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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감꽃이 피는 계절
2013-06-04 11:56:24최종 업데이트 : 2013-06-04 11:56:24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밤새 안녕이란 말이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어쩐 일인지 요즘은 기상 알람 소리를 듣지 않고도 새벽녘에 일어난다. 눈뜨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창문을 활짝 열고 꽃밭 점검하는 것이다. 요즘 꽃밭 가꾸기에 푹 빠져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베란다를 둘러싼 붉은 장미가 한창 멋을 내고 있다. 이제 장미꽃은 큰 언니처럼 든든히 자리를 잡고 손을 보지 않아도 나날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유월은 감꽃이 피는 계절_2
유월은 감꽃이 피는 계절_2

주말에 분꽃과 봉숭아를 옮겨 심었다. 비좁게 올라오는 것들을 뽑아 빈 쪽에다 심었는데 제법 오늘은 원래 있던 것들과 다르지 않게 싱싱하게 잎사귀에 힘이 있다. 그런데 꽃밭 중간 중간에 보지 못했던 것이 있다. 금송화와 흔히 깨꽃이라고도 불리는 사루비아가 심어져있다. 누군가가 모종을 옮겨 심은 듯하다. '경비실 아저씨가 옮겨 심으셨나?' 

아직 주차장의 차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이른 새벽 꽃삽을 들고 꽃밭으로 나갔다. 새로 온 모종에 온통 신경을 모아 나갔는데 '아~' 하고 신음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집 안에서는 향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닥에 진주를 뿌려 놓은 듯하다. 아이보리 진주가 무수하게 떨어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겨울 어느 날 하얗게 눈 내린 아침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보였던 그런 느낌과 같았다.

'아. 지금 감꽃이 떨어질 때구나' 화려한 장미꽃에 묻혀있는 동안 수줍은 색시 같은 감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콩알 줍듯이 꽃잎을 하나하나 주웠다. 손안에 팝콘처럼 감꽃이 작은 산을 이루었다.

유월은 감꽃이 피는 계절_1
유월은 감꽃이 피는 계절_1

감꽃의 향은 진하지 않아 코앞에 대고 눈을 지그시 감고 느껴봐야 한다.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 꽃의 향기라기 보단 풋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깊이 심호흡을 하고 향을 맡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겸손하게 느껴진다.

줄기가 긴 들풀에 감꽃을 꽂아 목걸이를 만들었던 시절이 슬라이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토막토막 되살아난다.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친구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지는 사람의 감꽃을 이기는 사람이 하나씩 따 먹었고 소꿉놀이할 때 밥 역할을 충실하게 했던 감꽃이다. 감꽃은 나무에서 금방 떨어진 것일수록 떫은맛이 강하다. 수분이 살짝 날아가고 갈색으로 변한 것은 떪은 맛이 많이 감소되어 제법 먹을만했지만, 형체 변형이 없는 금방 떨어진 꽃에 손이 먼저 가는 것은 뒷맛이야 어찌 되었던 예쁜 것에 현혹되기는 인지상정이었다. 감꽃에 대한 추억에 사로 잡혀서 동그마니 쪼그리고 앉았다. 꽃 터널처럼 뚫린 꽃잎사이로 작은 개미들이 들락날락 한다.

요즘 꽃밭에는 원하지 않는 잡초들이 하루가 다르게 게릴라처럼 쳐들어온다. 잡초를 뽑고 돌아서면 또 그 자리 이름도 모를 잡초들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무참하게 꽃삽으로 댕강댕강 허리를 잘라도 잘려나간 그 자리에 다시 새 생명이 움트고 있다. 내가 이기는지 네가 이기는지 날마다 반복되는 신경전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른다.

주차장 자동차의 시동소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한다. 멀리 슥삭거리며 비질하는 소리도 난다. 봉숭아와 분꽃을 솎아주었는데 하루이틀사이 또 비좁아졌다. 그냥 뽑아 버리기에는 아침마다 매일 눈 맞추고 정들었던 마음이 너무 몰인정하고 무참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세상살이가 모두 다수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필수 불가결한 것을.

꽃밭에 너무 긴 시간 동안 정신을 팔았던가? 흙먼지를 털고 돌아섰다. 진주를 뿌려 놓았던 바닥은 말끔하게 비질이 되어 있다. 우악스럽고 무자비한 손이 야속하다.

그 자리에 있어주길 원했던 것은 다른 이들이 원하지 않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내가 원하지 않으니 세상살이가 불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공평한 것이다. 세상에 필요한 존재만 있다면 또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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