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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과 수원화성, 고개 들어 보니 더 매력적으로
편액을 함께 보니, 깊이 있게 다가온다
2024-07-22 14:42:04최종 업데이트 : 2024-07-22 14:41:4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화성행궁 편액. 정조대왕이 직접 썼다. 글씨의 크기가 통치자로서 권위와 존재감이 보인다.

화성행궁 편액. 정조대왕이 직접 썼다. 글씨의 크기가 통치자로서 권위와 존재감이 보인다.


  우리는 건물 이름을 목판에 새겨 걸었다. 이름도 경전이나 학자의 글에서 인용하여 정했다. 그것을 편액이라고 한다. 선조들은 편액의 이름에 맞게 삶을 심화하고, 인격 수양을 지향했다. 오늘날 편액은 건물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은 편액을 통해 소통하고,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옛 건물을 만난다. 
  화성행궁과 성곽 시설물에도 편액이 걸려있다. 화성행궁 정문 격인 신풍루 우측에 화성행궁 편액이 있다. 이는 건물에 걸기에 부담스러웠는지 땅바닥에 있다. 그래서 이를 편액이라 하지 않고 현판이라고도 한다. 이 현판은 정조대왕이 직접 썼다. 오른쪽 위에 국왕의 친필임을 알 수 있는 '어필' 글씨가 있고, 정조의 호 홍재 인장이 있다.

 

화성장대.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장대 편액 글씨는 정조가 썼다. 자신감과 힘이 넘친다.

화성장대.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장대 편액 글씨는 정조가 썼다. 자신감과 힘이 넘친다.


  화성행궁 현판 글씨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붓놀림이 느껴진다. 현판과 글씨의 크기가 통치자로서 권위와 존재감이 보인다. 화성 신도시 건설에 대한 포부와 실사구시의 개혁 정신을 펼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행궁에 들어가면 장락당을 만난다. 설명 글에 의하면, 장락당은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중국 한나라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지었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장소인 봉수당도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었다. 모두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편액이다.
 
봉수당. 혜경궁 홍씨 회갑연 장소인 봉수당도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었다.

봉수당. 혜경궁 홍씨 회갑연 장소인 봉수당도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었다.


  득중정은 정조가 활을 쏘던 곳이다. 네 발을 쏘아 모두 마쳤는데 이를 기념하여 이름을 득중정이라 했다. 낙남헌, 복내당, 경룡관 등은 중국 역사와 경전 등에서 이름을 따 왔다. 
  행궁 정문 신풍루는 흰색 바탕색에 검정 글자지만, 행궁 내 전각은 검정 바탕에 흰색 글자다. 장락당 현판 글씨는 정조가 직접 써서 내렸다. 이 글씨를 양각으로 새겼다. 편액 오른쪽 위에 어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나머지는 정조가 신임하는 신하들이 썼다. 정조가 화성행궁에 거는 기대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장락당.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봉수당과 함께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장락당.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봉수당과 함께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성곽 시설물에도 편액이 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는데, 여기에 화성장대와 연무대라는 편액을 걸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장대 편액 글씨는 정조가 썼다. 자신감과 힘이 넘친다. 연무대는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다. 그 기능을 뜻하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화성에 네 개 대문이 있다. 창룡문과 화서문은 동서 방위를 나타낸다. 팔달문은 남쪽 문이지만,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장안문은 다르다. 이름을 특별하게 지었다. 중국의 옛 왕조부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은 수도의 의미도 있지만,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도 쓰였다. 정조는 이런 의미를 수원화성에 담았다. 편액 글씨도 당대 최고의 서예가 조윤형이 쓰도록 했다. 
 
장안문. 화성 네 개 문 중에 이름을 특별하게 지었다. 중국의 옛 왕조부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쓰였다. 정조는 이런 의미를 수원화성에 담았다.

장안문. 화성 네 개 문 중에 이름을 특별하게 지었다. 중국의 옛 왕조부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쓰였다. 정조는 이런 의미를 수원화성에 담았다.


  장안문 옛 편액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현재 장안문 글씨를 김종필이 썼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수원 출신 서예가 양근웅이 썼다. 장안문은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다. 여기에 걸린 편액도 큰 건물에 걸려있어 작게 보일 뿐이지 사실은 크다. 높이가 170cm, 폭이 403cm나 된다(김충영. 수원일보 '장안문 현판은 소형 양근웅 선생의 작품이다'에서 인용).
 
화홍문. 글씨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썼다. 둥근 글씨 모양이 홍예와 조화를 이룬다. 서예 기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느낀다.

화홍문. 글씨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썼다. 둥근 글씨 모양이 홍예와 조화를 이룬다. 서예 기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느낀다.


  화홍문에 가면 오래 머문다. 홍예문 돌다리 위에 누각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누각이 원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라는데, 주변 용연 등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안성맞춤이다. 편액도 한참 본다. 글씨는 수원 화성의 유일한 예서체다. 건립 당시 유한지가 썼는데, 마치 그림을 그리듯 썼다. 둥근 글씨 모양이 홍예와 조화를 이룬다. 서예 기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느낀다.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행궁에 가면 고개 들어 편액도 챙겨보면 어떨까. 이름 속에 담긴 의미도 알고, 선현들이 어떤 삶을 지향했는지 음미할 수도 있다.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행궁에 가면 고개 들어 편액도 챙겨보면 어떨까. 이름 속에 담긴 의미도 알고, 선현들이 어떤 삶을 지향했는지 음미할 수도 있다.


  방화수류정에도 편액이 있다. 만약 여기에 편액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동북각루라는 딱딱한 이름만 기억하게 된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편액 덕분에 동북각루는 뛰어난 풍경이 더욱 돋보인다. 
  덕수궁에 석조전이 있다. 대한제국 때 지은 서양식 건물이다. 석조전은 돌로 지었다는 뜻으로 건물 이름은 아니다. 즉 서양 건축은 이름이 없다. 우리 건축은 편액을 달아야 완성된다. 편액 글씨는 아무나 쓰지 않았다. 글씨는 솜씨는 물론 덕망과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 썼다. 몇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쓰는 사람은 엄청난 부담을 이겨내고 완성한다. 편액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도를 닦는 듯한 정갈한 마음으로 수없이 칼질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편액은 작은 나무판 글씨지만, 그 자체로 귀한 가치를 지닌다.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편액 덕분에 동북각루는 뛰어난 풍경이 더욱 돋보인다.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편액 덕분에 동북각루는 뛰어난 풍경이 더욱 돋보인다.


  선현들이 남긴 공간에 가면 고개 들어 편액도 챙겨보면 어떨까. 이름 속에 담긴 의미도 알고, 선현들이 어떤 삶을 지향했는지 음미할 수도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의 마음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건물을 좀 더 깊게 보고, 국가유산을 보는 인식의 지평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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