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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시인의 '봉녕사 뒤뜰에서'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8-07 10:50:34최종 업데이트 : 2017-08-07 10:50:34 작성자 :   e수원뉴스

시 '봉녕사 뒤뜰에서'
이영춘 시인의 '봉녕사 뒤뜰에서'_2


한여름 절에서는 어떤 소리들이 들릴까. 간간이 지나는 바람이며 독경소리 속에 매미들 서로 부르는 여름철의 노래만 스칠까. 아니면 요즘 절마다 여는 템플 스테이로 오히려 시끌벅적한 사람의 소리가 더 높을까. 

그런 '봉녕사 뒤뜰'을 돌아보게 하는 이영춘(1941~) 시인은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력 40년이 넘는 동안 '귀 하나만 열어놓고', '슬픈 도시락',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개인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우리 시대의 전체적 삶의 비극성으로 확대'한다거나 '감정의 전경화(前景化)' 같은 시적 태도로 평가를 받는다. 

간결한 시에서 우리가 먼저 만나는 것은 절집의 적요다. 그 속의 고요한 소리들이다. 아니 절집의 적막을 깨우는 작은 소음들이다. 너무 작고 깨끗한 소리라서 더 청량한 고요를 일깨우는 나직한 소리들. 그런데 '사각사각 청무 깨무는 소리'라니! 자갈 밟는 소리가 청아하기 그지없이 울린다. 가만히 귀 열고 마음 열고 감각도 다 열면, 도심의 우리에게도 들릴 것만 같은 소리들.

그 '소리를 밟고 담 모퉁이를 돌아가는 동자승'이 있다. 절제된 표현으로 제시만 하는 이 시행에서 우리는 동자승의 뒷모습을 환히 그려본다. 아릿한 연민이며 끝없는 자비며 세상의 구제 등을 짚어보게 하는 승려들 민머리 같은 절 마당을 간간이 지나는 동자승의 해말간 표정이 겹친다. 우리네 삶의 고통과 불교의 깊고 넓고 높은 경지를 가만가만 헤아려보게 하는 절집 사람들의 모습. 

여기서 다시 '청무'와 '동자승'의 절묘한 유사성에 홀린다. 푸른빛이 도는 자그만 민머리나 맑고 깨긋한 표정을 떠올려보면 너무 아름답게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게 '자갈' 밟는 소리를 '청무'에서 나아가 '아득한 반야밀로 들어가는 소리'로 깊어지게 해놓고, 시인은 더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시의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소리는 그래서 여운을 더 길게 남긴다. '속(俗)에서 묻어온 내 신발 밑에서도' 당연히 무슨 소리가 들릴 터. 그 소리의 연원이 '사락사락 속(俗) 때 씻기는 소리'라며 자신을 그윽이 돌아보는 '속(俗)'의 자세를 함축하는 것이다. '아득히 묻힌다'는 마지막 구절도 간명해서 더 그윽해지는 여운의 소리로 행간이 넓어진다.

폭염에 지친 우리를 씻어주는 소리들. 절집에 가면 청아한 고요로 귀를 씻는다. 봉녕사는 도심 속의 절이 됐지만 여전히 적막한 고요를 품고 있으니 그 뜰에서 '속(俗) 때'를 씻어보는 것도 좋은 피서겠다. 마음의 때도 다 씻어내며 '사락사락' 맑아지게!

정수자 시인의 약력
이영춘 시인의 '봉녕사 뒤뜰에서'_3

수원시, 수원의 시, 이영춘 시인, 봉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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