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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성리학자 1호 임윤지당을 아시나요(종합)
2016-05-12 13:35:03최종 업데이트 : 2016-05-12 13:35:03 작성자 :   연합뉴스
제10회 임윤지당 헌다례 13일 원주 선양관서 열려

(원주=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국내 여성 성 평등 선구자, 신사임당과 필적할만한 여성학자

조선 여성성리학자 1호 임윤지당을 아시나요(종합)_1

조선시대 최초이자 최고 여성성리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1721-1793)의 제10회 헌다례를 앞두고 임윤지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임윤지당은 남녀차별이 엄연했던 영·정조 시대 성리학자로, 당시 봉건사회에서 여성도 교육과 수양으로 성현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해 한국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윤지당은 함흥 판관을 지낸 임적의 딸이며, 대 성리학자였던 임성주의 여동생이다.

부친이 현감으로 부임한 양성(지금의 경기도 안성 양성면)에서 태어나 부친의 임지를 따라 함흥·서울 등으로 옮겨 다닌 윤지당은 1728년 부친이 병사하자 이듬해 가족을 따라 청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오빠 임성주에게 유교 경전과 사서(史書)를 배웠다.

18세 때 선비 신광유(申光裕)와 결혼하면서 원주로 시집와 55년 동안을 원주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인정이 많은데다 교양과 부덕을 쌓아 범절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던 윤지당은 그러나 결혼 8년 만에 사별하고 시동생의 아들을 입양했으나 그마저 일찍 죽어 불우한 여생을 보냈다.

평탄치 못한 가정사에도 윤지당은 낮에는 가사에 진력하고 밤에는 소리를 낮춰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가족들 몰래 쌓은 경전에 대한 조예와 성리학의 이해는 당시의 대학자들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 후대의 평가다.

죽은 뒤 유고 40여 편이 수습되었다.

대부분이 경전 연구와 성리설에 관한 논설 및 중국 역대 위인·영웅·학자들에 대한 인물 논평들이다.

그의 학문 업적은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라는 문집으로 남아 있다.

그는 특히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음양의 우주 질서와 같이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파악, 똑같이 중요한 필수적 존재일 뿐 우열을 가진 존재라고 보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는 2005년 5월 임윤지당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한편 한국여성예림회 원주시지회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30분 원주시 여성단체협의회와 임윤지당 얼 선양 후원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임윤지당 선양관에서 제10회 임윤지당 얼 선양 헌다례를 개최한다.

한국여성예림회는 임윤지당을 원주의 대표적인 여성 인물로 선양하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기일에 맞춰 헌다례를 하고 있다.

행사장 주변에는 임윤지당 얼 선양 문예작품 공모전 수상작품 운문과 산문 30편이 전시된다.

치악예술관 전시실에는 13일부터 18일까지 임윤지당을 주제로 한 여성서화전이 개최된다.

ryu625@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12 13:3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