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
일본 옛 지도에 나타난 우리 땅 독도 전시 열려
2014-02-22 02:54:57최종 업데이트 : 2014-02-22 02:54:5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다시 부르는 '독도는 우리 땅' 노래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일번지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한때 꼬맹이들은 물론이요 어른들도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대던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서두 가사다. 멜로디가 단순해 따라 하기도 쉬웠지만 무엇보다도 인기가 좋았던 이유는 우리 땅 사랑에 대한 예찬이 더없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1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1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다시 듣고 싶고 부르고 싶은 날이다. 
오늘 22일,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일방적으로 편입시킨 날이다. 울릉도는 마쓰시마로,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명명하며 시마네현 관할지에 넣어 버렸다. 경술국치 5년 전이었던 1905년 2월 22일이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강화도 조약(1876)', 즉 제국주의 시대에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는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었던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며 침략의 야수를 드러낸 지 29년이 지난 후 조선전체 병탄의 신호탄으로 독도를 집어 삼켰다.

다케시마의 날이라고? 우리정부 반성해야!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독도는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고유한 영토였다. 그럼에도 일본은 2005년 3월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까지 만들어 통과시키고 발효하기에 이르렀다. 
이전부터 영유권 주장은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야망을 드러낸 해는 일본패전 50주년이었던 1995년이다. 이때부터 조선 합병은 합법적이었고 독도 또한 일본 땅이라며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펼쳤다. 툭하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서 따져보자며 큰소리를 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조용한 외교가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며 매우 신중하게 대처했다. 일본의 논리가 어디가 틀린지,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타당한지 등에 힘을 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불성설인 '다케시마~ 운운' 주장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시정책으로 일관한 우리 정부의 행태에 반해 일본은 적극적으로 그 타당성을 알리는데 꾸준히 노력했다. 

일본이여, 스스로 인정한 근거 아는가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2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2

역사왜곡,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망동 망언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논쟁을 잠재우는 전시가 22일 문을 열렸다. 수원시와 (사)우리문화가꾸기회가 공동주최하는 '일본 스스로 인정한, 일본 옛 지도에 그려진 우리땅 독도'전이다.

- 한국에 주둔한 일본 육군성 소속 육사 측량부가 제작한 1936년 지도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陸地測量部發行地圖區域一覽圖)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여 한국령으로 포함했다.
- 일제강점기 러일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역사지도 '데이코쿠쇼아 1937'에는 울릉도를 마쓰시마(松圖)와 병기하고 독도를 다케시마와 리앙쿠르도로 병기해 한국령 임을 보여준다.
- 독도는 1905년 이래 여러 번 재판된 '재일본분현총도'에는 물론이요 시마네현 고시로 다케시마(독도)의 소관을 맡게 된 시마네현 전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고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 아님을 반증한다.
-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되고 메이지유신이 수립되자 일본 새정부 외무성이 조선에 파견되어 내탐조사에 들어갔다. 이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인지 조사하라는 지시항목이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드러나 있다.

이밖에도 일본인들이 작성한 지도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또렷이 각인시키는 지도와 편지 다수가 전시됐다.

독도는 영원히 우리 땅이다

1900년 대한제국정부는 울릉도 수호를 위해 석도(독도)를 울릉도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일본은 조선 침략이 시작되던 1905년 2월 일방적으로 시마네현 안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1945년 아시아태평양까지 확대시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의해 패망하면서 이른바 '카이로 선언(1943. 12. 1)'에 의거해 독도 소유권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적당한 절차를 밟아 한국을 해방· 독립시킨다는 연합국 의사인 1945년 포츠담 선언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독도 역시 우리나라 땅으로 귀환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한일 간 논쟁을 일으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사료에 드러난 울릉도와 부속도서 지명의 다양성이다. 신라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양국 간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이름이 많다. 다소 헷갈려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명칭의 혼란이다. 울릉도와 독도라는 이름이 시대에 따라 변천했는데 일본 역시 문헌상 호칭이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지도에도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결국, 양국의 이익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여 주장한다는 점이다. 독도는 지질과 지형이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나지만 무엇보다도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게다가 인근해저는 매장된 광물자원이 엄청나다. 독도가 영원히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일본이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우기는 이유다.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3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3
,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4
다케시마의 날? 이 자료들 보고도 우길텐가!_4

그들의 속셈, 단호히 대처할 때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무라야마 담화(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힌 담화) 부정, 야스쿠니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 현 아베정권의 보수우경화에 한· 일간 외교는 그야말로 밑바닥이다. 게다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 우리나라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이젠 당당히 일본의 속셈을 정확히 잡아내고 단호히 대처해야한다. 한국의 독립과 영토 반환이 휴전 협정 전에 그리고 이후에 분명히 밝혀져 있음을, 그리고 충실한 자료 확보를 통해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대로 들이밀어야 한다. 정확한 주장, 합리적인 지혜를 모았을 때 우리민족의 국격도 올라가는 법이다. 
제법 오래 전시하니 가까운 곳에 찾아가 꼼꼼히 살피시라. 독도를 사랑한다면, 우리나라를 사랑한다면!
* 참고 문헌
독도연구-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 '일본 스스로 인정한, 일본 옛 지도에 그려진 우리땅 독도'전
- 수원역 광장 2014. 2. 21(금)~27(목)
- 화성박물관 야외전시장 2014. 3. 1(토)~5(수)
- 수원광교박물관 야외전시장 2014. 3. 7(금)~ 6. 1(일)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