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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에 맞서다]⑧ 쇠락했던 '우영우 동네', 주민의 힘으로 되살아나다
'성안마을' 수원 행궁동, 신도심 부상하자 쇠락일로 걸어
"작은 것부터 바꾸자"…주민들, 거리 청소하고 벽화 그리며 변화 꾀해
'차없는 마을 축제' 대박치며 부활…'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촬영명소 부상
주차난·교육환경 등 과제…주민들 "평생 살기 좋은 곳 만들 것"
2023-07-11 17:56:31최종 업데이트 : 2023-07-03 07:00:05 작성자 :   연합뉴스
행리단길 걷는 젊은이들

행리단길 걷는 젊은이들

[지방소멸에 맞서다]⑧ 쇠락했던 '우영우 동네', 주민의 힘으로 되살아나다
'성안마을' 수원 행궁동, 신도심 부상하자 쇠락일로 걸어
"작은 것부터 바꾸자"…주민들, 거리 청소하고 벽화 그리며 변화 꾀해
'차없는 마을 축제' 대박치며 부활…'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촬영명소 부상
주차난·교육환경 등 과제…주민들 "평생 살기 좋은 곳 만들 것"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오래된 궁궐과 세련된 카페,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데, 서로 잘 어울려서 신기하네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지난달 24일 주말을 맞아 친구와 함께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을 찾은 서울시민 김수정(26) 씨가 '행리단길'을 접한 첫인상이다.
행리단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성곽 주변 거리를 부르는 말이다. 화성과 각종 맛집, 공방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내며 젊은 층의 발길을 끌자 이태원 인근 유명 거리 '경리단길'과 행궁동을 합쳐 만들었다.
행리단길은 수많은 젊은이와 관광객, 외국인들이 내뿜는 활기와 호기심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이날은 행궁동 일부 거리에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자동차 없는 날'이었다. 길 위를 차가 아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경적 대신 왁자지껄한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찻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행궁동 마을에서 준비한 빨강, 노랑, 파랑 분필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찻길에 또 다른 세상을 그려냈다.
하지만 행궁동의 10여년 전 모습은 이처럼 활기찬 모습이 아니었다.

◇ 사라진 '팔부자거리'의 榮華…거리에 빈 점포가 넘쳐나다
행궁동은 정조의 화성(華城) 축조와 함께 수백 년간 영화를 누려왔다.
1794년 화성 축성을 시작한 정조는 수원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전국 각지의 부자들에게 무이자 자금을 대출해주고 화성 내에 점포를 차리게 했다. 인삼 상권과 갓 제조권을 주는 등 파격적인 혜택도 제공했다.
전국 팔도의 부자들이 모여 상권과 마을을 이룬 '팔부자거리'는 이렇게 생겨났다. 화성 안에 자리 잡아 '성안마을'로도 불린 행궁동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80년대까지 수원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 앞에서는 행궁동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영통지구, 북수원 등 신도심 개발로 인구와 상권이 빠져나가자 행궁동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보존을 위해 성 안팎이 건축 규제 대상으로 묶여 주택 신·증축이 제한되자 행궁동은 더욱 낙후했다.
거리마다 빈 점포가 넘쳐났다. 인파 또한 사라졌다. 1896년 개교한 신풍초등학교는 117년 역사를 뒤로하고 2013년 광교신도시로 이전했다.
수원 토박이로 성안마을로 시집온 조각가 이윤숙(62) 씨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2000년대 중반쯤 되니까 사람들은 다 떠나고 거리엔 쓰레기만 뒹굴었죠. 개는 물론이고 지나던 사람들이 대변을 보고 갈 정도였어요. 동네가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었죠."

◇ 청소하고 그림 그리자, 동네가 바뀌다
신도심 개발과 상권 이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주민들은 무력했다.
하지만 쇠락해가는 마을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몇 안 되는 학부모들이 모여 등하굣길 안전지킴이로 나섰다. 이후 상인과 지역 작가들이 힘을 보탰다.
'우리 행궁동 이야기'라는 모임을 만들어 골목 청소, 도로 정비 같은 다양한 마을 살리기 운동을 했다. 지역소멸에 맞선 주민들의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이었다.

