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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당이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리네
수원 북수동 성당 걷기와 뽈리화랑에서 작품 감상
2025-12-08 14:55:40최종 업데이트 : 2025-12-08 14:55:3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오래된 성당은 도시 소음을 뒤로 하고, 잔잔한 정적에 잠겨 있다.

오래된 성당은 도시 소음을 뒤로 하고, 잔잔한 정적에 잠겨 있다.


  수원 화성을 따라 걷다 보면 계절의 고요가 가장 먼저 내려앉는 곳이 있다. 광장 앞 북수동 성당이다. 늘 문을 열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오래된 시간을 간직한 회색 건물이 앉아 있고, 붉은 벽돌 성당은 합장한 채 햇살을 등지고 있다. 겨울이 되면 마치 느린 호흡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듯, 묵직한 침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성당 앞마당에 닿는 순간, 공기가 다름을 느낀다. 도시 소음은 희미하고, 마당은 잔잔한 정적에 잠겨 있다. 나뭇가지들은 잎을 모두 비워낸 채 하늘을 향해 섬세한 선을 그리며 서 있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마치 내면의 기도문처럼 조용하다.
  성당 건물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작은 길이 눈길을 끈다.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이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길을 걸어본다. 길을 따라 배치된 돌기둥 위에 십자가와 예수 모습에 숙연함이 든다. 돌과 햇살이 만들어낸 조용한 오솔길이다. 이 길을 꼭 종교인들만 걸을까. 누구나 걷다 보면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길이다. 
작품은 성화와 성물이 있고, 조각으로 성모상이나 예수상이 있다.

작품은 성화와 성물이 있고, 조각으로 성모상이나 예수상이 있다.


  뽈리(한국 이름 심응영) 신부 동상이 찬 기운 속에서도 포근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옆에 석조 건물은 원래 소화초등학교 교사 건물(구 교사동)이었다. 1934년 소화강습회로 시작한 소화초등학교는 한국전쟁으로 기존 목조건물이 전소됐다. 현 건물은 1952년부터 2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2007년에 리모델링하여 '뽈리 화랑(Polly Gallery)'으로 개관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이다. 
  상설 전시 안내를 보고 화랑 2층으로 오른다. 옛 교실과 복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발밑에 오래된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를 낸다. 전시장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작품들과 어우러져 관람객의 감상을 편안하게 한다. 전시장 안내를 하는 선생님이 "천주교 수원교구를 중심으로 결성된 가톨릭 미술가회 회원들 작품을 전시한다. 올해로 28회째 정기전을 하고 있다. 회원들은 대학교수와 교사가 있고 전문 작가도 많다. 각자 예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 작품은 유화, 수채화, 조각, 공예 등 다양하다."라고 말한다.
기도 소리가 들리는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일상의 고뇌와 아픔을 그려낸 작품도 있다.

기도 소리가 들리는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일상의 고뇌와 아픔을 그려낸 작품도 있다.

 
  작품은 성화와 성물이 있고, 조각으로 성모상이나 예수상이 있다. 성인의 초상화나 그리스도가 박해를 받는 그림도 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조그만 창의 빛, 성인의 얼굴에 비치는 은은한 빛이 자주 보던 표현 방식이다. 인물이나 구도의 정형화가 성화임을 느끼게 한다. 회화도 기도 소리가 들리는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그냥 일상의 고뇌와 아픔을 그려낸 작품도 있다. 한 마디로 종교와 예술의 폭넓은 감성과 미적 경험을 느낀다. 작품들 옆에는 가격에 적혀 있어 구매도 가능하다.   
  종교 관련 예술 세계를 자주 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유럽은 종교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성당에는 벽화와 조각상 등 종교 관련 작품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 많은 화가는 '성모영보'를 그렸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도 있다. 피에타를 그린 화가도 여럿이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탱화를 그렸다. 
성당 뜨락을 걷다 보면 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성당 뜨락을 걷다 보면 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종교 미술은 신을 찾고, 그 신이 사람에게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다. 신과 인간을 잇는 숭고한 예술이다. 따라서 감정 묘사보다 영적 울림을 우선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작품을 통해 신을 만나고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 종교인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림 앞에서 서 있으니 누구든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화랑에서 나와 성당 안을 걸어본다. '수원화성 로사리오의 길'이다. 수원 화성 축조 당시 다산 정약용이 설계한 봉화대 모양을 본떠 만든 묵주(로사리오) 길이다. 수원화성 길이를 축소해 조성했다. 수원화성의 역사적 구조와 신앙을 융합한 상징적인 공간이다. 입구에는 수원 순교자 현양비가 있다. 
  정문에 '수원 성지 본당'이라는 기념돌이 서 있다. 정조대왕 사후 조정은 천주교인을 박해했다. 북수동성당은 박해 시대에 수원 천주교인들이 잡혀 왔던 곳이다. 그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성당은 왕의 골목에 연결되는 관광길이다.

성당은 왕의 골목에 연결되는 관광길이다.


  북수동 성당은 일제강점기 역사와 한국전쟁 상처가 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대에도 신자들을 보듬고 어려운 세월을 이겨냈다. 역사와 종교가 어우러진 곳으로 여전히 수원 지역 신자들의 신앙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지금은 순례자들 성지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행궁동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된 왕의 골목에 연결되는 관광길로 누구나 거쳐 가는 길목이다. 여기에 가톨릭 미술 작품을 상시 전시 공간까지 열었다. 이제는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편안한 쉼터가 된다. 북적거리는 도심 속에 오래된 성당이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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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수동성당, 천주교, 뽈리화랑, 소화초등학교, 정약용, 수원화성,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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