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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행려병자의 노래 - 나혜석을 생각하며'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3-31 13:05:41최종 업데이트 : 2016-03-31 13:05:41 작성자 :   e수원뉴스
이승하 시인의 '행려병자의 노래 - 나혜석을 생각하며'_2
이승하 시인의 '행려병자의 노래 - 나혜석을 생각하며'_2


나혜석(1896~1948)이 생각나는 4. 그녀가 탄생한 달(428)인 데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여린 새싹들의 경이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생도 자신의 원하는 세계를 여는 데 놀라운 힘을 보였고, 그에 따른 대가도 누렸다. 비록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말이다.
 
'행려병자의 노래'는 그런 나혜석의 말년을 집중적으로 그린 시다. '화가 뭉크와 함께'로 등단(1984년 중앙일보)한 이승하(1960~) 시인은 말 더듬기 기법을 뭉크의 '절규'에 겹침으로써 절규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시인으로 비평가로 양수겸장의 문창과 교수로 활발한 문필을 보이고 있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로 널리 알려지며 '최초'가 여럿 붙는 선각적 인물이다. 누구보다 앞선 페미니즘을 그림과 시와 소설로 펼쳤고 대찬 평설과 이혼고백서로 장안을 들끓게 했다. 하지만 이혼 후엔 시집에서 쫓겨나며 아이들마저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였고, 마지막 힘을 쏟은 화가로서의 재기도 실패하며 결국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견고한 하나의 성채'인 집, 그 안식을 떠난 길에서의 귀결이 그랬다. 지금도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 이혼 후유증이 큰데 당시엔 오죽했겠는가. 더욱이 남편(김우영)의 불륜에 맞불 놓듯 자신도 자유연애를 잠깐 했으니 유교적 가부장사회의 집중 포화를 맞을 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도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고 주체성을 논했지만 세상의 부메랑은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 나혜석은 '다른 생을 위하여' 떠난다. '人形'에서 노라(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가 남성의 '노리개' 같은 삶을 거부하듯, 나혜석도 '다른 생'을 찾아 나선 것이다. 한 인간으로 올곧게 서고자 불끈불끈 겨눈 펜과 붓의 실현이란 어쩌면 '전율을 찾아서' 떠나는 길. 그런 선각이며 자취는 지금도 시퍼런 죽비다.
 
시인이 '낮은 천장 보며 죽느니 나, 하늘 보며 죽으리'라고 맺은 것도 그래서겠다. '하늘 보며 죽으리'라니, 안주를 떠난 삶의 결연한 전언이다. 가족의 '원망'이 따를 길이지만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무모함이야말로 온 삶을 거는 게 아닌가. 날개가 타들어가도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이카루스처럼!
 
사실 도전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깊은 산골짝 물도 제 터를 떠나지 않으면 드넓은 바다에 이를 수 없다. 인류 역사가 도전의 피로 새로 씌어왔듯, 여성의 역사 또한 나혜석처럼 끊임없이 유리천장을 깨는 도전의 상처를 통해 진전해왔다. 인습을 깨는 응전 끝에 여성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진 것이다.
 
시를 따라 서보는 나혜석 생가터(신풍동)에 만감이 오간다. 요양원으로 실려 가기 전 그녀가 머물며 화가로서의 재기를 꿈꾼 지동 셋집(지동 385번지 추정) 부근도 그렇다. 그림 소재가 많다고 아름다운 수원 자랑을 담은 글이며 그림들을 보면 행려병자로 떠난 그녀의 마지막이 더 아깝고 안타깝다.
 
일찍이 이렇게 겁 없이 뜨거운 여자가 우리나라에 또 있었던가. 온몸을 던져 생을 새로 쓴 여성이 얼마나 더 있던가. 그래서 수원의 노래로 함께 읽을 시며 소설, 연극, 그림 등의 재탄생도 견인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바탕 삼아 비약할수록 수원의 시 산책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승하 시인의 '행려병자의 노래 - 나혜석을 생각하며'_3
이승하 시인의 '행려병자의 노래 - 나혜석을 생각하며'_3

수원의 시, 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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