전시관 '대안공간눈'을 운영하던 이윤숙 조각가도 마을 살리기에 나선 주민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2009년 대안공간눈을 거쳐 간 예술가 1천여 명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행궁동을 살릴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구 반대통에서 답장 한 통이 왔다. 브라질 미술작가 라켈 샘브리가 '벽화 그리기'를 제안했다.
라켈과 동료 예술가들은 행궁동에서 가장 어두운 골목의 가장 낡은 담벼락부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50여 점의 벽화를 그렸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쓰러져가던 담벼락이 예뻐지자 큰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일부러 골목길에 들어와 보고 갔다. 사람들이 늘어나자 주민들이 신이 나 매일 청소하고 벽화를 관리했다.
이 대표는 "골목길마다 쓰러져있던 술꾼, 담배 피우던 불량 청소년 등이 거짓말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 세계 최초 '생태교통 축제', 마을을 띄우다
행궁동에서는 벽화 그리기 말고도 다양한 공공예술이 피어났다.
예술가들이 5명씩 짝을 지어 마을의 7개 경로당을 하나씩 맡았다. 6개월간 동네 어르신들과 지내며 그림 그리기, 조각하기, 여치집 만들기, 컵 받침 꾸미기 등을 함께 했다. 주민솜씨전, 요리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도 열었다.
주민들의 풀뿌리 운동이 하나둘씩 결실을 보자 수원시도 힘을 보탰다.
당시 예술가들은 수원시에서 내준 빈 건물에 입주해 이러한 공공예술을 하고 자신의 작품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 압권은 2013년 행궁동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생태교통 페스티벌'이었다.
행궁동 내 2천200여 가구, 4천300여 명의 주민이 보유한 자동차 1천500여 대가 마을 밖으로 옮겨졌다. 주민들은 한 달 동안 차 없이 걷고, 다니고, 생활했다.
유례없는 생태 축제는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세계 45개국 95개 도시 대표를 비롯해 100만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행궁동을 찾았다.
주민 이경아(55) 씨는 "페스티벌 과정에서 옛길을 복원하고 전봇대를 다 정리해 동네가 말끔해졌다"며 "이로써 행궁동이 부상할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 영화·드라마까지 진출…"평생 살기 좋은 동네 만들 것"
되살아난 동네는 이제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까지 등장했다.
2019년에는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해 행궁동 통닭거리가 특수를 누렸다.
영화에는 수원의 대표 명물인 왕갈비와 통닭의 맛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수원왕갈비통닭'이 등장한다.
행궁동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김경재(47) 씨는 "어렸을 때부터 수원에서 살아 갈비맛이 나는 통닭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보다 먼저 만들었는데 영화 개봉 후 불티나게 팔렸고, 통닭거리 매출도 크게 올랐다"고 전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행리단길의 한 작은 식당이 주인공 우영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방영 후 이 식당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영화,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행궁동이 이제 쇠락에서 벗어나, 깔끔하고 아름다운 활기찬 동네로 완전히 변신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행궁동에서는 여러 공유경제 실험과 다양한 관광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황현노(66) 씨는 다른 주민들과 힘을 합쳐 행궁동의 낡은 한옥주택 4채를 리모델링해 만든 양조장에서 막걸리 '행궁둥이'를 출시했다.

그는 "지난해는 4천병, 올해는 수원시의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돼 5천병 넘게 생산할 계획"이라며 "조합원도 지금은 30명이 넘는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화성 일대 순회 관광차량인 '화성어차' 이용객은 지난해 13만명에 달했다. 헬륨 기구에 올라 화성의 경치를 감상하는 '플라잉수원' 이용객도 6만 명에 육박했다.
지난 수년간 행궁동의 경제활동 종사자 수는 1천 명 넘게 늘었고, 유동 인구는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행리단길뿐 아니라 행궁동의 골목 곳곳에는 가지각색의 점포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 다른 감성을 뽐내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활기를 되찾은 행궁동에서 주민들은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자기 집 앞에 차를 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진 주차난, 주변에 학원이 없어 자녀의 대입 준비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행궁동주민자치회 김광원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평생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모든 것은 주민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교통 페스티벌 당시 부시장으로 재직하며 총감독을 맡았던 이재준 수원시장은 "페스티벌 때 행궁동에 달방을 잡고 주민들과 함께 일하며 막걸리 마시던 게 기억난다"며 "행궁동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자, 살기 좋은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zorb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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