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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에 기증된 유물 한곳에서 관람
수원화성박물관 개관5주년 기념 기증유물특별전 ‘또 다른 역사의 시작’
2014-05-27 10:34:43최종 업데이트 : 2014-05-27 10:34:4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 전시기간 : 2014. 5. 29(목) ~ 2014. 8. 3(일)
  ○ 전시유물 : 번암 채제공 초상(보물 제1477-1호), 허목 초상, 홍가신 초상,
                김후 초상, 홍영식 시호칙명, 최벽 장원급제 과지 등
  ○ 문의 031-228-4218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

수원화성박물관은 개관5주년을 기념, 그간 기증되었던 유물을 총 망라한 기증유물특별전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을 오는 29일부터 개최한다. 

수원화성박물관은 2009년 4월 27일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14명의 기증자가 2천193점의 유물을 기증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기증자별로 구성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개막행사는 취소되었으나 특별전시는 정상적으로 개최된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집안에서 가전되어 오던 유물을 공공기관에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소중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수원시에 기증된 유물 한곳에서 관람  _1
번암 채제공 후손 기증유물 채제공 초상 시복본

□ 번암 채제공 후손 기증유물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조선후기 학문과 정치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시대의 대표적인 재상으로서, 초대 화성유수를 지냈으며 화성성역을 총괄하여 수원과의 인연이 각별했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채제공 집안에서 보물 제1477-1호로 일괄 지정된 채제공 초상을 비롯해 정조 어찰 등 153점을 기증했다. 기증자는 채제공의 6대 후손 채호석이다.

채호석이 유물을 기증하기까지 부인 김양식 역할이 지대했다. 평강채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양식은 현몽을 하였다고 한다. 
꿈에서 이 집안의 불꽃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라는 조상의 말씀을 들은 이후 흩어진 집안의 유물을 찾기 시작하였다. 김양식은 이 외에도 집안에서 가전되던 생활유물 38점을 박물관에 추가 기증했다. 채제공의 7대후손 채수은은 채제공의 유려한 필적이 새겨져 있는 채제공 부인 묘의 상석과 망주석, 채제공 아들인 채홍원 부부의 묘지석 등 일괄 20점을 기증했다. 

□ 미수 허목 후손 기탁유물
숙종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집안에서 허목의 부친 허교 초상과 허목 초상 등 6점을 기탁했다. 
허교(許喬, 1567~1632)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슬하에 허목, 허의(許懿, 1601~1668), 허서(許舒, 1612~1661)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둘째 아들 허의는 허교와 허목의 시사본(試寫本)을 그린 작가로 전해진다. 현재 전해오는 허목의 초상은 모두 6점인데 현재 수원화성박물관에 3점이 보관되어 있다. 유물의 기탁자는 허목의 12대 종손 허찬(許燦)이다.

이 유물은 숙종대왕이 허목에게 하사한 집인 은거당에 보관되어 왔다. 은거당이 소재한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는 양천허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集姓村이다. 해방이후 연천일대가 이북으로 편입되자 집안 어른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유물 일부를 괴나리봇짐에 챙겨 서울 종손댁에 갖다 주었다. 덕분에 전쟁의 피화를 간신히 면한 유물이 기탁된 것이다. 

□ 김후 후손 기증유물
김후(金㷞, 1751~1805)의 본관은 해풍(海豊)이고 자는 광중(光仲)이다. 1771년(영조 47) 정시무과에 급제 후 출사했고 1793년에 경기중군이 되어 경기지역의 모든 군사업무를 실질적으로 통솔했다. 정조가 의도적으로 수원 토박이 무반 가문 출신의 김후를 중용하였던 것이다. 
1794년 2월 화성성역 별감동(別監董)이 되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성역이 끝나자 그 공을 인정받아 숙마 1필을 하사받는다. 김후 초상은 이때를 기념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김후 초상은 무관초상화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가작(佳作)이며 함께 기증된 호수는 별도의 보관함까지 갖추고 있어 중요한 자료다. 기증자는 김후의 6대 종손 김영규(金永圭)다. 화성성역 조성에 깊게 관여한 인물의 초상이 후손들에 의해 220년간을 그대로 전해져 왔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닌다.

수원시에 기증된 유물 한곳에서 관람  _2
최벽 사급교지

□ 질암 최벽 후손 기탁유물
정조시대 대표적인 초계문신 최벽(崔璧, 1762~1813)의 집안에서 가전되어 오던 고문서 및 고서 1천649점을 기탁했다. 최벽의 본관과 출신지는 경상북도 경주이며 호는 질암(質庵)이다. 약관의 나이 22세인 1783년(정조 7) 문과시험에서 장원급제하였으며, 1790년에는 규장각초계문신에 뽑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기탁유물에는 최벽의 장원급제 당시 답안지 및 초계문신 시절 시험지와 은사장(恩賜狀) 등 정조시대의 규장각과 초계문신 제도의 운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기탁자는 최벽의 6대 후손 최상덕(崔相德)이다. 최상덕은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2002년경부터 질암 최벽의 묘역 일대를 정비하여 질암정사와 사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질암정사는 최벽 생전에는 완공하지 못했지만 후손 최상덕이 '질암집'에 수록된 상량문 등을 바탕으로 2013년 완성했다.

수원시에 기증된 유물 한곳에서 관람  _3
기당고 祁堂稿

□ 금석 홍영식 후손 기증유물
고종대 영의정을 지낸 기당(祁堂) 홍순목(洪淳穆, 1816~1884)과 우정국을 설립하고 갑신정변을 주도한 그의 아들 금석(琴石) 홍영식(洪英植, 1855~1884)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유물 238점을 일괄 기증했다. 
홍영식의 집안은 세상 사람이 누구나 부러워하던 영의정 집안에서 갑신정변의 실패로 하루아침에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동안 전해왔던 문서와 기록물들 역시 망실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훗날 간신히 수집한 유물을 2011년 홍영식의 3대 후손 홍석호가 기증했다.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충남 당진의 외가에서 보낸 홍석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고3시절 우연히 본 신문기사를 계기로 우체국에 입사한 뒤 증조부 홍영식의 뜻을 이어 받아 우체국의 역사를 정리하였으며 체신박물관장과 우정박물관장을 역임했다. 평생 동안 집안의 내력을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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