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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친구의 이름이 바뀌었어요
2014-03-17 08:37:13최종 업데이트 : 2014-03-17 08:37:13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멀리 남미 쪽에 사는 친구가 귀국을 했다. 브라질 근처에 있는 나라인데, 낯선 이름 때문에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곳에 살고 있는 친구다. 시골의 한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는, 직장관계로 20대에 한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제집처럼 삼고,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살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_1
친구가 사는 니카라과의 크리스마스 풍경. 반미동맹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대통령은 니카라과의 우상이다.
 
대한민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 본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외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인데, 친구는 시간만 나면 또 다른 나라들로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세계의 여러 명소들을, 친구가 직접 찍어 보내주는 사진으로 생생하게 구경하며 대리만족을 누리고 있다. 

약 한 달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머물 예정인 친구는 여기에 와서도 또 여행을 떠났다. 반가워서 만나자고 연락을 했더니 베트남으로 일주일 여행을 간다며, 다녀와서 만나자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오늘 개명 신청했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주 불러줘야 좋다니까 새로운 이름으로 열심히 불러 달란다. 

친구의 이름은 선심이다. 아마 한자로는 착할 선, 마음 심 을 써서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그다지 촌스럽다거나, 부르거나 들을 때 거북한 이름도 아니다. 그런데도 개명을 했단다. 친구가 선심이라는 이름대신 택한 이름은 미승이라고 한다. 
박 선심에서 박 미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승이라는 이름에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오십년 가까이 부르던 이름대신 들어앉은 미승이라는 이름에 금방 익숙해지진 않으리라. 주변에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개명신청절차가 많이 완화 됐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_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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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_3
친구가 실시간으로 보내준 그랜드캐년의 모습.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본 모습이다.
 
동창모임밴드에 들어 가보면 낯선 이름이 정말 많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서 지워진 이름도 있을 것이며, 같은 반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처음부터 몰랐던 이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낯선 이름들 중에는 이름을 바꾸면서 알아 볼 수 없는 친구들도 섞여 있다. 그 수가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여러 명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이 골고루 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도 벌써 서너 명이 개명을 했다. 한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방법이 바로 이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꽃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제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도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꽃 자체에서 나는 향기뿐만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어질 때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향기가 또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은 꽃의 향기처럼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 번 이름 지어지면 평생을 나와 함께 해야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너무 촌스러워서, 발음상 놀림감이 되기 좋은 이름이어서, 또는 이름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이다. 

자신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들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을 간혹 접하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졌다. 개명신청이 아주 까다로울 때는 법적인 절차는 밟지 못하더라도 주변인들에게 바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가끔은 있었다. 

큰 딸아이의 이름은 조은아이다. 좋은 아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는데, 마침 그때 당시 인기 있던 아나운서의 이름과도 같아서 그 아나운서처럼 똑똑하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 까지 얹어서 그 이름에 흡족해 했다. 
둘째도 딸아이를 낳으면서 큰딸아이와 돌림자를 맞추다보니 마음에 드는 이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출생신고를 해야만 하는 마감 시한이 임박해질 때까지 아이의 이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출근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쳤다는 것이다. 

아이 이름도 아직 짓질 않았는데 무슨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인지 놀라서 물어보니 은영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해서 이미 모든 수속을 마친 후라고 한다. 큰딸아이의 이름이 인기 아나운서의 이름과 같으니, 둘째 딸아이의 이름도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던 여자 아나운서와 같은 이름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딸들도 두 아나운서 못지않은 뛰어나 능력을 가진 멋진 여성으로 자라날 것이라며 좋아한다. 그때 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당장 무효로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라 답답한 가슴만 때리며 남편을 원망했다. 

나는 은영이라는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기필코 아이의 이름을 바꾸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정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생겨나는 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싫어하던 딸아이의 이름도 부르다보니 정이 들어 버렸다. 
내 딸아이가 사랑스러운 만큼 그 아이의 또 다른 분신인 은영이라는 이름도 사랑스러워졌다. 고3인 딸아이의 이름은 여전히 은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좋은 이름이란 무엇일까? 부르기 좋고, 한 번 들으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그 사람을 기억 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좋은 이름이 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름의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흡족해 하는 것이다.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친구의 개명소식을 접하며 이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본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낯선 미승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나의 친구와 영원히 함께 할 동행이기에 열심히 불러보려 한다. 미승아! 내 친구 미승아! 새로운 이름과 함께 새롭게 펼쳐질 너의 앞날이 항상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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