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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꿈도 못 이루고…" 하늘로 떠난 복싱꿈나무
경기 후 쓰러진 김정희 군, "포기 모르는 아이였는데"
2016-10-10 14:00:01최종 업데이트 : 2016-10-10 14:00:01 작성자 :   연합뉴스

"국가대표 꿈도 못 이루고…" 하늘로 떠난 복싱꿈나무
경기 후 쓰러진 김정희 군, "포기 모르는 아이였는데"



(화성=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뭘 하면 포기하지 않고 똑 부러지게 열매를 잘 맺는 아이이었어요. 눈만 뜨면 엄마·아빠가 눈도 주고 심장도 주려고 했는데…."
10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고교생 권투 유망주이었던 아들 김정희(16·수원 영생고 1학년) 군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정을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입을 뗐다.
김 군은 지난달 권투 경기 후 휴식하던 중 쓰러져 병원에서 한 달여 동안 치료받다가 전날 숨졌다.
김 군의 부모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충혈된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지난달 7일 '제48회 전국복싱우승권대회' 고등부 경기가 열린 충남 청양의 한 경기장.
64㎏급 8강전에서 0-3 판정패를 당하고 2층 관중석으로 올라가 아버지 곁에서 휴식을 취하던 김 군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헬기를 이용해 천안 단국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온 김 군은 9일 오전 결국 숨을 거뒀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한 달여만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국가대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한 '복싱 고교생 유망주'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희 군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운동 삼아 시작한 복싱이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은 복싱 유망주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이후 복싱 선수의 길을 걷겠다며 체고 전학을 계획하고 운동해왔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지난해 5월 전국 소년체전에 경기도대표로 출전한 뒤 '나도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마냥 좋아하던 맑고 꿈많은 학생이었다.
정희 군 어머니는 "의사가 소생하기 어렵다며 처음에는 수술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수술해보겠다며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안에 나오면 포기하는 거라고 하고 수술방에 들어갔는데 1시간 30분을 넘겨도 안 나와 안도했죠. 근데 1시간 40분쯤 되니 나와 '뇌사'라는 거에요. 기가 막혔죠"라며 눈물을 삼켰다.
'뇌사' 판정을 받았지만, 가슴에 손을 대면 심장도 잘 뛰고 손을 잡으면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살 수 없다'는 말이 부모님은 믿어지지 않았다.
'수술 뒤 사흘도 못 버틸 것으로 예상했는데 체력이 좋아서인지 어려서인지 한 달여나 버텼다'고 나중에 의사가 말했다고 전한 어머니는 이런 아들이 고마워서인지 또 눈물을 쏟아냈다.
정희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이자 엄마의 권유로 1학년 겨울방학 때 운동 삼아 권투를 시작했다.
집 근처 권투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실력이 늘자 체육관 관장은 2학년 때 정희를 생활체육대회에 출전시켰다.
생활체육대회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여러 메달을 따오며 아이가 권투에 너무 빠지자 김 군 어머니는 1년도 채 안 돼 운동을 그만두라며 반대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길이 쉬운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도 될까 말까인데 절대로 꿈꾸지 마라며 말렸었죠."
그러나 정희 군은 중학교 3학년 때인 2월 권투체육관 소속으로 출전한 전국소년체전 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경기도대표로 선발됐다.
정희 군 어머니는 "판정까지 갔다면 엘리트 선수들인 학교 복싱부 선수에게 밀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3경기 모두 TKO로 이겨 운동을 말리는 게 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정희 군은 작년 5월 제주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한 후 자신감을 더 느끼게 됐다.
어머니는 "메달은 못 땄는데 엘리트 코스로 밟은 다른 선수들과 경기해보고 나서 눈이 열린 것 같더라고요. '나도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며 그렇게 좋아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정희 군의 복싱 자질을 알아본 경기체고는 소년체전 도 대표로 선발된 후 진학을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운동을 그만두는 것으로 정희 군과 상의한 후 체고 원서를 넣지 않았다.
하지만 정희 군의 권투에 대한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원서가 마감돼 신입생으로 입학은 어렵지만, 결원이 생기면 경기체고로 전학하기로 하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학을 염두에 두고 체고와 가까운 수원 영생고로 진학한 뒤에도 집 근처 체육관에서 훈련하며 '국가대표' 꿈을 키워왔다.
체고에 결원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사이 정희 군은 체육관 관장과 함께 지난 6월 전국 대회를 준비했고, 이때 화성시 복싱협회 소속으로 출전했다.
이 무렵 체고에 결원이 생겨 전학할 수 있었지만, 화성시 복싱협회와 관계 등 여러 문제가 잘 안 풀리며 이번에도 체고 입학은 포기해야 했다.
정희 군 어머니는 "우리 아이 재능을 아껴 다들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주셨는데…아이가 그렇게 갔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사실 부모는 그래요. 복싱 선수로서 명예, 국가대표 그게 모가 필요합니까. 아이만 일어나면 술·담배 좋아하는 애들 아빠가 다 끊고 몸 관리 잘해 정희한테 필요하다면 눈도, 심장도 줄 거라고 했는데, 눈만 떠주면 다 주고 싶은 그런 게 부모 마음이에요."
이날 오전 시간인데도 시험 기간을 맞아 일찍 하교한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빈소를 찾아 먼저 떠난 친구를 배웅했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다는 동갑내기 한 여학생은 "항상 재밌고 밝았다. 유치원 때 종일반도 함께 다녔고 동생 하고도 친했고, 간혹 문자 보내며 지낸 친구였다"고 김군을 떠올렸다.
김 군의 발인은 11일 오전 8시 30분. 유족은 부모와 동생 둘이 있다.
gaonnu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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