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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는 정수자 시조시인이 살고 있다
"늙어가면서, 글쓰기의 지엄함을 점점 더 느낀다"
2014-02-28 11:26:03최종 업데이트 : 2014-02-28 11:26:0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기생이자 여류시인 '홍랑'의 시조다. 2월28일자 아침 모일간지 '가슴으로 읽는 시조'란에 정수자 시조시인은 이 시조를 이렇게 해석했다.

수원에는 정수자 시조시인이 살고 있다_1
수원에 살고 있는 정수자 시인/사진 강제욱 작가

'이맘때면 떠오르는 홍랑의 시조. 새록새록 사무치는 명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몰 기록도 없는 조선시대의 여성이자 기생. 정인(情人)이었던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을 통해 연대를 짚어볼 뿐이다. 고전 시가에서 즐겨 쓴 정표 같은 버들, 홍랑은 그 버들도 골라 꺾어 님의 손에 쥐어 보내겠단다. 급이 높은 이별의 운치다. 게다가 쥐어 보낸 버들을 창 밖에 심어두고 보라니,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나인가도 여겨달라니, 어느 사랑이 이리 애틋하랴!...(이하 생략)'

찬찬히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한양의 유명한 기생이었던 홍랑과 최경창의 러브스토리는 워낙 유명해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 또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새삼스러울 게 없겠다. 그렇지만 정 시인의 해석에 더욱 가슴이 설렌다.

정수자 시인은 현재 수원에 살고 있는 중견 시조시인이다. 시인은 1984년 세종대왕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한 이래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원문학작품상 등 굵직한 수상을 거머쥔 것도 모자라 지난해 11월 시집 '탐하다'가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2014년 청마의 해 경사가 또 터졌다. 지난22일 계간시조잡지 '시조시학'이 주관한 제4회 한국시조대상에 홍성란 시인과 함께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쯤 되면 자랑을 해도 되지 않겠나 싶어 '최고봉 시조시인중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문단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올해로 등단 30년, 강산도 세 번이나 변했으니 참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시(詩) 창작고행을 하느라 셀 수 없이 밤잠을 설쳤을 게다. 그러니 그리 격조 높은 시들이 탄생되었을 터이다. 

수원에는 정수자 시조시인이 살고 있다_2
즐거운 번개모임

지난 밤 그를 잘 아는 지인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축하번개 모임'이다. 장소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부르짖었던 선각자 나혜석의 그림자가 오롯한 인계동 나혜석 거리 어느 맥주집이다. 정월 나혜석은 화가이자 문인으로서 당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이었고, 정 시인은 이 시대의 정상급 시조 시인이니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수원에는 정수자 시조시인이 살고 있다_3
나혜석 거리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는다. 아니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듯 흥에 겨운 얼굴은 더욱 붉게 물들어 간다. 여기저기서 서로 돈을 지불하려고 나서고, 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인장을 불러 술을 청한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모두들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론,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나는 한때를 보낸다. 결국 2차 선술집까지 가서야 열기를 식힌 후 축하의 자리를 파했다.

어젯밤 모인 사람들의 나이는 30대에서 80대까지 무려 50년이란 터울이 존재한다. 예로부터 시대가 다르거나,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았어도 사숙(私淑)으로 삼은 분들이 많았으니 이 정도 나이차는 문제될 것이 없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행복을 충분히 만끽했으니. 시인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고마운 미소를 내내 지었다.

이번에 시조대상으로 받은 '금강송'과 '편서풍' 중에서 편서풍이란 시를 소개한다.
'살면서, 쓰면서, 놀면서 그리고 늙어가면서, 글쓰기의 지엄함을 점점 더 느낀다'는 시인의 최근 작품이니 편애 없이 음미해 보시길! 

            편서풍
                     정 수 자

바람에도 편이 있어 동으로만 닫는 걸까
일찍이 산 너머로 몸이 닳던 맨발처럼
편서풍
습한 질주는
편애의
오랜 습관

―덩달아 요동치던 머리칼을 수습하고 
―허리통 매만지며 머쓱해진 나무처럼 
―중력에 기대어 늙는 지구의 관습처럼 

맨발의 바랑인 양 바람을 경전 삼는 
맹목의 맨발인 양 방향을 편식하는 
편서풍
푸른 질주는
미완의
오랜 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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