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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
3월에 또 다시 강원도를 찾아 온 눈
2014-03-03 08:35:48최종 업데이트 : 2014-03-03 08:35:48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이야~ 멋지다." 남편의 감탄사에 졸고 있던 눈을 힘겹게 뜬다. "세상에~ 이쁘다." 나도 모르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한계령을 넘어가는 고갯길에 펼쳐진 설경이 그림처럼 예쁘다. 가까운 거리에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작은 산은 겸재의 그림 한 폭을 보고 있는 듯 황홀하다. 길옆으로 서있는 나무들도 눈꽃을 이고 겨울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_1
한계령의 아름다운 설경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이라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든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그래서 나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던 그 산이 사라지고 보이질 않는다.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그 짧은 시간동안 운무가 산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림보다 더 멋진 설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계획은 운무로 인해 틀어지고 아쉬움만 남긴 채 돌아서다가, 그래도 아쉬워 뒤돌아보니 이번에는 또 거짓말처럼 운무가 걷히고 있다. 짧은 시간동안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움을 경험하며 다시금 펼쳐진 설경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눈꽃세상이다. 가녀린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을 힘겹게 이고 황홀한 눈꽃을 피어내고 있다. 

강원도 속초를 다녀오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설경이다. 그런데 바로 아침나절, 달력의 날짜는 3월임에도 펑펑 쏟아지는 눈은 모처럼의 여행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야속하고도 미운 존재였다. 
작년 가을, 웅장함과 더불어 늦가을의 쓸쓸함까지 더해져 나를 사로잡았던 건봉사를 비롯하여 애초에 가보려고 계획했던 곳들을 취소하게 만들어 버린 눈이다. 

이번 속초여행을 계획하며 영랑호가 눈앞에 펼쳐진 곳을 숙소로 정했다. 영랑호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을 걸으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아침식사를 하기 전부터 젖어있던 바닥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점점 굵어지는 싸락눈으로 하얗게 변하더니 이내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으로 인해 탐스러운 하얀색으로 덮여버린다. 

그래도 아침산책의 아쉬움이 남아 우산을 펼쳐들고 숙소 밖으로 나와 한발을 내딛는 순간 내가 알던 눈의 감촉이 아니다. 얼마 전 동해안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꽃 같은 젊은 목숨을 단체로 앗아간 바로 그 습설이다. 뽀드득거리는 감촉의 눈과는 달리 습설은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까지 무겁게 만든다. 
3월이면 봄이라는 생각으로 가벼운 신발을 신었는데 금새 신발이 젖어들면서 발이 축축하다. 무서운 속도로 내리는 눈에 발이 푹푹 빠진다. 눈의 무게 때문에 벌써 찢어지는 나뭇가지도 보인다. 

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_2
순식간에 영랑호를 눈으로 덮어 버린다
 
호수 가장자리 쪽으로는 지난번 폭설 때 치운 눈이 아직 다 녹질 않아 봉분처럼 군데군데 솟아있다. 그래도 여행객의 들뜬 눈에는 눈이 만들어주는 하얀 설국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설국 속을 마냥 거닐기에는 내리는 눈의 양도 너무 많으며 무엇보다 쌓이는 눈이 신발에 달라붙어 걸을 때마다 발이 무겁다. 

수원까지 돌아가야 할 도로 사정도 걱정이 되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다른 방향의 숲속 길로 오는데,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질 않아서인지 지난번 내린 눈 위에 또 쌓이는 눈으로 인해 걸음을 걷기조차 힘들다. 자칫하다가는 집에도 못가고 눈으로 인해 강원도에 고립될까봐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을 향해 출발한다. 

전날 속초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만 7시간.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 먹고 잠자고 아침 먹고 잠시 눈 속을 걸은 것이 여행의 전부다. 도저히 바로 집으로 갈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난번 여행 때 가보지 못했던 아바이마을만 가보기로 하고 갯배를 타러 간다. 여전히 눈은 쉼 없이 내리고 펼쳐든 우산에 쌓인 눈으로 인해 우산을 들고 있기도 힘들다. 간간히 쌓인 눈을 한 번씩 털어내 주며 아바이마을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건너온 속초시장에서 유명한 닭 강정 한 상자 사들고 허무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_3
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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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름다움도 무기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_4
갯배는 사람이 직접 끌어야만 움직인다
 
아직도 도로 옆으로는 군데군데 검고 지저분한 모습의 눈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눈으로 인해 힘들게 계획했던 여행을 망치고 돌아가는 길에 만난 한계령의 모습은, 눈으로 인해 또 나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나의 입에서 끊임없이 감탄사가 흘러나오게 한다. 
분명 같은 눈일진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설경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번 여행으로 인해 인간이란 대자연의 오묘함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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