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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만이 상대를 위한 최고의 배려는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스스럼없이 내어놓을 줄 알아야
2014-02-22 23:50:47최종 업데이트 : 2014-02-22 23:50:47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세정아, 넌 항상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 별로 말을 안 해?"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가 한창 수다를 늘어놓다가 내게 건넨 말이다. 친한 언니가 얼마전 그 친구와 따로 늦은 밤 조용히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티타임을 즐겼다고 하기에 나도 언제 시간이 되면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 후 바로 며칠 뒤에 그런 오붓한 밤의 티타임이 마련됐다.
서로 알게 된지는 1년이상 됐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 것도 몇 차례 되지만 개인적인 만남은 고작 두 번째라서 아직은 막역한 사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경청'만이 상대를 위한 최고의 배려는 아니다_1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화는 노력이 필요하다

커피숍에서 각자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앉아 언니와 그 친구가 하는 수다를 주로 들으면서 공감할 부분이 있으면 반응을 보이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이 흘렀을까? 그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네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자리인데 왜 얘기를 하지 않느냐는 말을 꺼낸 것이다.
"언니, 얘가 원래 언니랑 둘이 만날 때도 이렇게 말이 없어요?"
"글쎄~ 그렇지 않은데……"
친구의 그런 돌발적인 질문에 언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글쎄, 내가 그랬나?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주로 듣는 편인 거 같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주로 많이 듣다가 내가 할말 있으면 하고 그러는 거지 뭐~"라고 이전에 내 행동들을 유추해서 변명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보다 낯가림도 있고 어색함이 많은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아니, 그래~경청하는 거 좋지. 그런데 오늘은 네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자리고 그러면 네가 스스럼없이 이야기도 풀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주로 듣고만 있으니까 솔직히 난 그런 모습이 뭐랄까, 음흉해 보인다고 할까? 좀 그래. 남의 얘기만 듣고 자기 얘기는 안 하니까 같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별로이지 않겠어?"

이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내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자신이 느낀 나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통해 보는 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참 불편했다. 그 친구가 결코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늦은 밤, 두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나에 대한 호기심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나왔는데 만남이 생각보다 심드렁하니 속내를 비친 것이리라. 
 
순간, 정말이지 '아차' 싶었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낯선 자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정해진 주제가 없을 때는 주로 들어주는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고 경청의 자세로 내 스스로 꽤 괜찮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가졌던 그런 내 생각을 아주 멋지게 깨준 것이다. 물론, 혹자는 그런 나의 모습을 편안하고 좋게 느낄 수도 있다. 단지 그 친구의 성향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껏 내가 누구나 '경청'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품고 상대를 대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착각은 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고 말이다.

잠깐 나의 경험을 비추어보았다. 과연 나는 혼자 떠들면서 상대가 무언가를 이야기 해주기만을 기다린 적이 없는가? 상대의 끊임없는 경청이 도리어 불편하게 느껴졌던 적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너는 뭐 할 말 없어? 말 좀 해봐?"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어떤 이들. 그제서야 그 친구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 기분이 나빴겠구나'. 

관계, 아니 대화는 참 어렵다. 상대와 교감하는데 있어 '대화'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다고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잘 통하는 거 같은 사람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화를 하면 할수록 허공에 대고 말하는 거 같은 사람이 있다. 새삼 '경청'이라는 명목으로 상대에게 나를 좀더 보여주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나는 내 얘기가 있을 때 단순히 "그랬구나"또는 "어쩜 좋아"가 아닌, 기꺼이 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공감을 해주는 것이 진짜 공감이구나 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역시도 완급조절이 필요할 테니 쉽지는 않다.  

누군가의 시선에 모두 나를 맞춘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또 나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그렇게 나를 판단하고 기분 상해할 때는 매우 언짢거나 속상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귀한 경험이다. 그 또한 하나의 성장과정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혹자가 나를 자신의 상황이나 틀에 맞춰 오해해서 바라봤을지라도 내 자신이 그게 아니었다면 그에 대한 오해는 언제고 반드시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 사람의 시선에 올인 해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려 애쓴다면 어느 순간 진짜 내 모습은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모습에 가면을 씌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누군가에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상대가 언짢거나 기분 나쁘지 않은 공감의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더해본다. 

살아갈수록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어서 '관계'와 '대화'에 대한 공포가 생길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어쩌랴, 그것이 인생이고 또 그것을 풀어가는 성취감과 즐거움으로 삶을 풍요롭게 덧대어 가는 것인데……

어쨌든 이 날의 일을 계기로 대화에서 '경청'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 자신을 풀어놓고 상대에게 기꺼이 허물을 보여줄 용기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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