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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해설사 '지지대비'와 '노송 지대' 둘러봐
정조대왕의 효의 의미 배울 최고의 탐방 장소로 손꼽혀
2020-03-24 23:29:26최종 업데이트 : 2020-03-26 10:42:38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지지대비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47-2에 있다. 지지대 쉼터에서 도보 5분 거리다./사진제공 손선희 해설사

지지대비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47-2에 있다. 지지대 쉼터에서 도보 5분 거리다. 사진/손선희 해설사


24일 오전 10시 30분. 지지대 쉼터에 기자를 포함해 마을해설사 4명이 모였다. 마을해설사는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우리 고장 수원에 대한 역사와 유래를 해설한다. 올해 활동에 앞서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지지대비와 최근 복원된 노송 지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에 지지대 고개가 있다. 원래는 사근현(沙近峴)이었는데 '미륵현' 그 후에 '지지현(遲遲峴)'으로 변경되었다. 지지대 쉼터에서 지지대비를 찾아가는 길은 공사 중이지만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로 쪽에서 가파른 계단을 통해 가기보다 쉽고 편했다. 
 
지지대비는 1972년 05월 04일 경기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사진제공 손선희 해설사

지지대비는 1972년 5월 4일 경기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사진/손선희 해설사

순조 7년 (1807년) 정조의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지지대비(遲遲臺碑)는 1972년 경기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안과 밖 주변을 사진에 담았다. 한국전쟁 중에 날아든 총탄의 흔적이 비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정조는 아버지가 묻힌 화산에 참배하러 갈 때는 "왜 이리 더디냐"라고 역정을 냈고, 돌아갈 때는 가마를 멈추게 하고 아버지와 멀어짐이 아쉬워 한참 동안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이에 그곳에 돌을 쌓아 작은 대를 만들어 느릴지(遲)를 써서 '지지대'라 부르고 그 고개를 '느리게 느리게 넘어가는 고개 즉 지지대고개'라 불렀다. 

19년도 마을탐방시 3학년 학생들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지지대비를 보기엔 위험요소가 많았다. 차도에는 쉴새없이 오고가는 차량들로 인해 소음이 컸고, 매연 또한 적지않아 탐방지로는 부적절해보였다. 교과서로만 보던 지지대비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아쉽게도 길건너편 차도에서 해설하는데 만족해야했다. 

해설사들이 다시 지지대 쉼터를 거쳐 찾아온 이유는 어떻게든 탐방이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북수원 나들목 공사가 아직 진행중이고, 지지대비 일대 역사문화공간 조성이 끝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정조의 효성을 바탕으로 수원시는 '효원의 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문화재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고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함은 타당하다. 더 늦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원시 마을해설사는 마을탐방 활동으로 우리 고장 수원과 우리 마을에 대한 역사와 유래를 해설한다.

수원시 마을해설사는 마을탐방 활동으로 우리 고장 수원과 우리 마을에 대한 역사와 유래를 해설한다. 왼쪽부터 이경, 송미영, 송영자, 손선희 해설사.


노송 지대는 장안구 파장동에 있는 소나무 숲길이다. 정조가 내탕금 1천 냥을 내어 소나무 500주를 심게 하면서 만들어졌다. 

기자의 노송지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2010년 경이다. 그 당시는 노송지대 사이로 차도가 있었고,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노송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는  비닐하우스 등 지저분한 건축물이 많았고, 심지어  생활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있었고 악취도 심했다.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노송지대를 지나갈 기회는 사라졌다.

이후 차량이 내뿜는 매연으로 노송이 죽어간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고,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가지는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지지대고개에서 약 5km에 걸쳐 장관을 이루던 노송들은 결국 40주 미만 남은 상태가 됐다.

그동안 수원시는 도로를 폐쇄한 뒤 우회도로를 개설하고 노송 지대 복원을 추진해왔다. 2019년 여름 노송 지대의 2단계 복원사업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세월을 이겨 낸 노송은 이름표를 달고 멋진 자태를 유지중이다. 그 주변으로 후계목이 추가되었고, 보랏빛 꽃이 피는 맥문동이 함께 심어졌다.

아직 완벽한 복원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비닐하우스와 각종 폐기물 등의 눈쌀을 찌뿌리는 주변환경은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로 보인다.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나무벤치와 돌로 만들어진 의자 등이 간간이 놓여있다.  박물관으로 옮겨진 공덕비와 송덕비가 예전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마을탐방을 진행하기에 적절한 공간이 됐다.  
 
1973년 7월 경기기념물 제 19호로 지정된 노송 지대를 걸으며 정조의 효심을 되새겨본다.

1973년 7월 경기기념물 제 19호로 지정된 노송 지대를 걸으며 정조의 효심을 되새겨본다.


처음 와본다는 송영자, 손선희 해설사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수원에 사는 아이들에겐 행운이 아닐까?", "잘생기고 멋진 소나무를 볼 수 있게 해주신 정조 대왕께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라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송미영 해설사는 "정조대왕이 걸었던 이 길을 걸어보니 효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었고,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다. '솔'은 '으뜸'을 의미하는 말로 소나무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고 솔, 참솔, 솔나무 또는 송목(松木)이라고도 한다. 
 
최근 복원된 노송 지대 풍경- 오래된 소나무들이 울창한 이 길은 정조의 내탕금 천 냥으로 만들어진 유서깊은 길이다.

최근 복원된 노송 지대 풍경. 오래된 소나무들이 울창한 이 길은 정조의 내탕금 천 냥으로 만들어진 유서깊은 길이다.


木 (나무 목)과 公 (존칭, 벼슬)이 만나 松 (소나무 송)이 되었다고 하는데, 소나무에 벼슬을 내린 기록은 중국과 조선 시대에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 '에 따르면 진시황이 태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내려올 때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오자 소나무 아래로 피했다. 그 후 진시황은 그 소나무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벼슬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1464년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가마를 무사히 통과시킨 '정이품송'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2020년 5월부터 시작되는 마을 탐방에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지지대비에 대한 유래를 듣고, 노송 지대를 직접 걷게 된다. 품격 높은 소나무가 줄지어 선 풍경을 바라본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효원의 도시' 수원을 해설하는 좋은 공간이 생겨서 마을해설사들도 만족스럽다.

수원시마을해설사, 지지대비, 노송지대, 마을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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