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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우 시인의 '그늘의 노래'
時 해설 정수자 시인
2018-06-29 20:04:50최종 업데이트 : 2018-06-29 20:01:15 작성자 :   e수원뉴스
천창우 시인의 '그늘의 노래'

천창우 시인의 '그늘의 노래'

장마철이면 마음바닥까지 눅눅해진다. 아무리 제습을 해도 가시지 않는 도처의 습기들. 그럴 때마다 더 길고 뜨거운 우기(雨氣)의 나라며,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참혹한 고통이라면 떠오르는 또 다른 사람, 사도세자. 천창우(1952~) 시인도 수원을 방문할 때 사도세자와 역사의 그늘을 깊이 생각했는지 시 한 편을 남겼다. 시인은 1979년 '문예동인' 등단, 다시 2005년 '창조문예'로 등단한 후, '옥합을 깨뜨릴 때' '어둠을 못질하다' 등의 시집을 냈다. 이 외 다수의 논저를 냈으며 강의와 동인 등 작품 활동이 활발하다.

사도세자는 1762년 윤오월 스무하루에 숨을 거두었다. 뒤주에 갇힌 지 여드레만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곡식 저장용 뒤주에 생사람을 가둬서 서서히 굶겨 죽인 잔혹한 집행 . 윤오월이면 뜨겁고 비도 자주 치는 한여름인데 뒤주 속의 8일이라니, 참담한 심정과 피 마르는 육신의 고통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그런 안팎을 톺아보며 시인은 '뒤주에 갇힌 손톱에 피멍으로 맺히'는 그늘을 생각한다. 영조의 명이 사도세자의 시체로 귀결되기까지 당시 사정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었다. 무엇보다 세자의 병이 큰 이유라지만, 그 이면에 깔린 정치권력의 잇속과 붕당의 계산은 훗날의 피바람을 예비한 아귀다툼의 막판 같다.

사도를 장헌으로 추존하기까지 정조는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을까. 현륭원행을 할 때마다 흘린 눈물만 해도 누구보다 많이 운 남자일 것이다. 그 눈물은 시가 되고 그림도 되었으니, 봉수당을 거닐며 시인은 말로 다못한 속내를 짚어본다. 그래도 '그 눈물'이 '또 다른 우주의 별꽃으로 피어난다'면 또 다른 승화의 꽃이 아닐는지….

곧 사도세자 기일이다. 용주사에서 기신제를 열어왔다. 살풀이춤의 위령과 부모은중경 낭독은 특히 깊은 눈물의 시간을 주었다. 근원을 일깨우는 용주사며 행궁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효를 오래 돌아본다.
시 해설 정수자시인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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