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연합이매진] 왕이 거닐었던 속리산 세조길
2017-07-10 08:01:01최종 업데이트 : 2017-07-10 08:01:01 작성자 :   연합뉴스

(보은=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건만(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人遠道)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았건만(山非離俗)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俗離山)"
이 시는 신라 헌강왕 때 속리산 묘덕암을 찾은 고운 최치원의 글이다. 고운이 읊은 그대로 속리산(俗離山ㆍ1,058m)은 그 옛날 열두 구비 말티고개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첩첩산중이었다. 이름 또한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니, 속리산 깊은 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시의 울림이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등 9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九峰山)으로도 불린다. '고려사지리지'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신라 때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컫고, 중사(中祀)가 행해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예로부터 속세와 단절이 가능한 명산으로 꼽혀온 속리산은 천왕봉 코스보다는 천년고찰 법주사 쪽에서 올라가는 문장대 코스가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다. 문장대는 본래는 구름 속에 잠긴다고 운장대(雲藏臺)였으나 세조가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속리산에는 문장대뿐만 아니라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마가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목욕하며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욕소(沐浴沼), 바위 밑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눈썹바위, 속리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복천암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의 흔적이 녹아 있다.
계유정난 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세조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고 만년에는 부스럼(종기)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세조길은 세조가 요양 차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 왔던 길로, 천년고찰 법주사에서 세심정 간 2.4㎞ 구간이다.
여기에 나란히 이어지는 '오리숲'을 더하면 운치 있는 숲길이 십리를 훌쩍 넘는다. 속리산 관광단지에서부터 법주사 입구까지 걸쳐 있는 오리숲은 그 거리가 대략 2㎞(5리)라 붙은 이름으로, 법주사를 찾는 승속들이 걸었던 길이다.
윤태현 속리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는 "세조길과 오리숲은 서너 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로 여름철에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늦게 거닐어도 좋다"며 "숲에서 닫혔던 오감(五感)을 곤두세우면 평소에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자연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 맑은 계곡에 솔향 가득한 산책로
속리산 관광단지 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리숲 산책에 나선다. 예로부터 속리산 입구인 길 양옆으로 수령이 많은 소나무와 떡갈나무, 참나무와 서어나무가 아름드리 터널을 이룬다. 숲

[연합이매진] 왕이 거닐었던 속리산 세조길_1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