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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없이 다가오는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자세
낯선 사람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사회, 어떻게 살 것인가
2014-02-28 02:05:32최종 업데이트 : 2014-02-28 02:05:32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아이고, 이 녀석 개구쟁이구나."

전철 안에서 아이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을 건네왔다. 자기도 16살과 11살 형제를 키우고 있어서 잘 안다며 우리 아이 때는 특히 말썽꾸러기, 장난꾸러기일 거라면서 말이다. 아이는 엄마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미다가 낯선 사람이 와서 말을 걸고 다가오니 모든 행동을 멈추고 엄마 곁에 좀더 바짝 다가와 앉았다. 아저씨는 계속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아이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아저씨가 우리를 따라 내려서 계속 쫓아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이상한 꿍꿍이 속이 있어서 접근한 건 아닐까?' 환승을 위해 전철에서 내리는 데 그 아저씨도 같이 내렸다. 다행히 그 분은 우리와 다른 길로 제 갈 길을 가셨다. '휴우~' 아이 손을 꼭 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7호선 전철을 갈아타고 아이와 빈자리에 앉아서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 할아버지가 우리 앞을 지나가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탕을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아이는 좋다고 받아 들었고, 나 역시도 어른이 주신 것이라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요즘 이상한 물건이나 먹을 것을 줘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기행각이 많다는데 이런 거 함부로 받으면 안 되는데……'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몰래 아이에게 사탕을 뺏어 들었다. 다행(?)히도 사탕은 아이가 싫어하는 인삼 맛이었다. 

"휘준아, 이거 네가 안 좋아하는 맛이다. 자~냄새 맡아봐. 먹을 수 있을지……"
"어디? 윽~이건 아니다. 안 먹을래."
"그래, 다시 엄마 줘."

껍질을 벗기다가 만 사탕을 내 점퍼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고 나도 모르게 자꾸 조물락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내가 누군가의 호의에 이렇게 움츠러들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일까?'

"세정아, 오늘 나한테 어떤 사기꾼 놈이 전화 와서 은행에 돈 넣었으니까 어쩌구 저쩌구하길래 그냥 웃으면서 됐다고 하고 끊어버렸다. 어떠냐? 아빠 멋있지?"

집에 돌아오자 친정 아버지가 보이스피싱에 말려 들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핸드폰에 오늘도 카톡에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온 신종 사기 주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오늘은 독도여론조사를 빙자해서 통화료로 25만원을 빼간다는 내용이다. 

정이 넘치는 한국사회가 어느덧 사기열풍으로 예민하고 각박한 사회가 된지 오래다. 덕분에 나조차도 예전 같으면 기쁘게 받아 들였을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지게 되어가고 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 때 사실은 정말 그 사람은 뜻 없이 친근하게 다가온 것인데 그것을 경계하라고 해야 할지, 또 어른이 예쁘다고 주는 사탕이나 과자 등의 호의를 그냥 무시하라고 해야 할지 참 아리송하다.

남편에게 전철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내 감정이 그랬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당연히 그런 감정이 드는 게 맞는 거라면서 아이에게 똑바로 교육 시키라고 한다. 낯선 사람이 다가 올 때는 어떤 상황이든 경계하고 어떤 먹을 것을 주어도 받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 따뜻한 세상을 알려주고 싶은데 그런 나의 마음은 어리석은 것이고 말도 안 되는 감성적 만행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저 서글퍼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이제 누군가에게 순순히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된 세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기꺼이 받을 수 없는 사회, 낯선 것은 무조건 경계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차단해야 하는 세상. 그것에 대한 교육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부모와 선생, 학교 등등.

얼마 전에 괌으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기념품이라면서 작은 초콜릿 한 개를 건네왔다. 그저 나를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고 어깨가 으쓱해져 쓴 카카오 맛이 가미된 초콜릿이 그저 달콤하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렇듯 지인들의 작은 사랑으로도 물씬 감동을 받는 외로운 우리의 삶에 하물며 낯선 이들의 친절은 더욱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 할 세상이라면 그 속에서도 밝혀 갈 수 있는 좋은 일들을 조금씩 만들어갈 수 밖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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