선정비를 세웠다는 얘기와 억지로 선정비를 세웠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선정비는 수원지역의 인물과 업적을 파악할 수 있고 당대의 금석학적 가치와 시대에 따른 비석의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비석의 형태는 사각형 지대석에 단순하게 비석을 올려놓은 것, 거북 모양의 귀부에 비석을 올려놓은 것, 이수가 정교하게 조각된 것, 비석 위에 덮어 얹은 지붕 모양의 돌인 가첨석이 있는 것 등 형태가 다양하다. 1998년에 선정비 37기를 수원시 향토유적 제3호로 일괄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선정비들



선정비는 수원지역을 다스렸던 관찰사, 화성유수, 수원부사, 판관, 중군 등을 망라하고 있다. 관찰사는 각 도에 파견된 지방행정의 최고 책임자이고, 유수는 행정적 군사적 요지에 설치된 지방 제도로 1793년 수원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었다. 판관은 지방관을 도와 행정실무를 담당한 관리이고 중군은 무관직으로 조선시대 각 군영의 전문 무장이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 3년 5개월 동안 화성유수를 지내며 수원화성 축성을 담당했던 조심태의 선정비는 없는데, 불과 5개월 동안 화성유수를 지냈던 이헌기의 선정비는 있다. 선정비는 관리들의 재임 기간, 훌륭한 정치 여부와는 관계없이 관례적으로 세워진 경우가 많은 것이다.

16세기에 황초령 꼭대기에 있던 진흥왕순수비가 세상에 알려졌다. 조정의 고위 관리들이 자주 이 비석의 탁본을 요구하자 탁본을 하는데 힘겨워했던 그곳 백성들이 벼랑 아래로 밀어 버렸다고 한다. 황초령은 함흥에서 갑산 쪽으로 200리 떨어져 있는데 관리들이 백성들을 괴롭힌 결과 비석이 조각난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상당한 비석도 이러한 수난을 당했는데, 억지로 만든 탐관오리들의 선정비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조각난 흔적이 있는 선정비는 혹시 백성들의 분풀이 대상이 된 '원성비'가 아니었을까.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서유린 선정비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서유린 선정비



수원화성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는 1797년 7월부터 1800년 11월까지 화성유수를 지낸 '서유린 애민청덕선정비(愛民淸德善政碑)'가 있다. 사각형 지대석에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이 있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 선정비가 특이한 것은 지대석에 20여 개의 성혈이 있는 것이다. 장안문 안쪽 지대석에도 성혈이 몇 개 있는데 기도발이 먹히는 장소나 물체에 백성들이 소원을 비는 과정에서 생긴 구멍으로 추정된다.

서유린(1738-1802) 선정비는 서유린 사후인 1831년에 세워진 것인데 수원 백성들이 서유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진짜 선정비가 아니었을까.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기도발이 먹힌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선정비를 보는 것도 조선시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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