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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솔향·시향 풍기는 '조지훈 문학길'
2017-06-15 08:02:50최종 업데이트 : 2017-06-15 08:02:50 작성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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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솔향·시향 풍기는 '조지훈 문학길'

(영양=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경북 영양은 인접한 봉화, 청송과 함께 경상도 3대 오지 중 하나로 흔히 BYC로 불린다. 봉화·영양·청송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딴 BYC 가운데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영양의 옛 지명 역시 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선비가 숨어 살기 좋은 곳이기에 '고은'(古隱)이라 불렸다. 서울의 1.3배 크기인 영양군은 전체 면적(815.1㎢)의 85.8%가 임야인 산간지역으로 인구도 1만 8천여 명에 불과하다.



외씨버선길은 BYC와 강원도 영월의 마을 길과 산길을 이은 길로, 지도에 나오는 길 모양이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하여 맵시가 있는 외씨버선을 닮았다. 영양 출신인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 중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
청송 주왕산 입구에서 시작되는 외씨버선길은 영양과 봉화를 거쳐 영월 관풍헌에서 끝난다. 이 길은 주왕산ㆍ달기약수탕길, 슬로시티길, 김주영 객주길, 장계향디미방길, 오일도 시인의 길, 조지훈 문학길, 치유의 길, 보부상길, 춘양목솔향기길, 약수탕길, 마루금길, 김삿갓 문학길, 관풍헌 가는 길 등 총 13개 테마별 구간과 연결구간 2개를 모두 합치면 240㎞나 된다.
이번에 걸은 조지훈 문학길은 영양전통시장에서 출발해 노루목재, 척금대, 금촌산길, 영양향교를 지나 조지훈 시인의 마을인 주실마을과 조지훈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13.7㎞다. 청량한 숲길과 호젓한 산길에 취하다 보면 5∼6시간 걸린다. 오일장(4, 9일)이 서는 날은 주실마을에서 시작해 영양전통시장에서 마치는 것이 좋다.
허진섭 문화관광해설사는 "조지훈 문학길은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승무의 춤사위 같은 길"이라며 "조붓한 산길과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반변천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에 사뿐사뿐 빠져든다"고 말한다.



◇ 승무의 춤사위 같은 산길과 숲길

'오일도(1901∼1946) 시인의 길'의 종착지이자 조지훈 문학길 시발점인 영양전통시장 내에는 외씨버선길 영양객주가 있다. 이곳에 들르면 외씨버선길 자료는 물론 조지훈 문학길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영양객주에서 영양전통시장을 거쳐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영양중앙초등학교와 영양교육지원청을 스치면 외씨버선길 리본과 안내이정표와 마주친다. 이곳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빨갛게 익은 산딸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몇 걸음 오르면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반긴다. 느티나무에 기대면 삼지연꽃테마단지와 삼지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허진섭 문화관광해설사는 "삼지마을은 일월산(日月山ㆍ1,211m)에서 발원한 반변천(半邊川)이 옥산(玉山ㆍ현재의 코끼리산)에 부딪혀 마을을 돌아나갔던 곡류단절지로 풍경이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하다"며 "한양의 세도가 조원이 입향 이후 한동안 한양 조씨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설명한다. 원댕이못(元塘池)과 탑밑못(塔底池), 바대못(坡大池) 등 세 연못이 '삼지'(三池)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삼지마을이란 명칭은 바로 이 세 연못에서 비롯됐다.
나지막한 산길을 내려서면 연꽃을 중심으로 한 생태 테마공원인 삼지연꽃테마단지다. 연꽃은 물속에서 아직 감감무소식인지라 눈길로 테마단지를 훑어보면서 물레방아와 나무다리를 지나 아기탄생기념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아기탄생기념나무숲은 아기 탄생의 기쁨을 나무와 함께 간직하고 저출산 극복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조성된 숲으로 나무마다 아기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



아기탄생기념나무숲을 거쳐 31번 국도 밑 굴다리를 빠져나가면 흰 사과꽃과 연초록으로 짙어가는 나무들, 그리고 푸른 하늘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금 더 걸으면 삼지2리가 탑밑못과 수백 년 세월을 견뎌낸 노송을 끼고 그림같이 앉아 있다. 예전에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동이 마을이었고, 마을 뒷산에는 신라 시대 고찰인 영혈사가 있었다. 옥산에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3층 전탑(塼塔)은 화강석을 전돌 모양으로 잘라 축조한 석탑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탑밑'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 양쪽에 늘어선 노송군락은 정든 고향길처럼 포근하다.
삼지 2리 마을회관 앞에 세워 놓은 이정표에는 '영양전통시장 2.6㎞, 조지훈 문학관 11.1㎞'라고 씌어 있다. 수로 옆 안내판에는 '삼지수로는 삼지리에 있는 물길인데 일제 말에 착공하여 1957년에 준공되었다. 일월면 곡강리에서 물을 끌어 동굴을 뚫어 물길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 척금대, 곡강 팔경의 으뜸인 바위벼랑

