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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성 시인의 '찬밥'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8-08-06 09:16:33최종 업데이트 : 2018-08-06 09:20:48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조길성 시인의 '찬밥'시 전문

조길성 시인의 '찬밥'

좀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나. 유례없는 폭염 앞에 달력만 자꾸 본다. 목을 빼도 가을바람은 기미조차 없고 폭염 기록 수치만 올라간다. 그래도 입추쯤이면 좀 나아지겠지, 지친 희망을 꺼내든다. 태울 듯 따가운 불볕 속을 낙타의 심정으로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일제강점기 때만 하랴. 조길성(1961~) 시인의 '찬밥'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시인은 2006년 '창작21'을 통해 등단, '징검다리 건너' 등의 시집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의 어려운 삶을 조금씩 담아내고 있다. 한동안 수원에 살아서인지 수원 관련 시도 간간이 나타나는데, 서정적 울림이 시의 주조를 이룬다.

'찬밥', 여러 그늘이 따라붙는 말이다. 특히 시인의 경우에는 할머니와 둘이 살다 가신 후, 혼자 '밥상머리'에 앉는 게 일상이라 더 남달랐을 게다. 혼자 물 말아 먹는 찬밥에 간간이 얹히는 할머니 말씀. 그 중에도 큰 힘이 되는 것은 '내 핏속엔/압록강 쇠다리를 건너온/무쇠바람이 살고 있다'는 자긍이다. 마지못해 찬밥을 한 술 뜨면서도 다리에 꾸욱 힘을 주는 그 대목에는 할머니가 들려준 집안의 역사가 담겨 있다.

'왜놈의 피로 손을 물들이며 살았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의 시 '내력'에 더 소상히 나온다. '마적'으로 불리며 활동하던 당시 '평북 의주'의 '청수동 옛집은/(일본)놈들에 의해 세 번씩이나 불 질러졌'고, 할머니는 '열아홉에 남편을 잃'었다. 손자 하나 거두며 함께 살다 간 할머니는 혼자 남은 손자의 밥상을 기웃대고 종종 '말씀'을 얹는다. 그 외로운 '찬밥' 앞에서 우리도 그만 먹먹해진다.

혼자 먹은 찬밥은 슬프지만 여럿이 먹으면 맛있다. 그것도 평상이나 멍석에 둘러앉아 열무김치에 비벼먹으면 꿀맛이다. 오이생채, 비름나물, 오이지무침, 가지나물 등을 고명으로 얹으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다. 지금은 라면에 말아먹기가 찬밥의 일품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비벼먹기가 말아먹기보다 윗길이고 별미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마당식사와 함께 별 헤던 여름밤의 낭만도 이제는 먼 얘기다. 특히 살인적 더위에는 에어컨 앞으로만 모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도 광복절이면 꼬리를 내리리라. 나라 되찾는 일에 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후손의 시를 읽으며 더위쯤이야 웃어넘기질 못 하니 좀 씁쓸하다.

아무려나 '찬밥'을 읽다 보니, 세상의 찬밥 신세들이 스친다. 폭염 건너는 쪽방 어른들이 그중 걱정스럽다. 모쪼록 큰 탈이 없이 지나길 빌며, 찬밥을 물에 만다. 폭염아 물렀거라, 오이지만 있어도 시원한 마음이니!

시 해설 정수자시인의 사진과 약력

시 해설 정수자시인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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