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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전쟁,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역사’, 그 흔적을 찾아서
프랑스 참전 기념비, 예술공원, 앙카라학교 터 여행
2024-06-14 16:18:15최종 업데이트 : 2024-06-14 16:18:13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지지대 고개 오른쪽 편에 있다. 프랑스군은 부산에 상륙 후 수원에서 집결한 미국 2사단에 배속되었다. 즉 한국에 파병된 뒤 처음으로 수원에 머물렀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지지대 고개 오른쪽 편에 있다. 프랑스군은 부산에 상륙 후 수원에서 집결한 미국 2사단에 배속되었다. 즉 한국에 파병된 뒤 처음으로 수원에 머물렀다.


 "한국전쟁 기간 중 수원은 북한과 중국군 그리고 남한과 유엔군 사이에서 총 4차례에 걸쳐 번갈아 가며 점령과 탈환이 일어난 전투지역이었다. 전쟁 초기에는 수원에 한강 방어를 위한 남한과 유엔군의 연합군 지휘 본부가 있었으며, 전쟁 기간에는 수원 비행장이 있어 중요한 지역이었다." 

수원 구 부국원에서 <한국전쟁, 기억의 파편>이라는 전시(2023년 2월 24일부터 6월 30일)에서 본 글이다. 당시 휴전 70주년을 맞이해 수원시정연구회의 수원학 구술총서 《한국전쟁: 그 기억의 파편을 모으다》 발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기념비 내용에는 프랑스군이 전투에 참여한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곧게 솟은 탑과 넓은 광장, 그리고 군인 조형물이 장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희생자에 대해 정성을 다한 예우가 느껴진다.

기념비 내용에는 프랑스군이 전투에 참여한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곧게 솟은 탑과 넓은 광장, 그리고 군인 조형물이 장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희생자에 대해 정성을 다한 예우가 느껴진다.


 한국전쟁 중에 수원은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남아 있는 전쟁 관련 자료 사진을 보면 수원화성 성곽은 성한 곳이 없었다. 장안문은 전쟁 때 폭격을 당해 문루가 반파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문루는 그마저도 무너지고, 1976년 화성 복원사업 때 복원됐다. 옹성과 성벽에는 무수한 총알 자국이 남아 있어 전쟁의 참상을 알 수 있다. 

인계동 예술공원에 한국전쟁 관련 만화. 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직접 경험한 전쟁 상황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계동 예술공원에 한국전쟁 관련 만화. 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직접 경험한 전쟁 상황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지지대 고개가 있다. 광교산 쪽으로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 내용에는 지평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양구), 화살머리 고지 전투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진 자료도 있다. 전쟁에는 4,000명이 참전하여 사망 288명, 부상 818명, 실종 18명으로 총 1,124명이 피해를 봤다.

 광교산 아래 공원처럼 꾸민 공간이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공간이지만, 공원 같은 분위기다. 곧게 솟은 탑과 넓은 광장, 그리고 군인 조형물이 장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희생자에 대해 정성을 다한 예우가 느껴진다.

예술공원과 현충탑 사이에 있는 청동 인물상.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모습이다.

예술공원과 현충탑 사이에 있는 청동 인물상.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모습이다.


  기록을 보니 프랑스군은 부산에 상륙 후 수원에서 집결한 미국 2사단에 배속되었다. 즉 기념비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한국에 파병된 뒤 처음으로 수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산업도로를 바쁘게 다니면서 지나쳤는데, 이런 사연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튀르키예군은 수원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튀르키예는 6․25 전쟁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만5,000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다. 원래는 5,000명 정도 병력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모병 결과 1만 5,000명이 자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웠다. 

수원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기념탑. 6·25전쟁 당시 수원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학도 의용군으로 참전한 것을 기리는 비다. 8 기둥은 학도병 8명을 상징하고, 가운데 철모를 쓴 작은 기둥은 전사한 학도병을 추모하는 것이다(2023년 11월 촬영).

수원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기념탑. 6·25전쟁 당시 수원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학도 의용군으로 참전한 것을 기리는 비다. 8 기둥은 학도병 8명을 상징하고, 가운데 철모를 쓴 작은 기둥은 전사한 학도병을 추모하는 것이다(2023년 11월 촬영).


