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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모네를 향한 수채화 반 회원들의 열정
매주 금요일, 인계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수채화에 흠뻑 빠지다
2024-04-26 18:44:08최종 업데이트 : 2024-04-29 14:34:53 작성자 : 시민기자   안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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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교실이 있는 인계동 행정복지센터 2층


매주 금요일 10시 중년 주부들이 삼삼오오 인계동 행정복지센터 2층에 오른다. 함께 모여 수채화 드로잉에 열중하는 곳. 수채화 반 스케치 모습이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환담이 끝나면 그동안의 숙제를 마무리하기에 바쁘다. 학생 시절 사생 반에서 공부한 회원이 있지만, 중· 고등학교 교문을 나선 뒤로 붓을 아예 잡아 본 적이 없는 회원도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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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이론에 대하여 열강하시는 최순자 선생님


수업은 중등교사 자격증을 소유한 최순자 선생님이 기본기 다지기 훈련을 위해 원기둥, 원뿔, 사각 기둥 등 그림의 가장 기초가 되는 도형 훈련을 시작으로 스케치 잘하는 방법 등 아주 기초적인 것을 강의한다. 그리고 인계동 행정복지센터 수채화 반에서는 어반 스케치도 같이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반스케치를 배우면서 야외스케치도 나가서 힐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그림을 통해서 자아 성취감과 자존감도 높아지고, 모든 자연과 사물을 그림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질 수 있기에 더더욱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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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수강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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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시연을 하고 있는 장면


동양화, 서양화, 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를 배우는 심화 수업은 기본기가 안 된 필자로서는 힘에 벅찰 때가 있다. 그러나 수업을 재미 있게 이끌어 가는 선생님의 능력 덕분에 다양한 회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최순자 선생은 "미술을 배우려는 분들에게 행복을 전해 주고 싶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라며 진심어린 고백을 전한다. 

수업 시간에 계속하여 강조하는 핵심이 있다. 공기원근법, 선원근법을 활용하여 물감의 농도와 채색을 조절하는 것이다. 수채화의 물맛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은 명암과 채색이라 할 수 있다. 높이, 기울기, 각도, 선의 강약 등 이론을 실전 채색에 접목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 수목 그림에서도 가지와 잎의 모양새가 다름을 보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을 금방 식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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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등대

 

필자가 그림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있다. 적당한 수분이 있는 상태에서 다음 그림 단계로 넘어가는 '때'를 아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교향곡이라고 하더라도 쉼표는 필수적이다. 그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심리적 쉼표야말로 양질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채색하는 방법, 건조 후에 채색하는 방법 등 때에 따라 병행하면서 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강의 중 가끔 미술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 회원들의 이론 다지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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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거닐고 있는 학


함께 수업을 듣는 수채화 반 회원들의 입문 동기가 궁금했다. 한 회원은 암 치료가 끝나고 힐링 시간을 갖기 위하여 붓을 들었는데, 얼굴이 아주 좋아졌다고 한다. 성취감과 동료들과 만난 교류야말로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그 분은 미술대학 공예과 출신이라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빠르다. 수업 난이도가 결코 만만치 않음에도 선생님이 직접 보여주는 드로잉과 채색 시연, 일대일 가르침, 기본기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교수 방법 덕분에 회원들의 수준이 진일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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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이 있는 시골 마을 풍경


수채화 반 총무인 회원은 "어릴 적부터 가장 부러웠던 재능 한 가지를 꼽자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었다. 꿈만 꾸던 분야였는데 우연히 배울 만한 취미를 찾아 주민 복지 프로그램을 검색하던 중 수채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운명일까?" 이 회원은 그림이 따뜻하다는 게 장점이다. 외모만큼 품성 또한 따뜻하다. 회원들의 성품이 그림에 투영된다는 게 느껴진다. 꼼꼼하고 세밀한 성격의 소유자는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에도 섬세하게 접근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출산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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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이미지를 선사한 설경


얼마 전까지 같이 공부한 88세 회원의 모습은 젊은 회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모녀와 함께 수업에 참여했는데 보기에도 좋았다. 음악사를 공부하던 한 회원은 "밀레의 〈만종〉 그림이 가슴에 와 닿아 그분의 100분의 1이라도 그려보고 싶다. 그의 질곡이 있던 삶을 볼 때마다 그림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명화이지만 필이 꽂혀 가슴에 물결이 오는 모양이다.

