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황혼육아에 힘들어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2014-02-16 11:24:22최종 업데이트 : 2014-02-16 11:24:22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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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주방에서 밑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한 중인데, 거실 TV에서 기러기 할아버지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기러기아빠는 아는데 기러기 할아버지는 뭘까 싶어 얼른 TV앞으로 다가간다.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키워주는 육아프로그램이 방송중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아이들. 예쁘고 사랑스럽다. 오후 4시정도면 놀이방에 왔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를 대신한 할머니 손이라도 잡고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정작 놀이방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아이들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모든 프로그램도 끝나고 엄마가 데리러 올 때 까지는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엄마는 날마다 퇴근시간이면 뜀박질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이로 인해 퇴근시간이 늦춰진 놀이방 선생님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하며 혹시 아이가 눈치꾸러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서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들의 육아를 떠맡게 된다. 놀이방에서 아이를 제 시간에 데려오기 위해서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는 필요하다. 우리 아파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십여 년을 살다보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40여세대의 이웃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딸 가진 집에서는 자녀의 결혼으로 식구가 오히려 늘어난다. 한참 예쁘고 싱그럽다 싶으면 어느새 결혼을 하게 되고 금방 아이가 생기면서 결국은 그 아이들까지 보태져서 친정살이를 하는 거다. 아예 함께 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가까운 곳에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함께 사는 것 이상으로 자주 보는 경우도 있다. 딸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의 생활을 열심히 하던 이웃들도 손자의 출생과 함께 자신의 생활은 사라져 버리고 육아에 허덕이며 힘들어 한다. 특정한 한두 집만 그런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딸 가진 이웃들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일이다. 운동하면서 자주 만나던 이웃도 손자가 생기고 나니 운동할 시간도 없고 항상 온몸이 아프다며 나만 보면 하소연을 한다. 육아는 정말 힘들다. 그동안 내가 누리던 모든 생활의 리듬이 깨져 버리고 아이에게 맞추어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 제대로 잠도 잘 수 없다. 아무리 손자가 예쁘기로 한번 경험해본 힘든 육아를 흔쾌히 맡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육아는 결국 만만한 친정엄마의 몫이 된다. 나도 내 아이 셋을 키우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피붙이로 느껴지는 정이 아무리 크고, 아이가 사랑스러워도 그것과는 별개로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내가 직접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는 드라마에서 육아문제로 갈등을 빚는 고부 사이를 보면 오히려 시어머니의 편에 서게 된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결혼시켰으면 그때부터는 부모도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손자를 대신 봐주지 않는다고 무조건 인정머리 없는 부모로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키우려는 노력을 최대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부모의 과도한 보살핌 속에 자란 아이들은 결혼이후에도 모든 걸 부모에게 의존하며, 끼니를 때우는 것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힘든 것들은 부모에게 기대며 쉽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가끔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는 아이를 업고 그 옆의 젊은 엄마는 가방하나 들고 사뿐히 걸어가는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당연한 듯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들도 문제이고 자식 고생 하는 게 안쓰러워 무조건 다 해주겠다며 나서는 부모도 문제이리라. 기러기 할아버지라는 낯선 단어로 인해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머지않아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절대 손자들 키워주지 않을 거야" 라고.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때도 과연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자신 할 수 없는 문제다. 육체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감성은 그대로이며 나이가 들어도 자신만의 삶을 누리고 싶은 노년에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본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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