  튀르키예군은 전쟁 중에 고아를 돌보는 일을 했다. 서호초등학교 앞에는 앙카라 고아원 건립기념비가 있다. 튀르키예군은 1952년 서둔동 45-9번지 일대에 앙카라 고아원을 설립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640여 명의 어린이를 정성스럽게 돌봤다. 전쟁이 끝난 뒤 1966년 잔류 중대가 철수할 때까지 도왔다. 

서호초등학교 앞에 앙카라 학교 공원.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은 전쟁 중에도 이 일대에 앙카라 고아원을 설립하며 고아를 돌보는 일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수원시가 앙카라학교 공원을 조성했다.

서호초등학교 앞에 앙카라 학교 공원.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은 전쟁 중에도 이 일대에 앙카라 고아원을 설립하며 고아를 돌보는 일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수원시가 앙카라학교 공원을 조성했다.


  전시였으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이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먼 나라에서 온 군인들이었다. 수원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13년 앙카라학교 공원을 조성했다. 서호초등학교 진입로는 앙카라길(튀르키예 수도이름, 서호동로 14번길)이란 명예도로명도 부여했다. 서호초등학교는 체육관 이름을 앙카라관이라 했다. 학교에는 태극기와 튀르키예 국기도 나란히 걸려 있다.   

  인계동 예술공원에도 한국전쟁 관련 이야기를 만난다. 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직접 경험한 전쟁 상황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26점이 있는데,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포탄에 큰 구멍이 난 집과 무너져 내린 벽을 그렸다. 절규하는 남녀라고 써 놓은 그림 역시 집도 잃고 가족도 잃은 모습이다. 전쟁터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청년들은 전쟁터로 기꺼이 나갔다. 그들이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질주하고 있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서호초등학교 앙카라관. 튀르키예군이 보여준 고귀한 사랑을 기리고, 이를 학생들과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자 체육관 이름을 앙카라관으로 정하였다.

서호초등학교 앙카라관. 튀르키예군이 보여준 고귀한 사랑을 기리고, 이를 학생들과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자 체육관 이름을 앙카라관으로 정하였다.


  시민은 "공원 산책 중에 전시물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버지는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딸은 다시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라고 말했다.
 
  수원고등학교(팔달구 정조로 666-10, 수원중고등학교) 교정에는 6·25전쟁 당시 재학생들이 학도 의용군으로 참전했다는 기념비가 있다. 기념탑 8 기둥은 학도병 8명을 상징하고, 가운데 철모를 쓴 작은 기둥은 전사한 선배를 추모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나라의 안위를 위해 누구보다 용감한 선택을 했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숨은 영웅들이다. 같은 공간에 6·25전쟁 기념비도 있다. 상업학교 졸업생과 수원고등학교 졸업생, 그리고 학도병 이름까지 있다. 모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이다. 

삼일고등학교 역사관에 있는 네덜란드 스탈 이병의 훈장과 군복. 그는 한국전쟁에 유엔(UN)군으로 참전해 삼일학교에 주둔했었다. 네덜란드에서 작고했는데, 관련 유품을 삼일 학교에서 영원히 보관해 주라고 당부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삼일고등학교 역사관에 있는 네덜란드 스탈 이병의 훈장과 군복. 그는 한국전쟁에 유엔(UN)군으로 참전해 삼일학교에 주둔했었다. 네덜란드에서 작고했는데, 관련 유품을 삼일 학교에서 영원히 보관해 주라고 당부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매향동 삼일고등학교 역사관에도 6·25 참전 관련 군인 유품이 있다. 네덜란드 스탈(STAL) 이병의 훈장, 종군 기장물, 군복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에 유엔(UN)군으로 참전해 삼일학교에 주둔했었다. 네덜란드에서 작고했는데, 관련 유품을 삼일 학교에서 영원히 보관해 주라고 당부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오는 6월 25일이면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이다. 돌아보니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 옷깃을 여민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참혹함도 잊고 살아가지만, 역사는 잊어선 안 된다. 역사의 기억이 참상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밑거름이 된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한국전쟁, 종군작가, 만화, 프랑스군, 미군, 지평리전투, 예술공원, 현충탑, 앙카라공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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