시멘트 언덕길을 150여m 오른 뒤 오른쪽 노루목재로 들어선다. 길섶에서 가래나무와 보라색 붓꽃이 반기고 길 곳곳에는 두더지가 판 흔적이 보인다. 흙길과 돌무더기 길을 밟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한다. 조붓한 산길을 만나면 느릿느릿 걷는다. 눈 닿는 곳 어디나 초록 세상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햇살이 초여름 햇살처럼 따사롭고,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일깨워준다. 노루목재 정상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어른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좁은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곡강 팔경의 으뜸인 바위벼랑 '척금대'(斥金臺)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자그마한 산골 마을이 반긴다.
사과나무밭과 산골 마을 길을 지나면 다슬기가 넘쳐나는 반변천의 징검다리다. 돌다리 사이로 시리도록 깨끗한 물이 흐른다. 손으로 떠 마시면 갈증을 말끔히 씻어준다. 징검다리에서 바라본 척금대 풍광은 다른 어느 곳에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일월산 동쪽에서 발원한 반변천은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형성해 굽이마다 절경을 연출하는데, 그중 하나가 반변천을 따라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척금대다. 1692년(숙종 18년) 현감 정석교가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면서 척금대라고 이름 지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 망운정(望雲亭)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9호인 이 정자는 망운 조홍복이 건립한 정자로 1826년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자식이 부모를 사모한다'는 뜻의 망운정을 지어 아침과 저녁으로 묘소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망운정 앞 밭에서 고추 모종을 심던 주민들이 인사를 건넨다. 시간 있으면 모종 심는 것 도와주고 가라는 말이 반갑게 느껴진다. 내디딘 발이 한결 가볍고 탄력을 받는다. 들길을 지나면 지방도로다. 뒤로 척금대를 두고 100여m 도로를 따라가면 금촌산길 입구(영양전통시장 6.5㎞, 조지훈 문학관 7.2㎞)다. 곡강리 산길이라고 불리는 2㎞의 이 구간은 수비면 쪽에서 영양읍으로 학생들이 통학하던 산길이다. 굽은 강이란 뜻의 곡강(曲江)은 마을 생김새가 돛단배 모양이라 하여 우물을 파지 않는다고 한다. 배의 밑바닥을 파면 배가 파선되기 때문이다.



◇ 낙엽송 사이 거닐며 맡는 진한 흙내음

흙길에 두껍게 깔린 낙엽을 밟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한다.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다소 좁은 길이 이어진다. 급경사가 없어 무리 없는 길이지만 7㎞ 정도 걸어서 그런지 다리가 뻐근하다. 흙길 양옆으로는 낙엽송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고 참나무와 낙엽송 사이를 거닐며 맡는 흙내음이 진하다. 땅에서는 앙증맞게 피어난 연자주색의 제비꽃과 노란색의 양지꽃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숲 속 곳곳에 피어난 분홍빛의 개복숭아꽃이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988년 완공된 곡강교 건너 도로변을 따라 걷다 일월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일월면사무소를 지나면 향교길 입구다. 도로변에서 200여m 들어가면 조선조 숙종 9년(1683)에 건립된 영양향교(경북 문화재자료 75호)가 산 아래 우뚝 서 있다. 이곳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ㆍ가을에 공자와 우리나라의 명현에게 제(祭)를 올린다.
수령이 360년인 향나무와 배골마을을 지나 이곡교 바로 앞에서 주실마을을 향해 걷는다. 이제 남은 거리는 2.4㎞, 살짝 풀린 다리에 힘을 실어야 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들 사이를 걸을 때는 바람에 실려온 솔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가파르지 않고 평탄한 산길을 빠져나와 억새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조지훈 문학관 570m, 조지훈 생가 880m'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일월삼거리에서 반변천과 합류하는 장군천(壯軍川) 변을 따라가면 느티나무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림청과 사단법인 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가 2013년 공동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주실마을 숲은 풍수지리상 수구(水口)에 조성된 전형적인 비보(裨補) 숲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과 함께 바람을 막는 방풍림의 역할도 하고 있다. 장군천은 '주계천' 또는 '매화천'으로 불리었는데 조선 영조 때 이 지역 출신인 오삼달 선생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난 뒤 장군으로 추대되면서 '장군천'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 붓끝 같은 산봉우리 마주한 조지훈 생가

한양 조씨들이 모여 사는 주실마을에 들어서면 발걸음은 청록파시인이자 국문학자 조지훈(1920∼1968)이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웠던 월록서당에서 멈춘다. 월록서당은 중간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의 방에는 '존성재'(存省齋), 오른쪽 방에는 '극복재'(克復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월록서당을 거쳐 조지훈의 문학 세계와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지훈 문학관으로 간다. 단층으로 지어진 'ㅁ' 자 평면의 목조 기와집인 문학관에 들어서면 조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흘러나오고,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소년 시절 즐겨 읽었던 책을 비롯해 시인이 사용했던 가방과 가죽 장갑, 문갑, 파이프, 안경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벽 한 면에는 시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100여 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문학관에서 몇 걸음만 보태면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이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호은종택은 산봉우리가 붓끝과 같이 생긴 '문필봉'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터를 잡은 명당이다. 조지훈은 세상을 향해 쓴 소리와 곧은 소리를 터뜨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지조론에서 "지조는 선비의 것이고, 교양인의 것이며 모름지기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어야 하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주실마을을 느릿느릿 걷는다. 자연과 어우러진 유서 깊은 마을을 거닐며 시인의 시향을 느껴보는 것 역시 삶의 큰 활력소이자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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