"어릴 적 생활고로 그림은 언감생심, 질곡의 고난을 겪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힐링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한 회원의 말에는 가슴에 작은 파도가 밀려 왔다. 대부분 회원의 역사는 경제적 고난, 사회에서의 치열함이 공통 분모였다. 은퇴 후의 가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수채화 교실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고백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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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를 앞둔 시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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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동백꽃 풍경


작은 교실이지만 소통을 통하여 소속감을 느끼게 된 것 또한 부가적으로 얻은 큰 소득일 것이다. 가장 큰 어젠다는 〈자신을 찾고 싶다〉는 다소 철학적인 깨달음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성경의 말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양육하는 것이야말로 보배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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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출근길 풍경
없음한적한 이웃 마을 풍경


그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 자기의 사고를 그림에 투영해야 한다는 고민은 있지만, 이를 통하여 스스로 성취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나를 성장시키는 데 동기 부여가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는 60대 후반의 한 여성 회원은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통해 밝고 행복한 빛을 표현하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모든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라는 하이틴의 꿈을 펼쳐 보인다. 인생의 역주행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항간의 속설이 섬광처럼 스쳐온다. 그는 얼마 전 시 창작반에도 등록해 '1인 3역을 감당하느라 힘들다'고 하지만 불만으로 들리지 않고, 기쁨으로 소화한다는 소망처럼 들린다. 그림을 통하여 활력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인계동 수채화 반 회원들의 소망을 담은 그림들은 독자를 설레게 하는 소재들이 많다. 설경, 친근한 이웃 마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등대, 개울물이 있는 시골 산책길, 밀밭이 있는 시골, 연못을 거닐고 있는 학, 화사한 벚꽃, 서구의 출근길 모습 등은 친화적이어서 현지에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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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에 잠긴 어촌 마을 풍경


미술을 통하여 얻는 소득은 다양하다. 그중에 미술 심리치료와 실버미술이 있다. 실버미술은 치매로 가는 길을 늦추거나 많이 치유가 된다. 그런 면에서 많은 시니어들에게 수채화를 권하고 싶다. 머리 쓰고, 인지 활동을 넓혀 건강하게 노년을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싶다.


화가의 경우 모네는 86세, 미켈란젤로는 89세, 미로는 90세, 피카소는 92세, 샤갈은 98세를 살았고, 여성 화가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장수했다. 오키프(O'keeffe), 부르주와(Bourge-ous)가 99세, 모지스(Moses)는 101세, 태닝(Tanning)이 102세까지 살았고, 음악가로 바이올리니스트 기틀리스는 올해 98세, 피아니스트 호르쇼프스키는 101세,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살스는 97세인 것을 보면 노년이 되어서도 일상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없음화사한 벚꽃 풍경


사실 인계동 수채화 반은 정물화보다 자연 풍경과 몽환적인 설경, 채색을 통한 원근법과 선원근법을 철저히 적용해야 하는 차원 높은 그림 공부라 결코 만만치 않다. 치밀성과 관찰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관찰력을 말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큼 강조한 화가가 어디 있을까. 인체 해부도를 보면 살아 움직이는 실체를 느끼게 한다. 선생님도 회원들에게 늘 "사물을 보더라도 세밀하게 볼 것"을 강조한다.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의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라는 말이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좋은 스승과 만남은 더욱 그렇다. 이론으로 무장한 강의, 실연을 통한 드로잉 방법 교수, 우선순위에 따른 채색 연구, 기다림의 철학을 습득하게 되는 교실의 작법들이 또 하나의 성숙한 예비 화가로서 나아가는 발돋음의 시작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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