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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두렵지 않아요
축산농가 걱정..입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무거웠던 저녁식탁
2014-02-16 21:15:33최종 업데이트 : 2014-02-16 21:15:33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오븐에서 닭다리와 닭날개가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 기름이 좔좔 흐르며 윤기가 나는 게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김장김치와 함께 버무린, 김치찜닭이 매콤한 냄새와 함께 끓고 있으며, 프라이팬에서는 닭똥집이 채소와 함께 맛있게 볶아지고 있다. 오늘 우리 집 저녁식탁은 닭요리 파티다. 

가끔 닭요리를 해 먹기는 하지만 오늘처럼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닭요리를 해본적은 없다. 닭으로 파티를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트에서 닭을 평소 가격보다 40%나 싸게 판매를 하고 있어서 부위별로 골고루 산 것이다.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 오리의 소비량도 줄었으며, 양계농장의 피해 또한 엄청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정성껏 키워 온 닭들을 살 처분해야 하는 농민들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입을 것이며, 정신적인 공허함 또한 매우 클 것이다. 75도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조류독감균이 파괴되어 괜찮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서 까지 닭이나 오리고기를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예방을 하고 있지만 언제 덮칠지 모르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노심초사하며 근심하는 농가들은, 아직은 무사하다는 안도감 대신 판로가 막혀버린 닭들로 인해 또 시름이 깊어질 것이다. 퇴근시간, 정육코너를 찾아 거의 반값에 판매하는 닭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높은 할인율로 인해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닭요리를 실컷 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무거워서 들기도 힘들 정도다. 하루에 다 먹지도 못하는데 오늘은 조금만 사고 다음에 또 살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다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AI, 두렵지 않아요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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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두렵지 않아요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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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닭다리와 닭 날개를 꺼내 깨끗이 씻어서 칼집을 낸다. 아들아이와 둘째딸아이는 살이 통통한 닭다리를 좋아하고, 큰딸아이는 부드러운 날개 부위를 좋아한다. 간장과 올리고당, 후추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닭고기를 재워 놓는다. 
마늘을 듬뿍 넣어주고 청주도 조금 넣어서 닭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 예열되어 달구어진 오븐에 가지런히 줄 맞춰 닭을 올리고 이번에는 찜닭을 준비한다.

간장으로 양념하여 당면과 여러 가지 채소를 함께 섞어주는 찜닭도 좋아하지만, 구이요리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김치와 함께 만드는 김치찜닭을 하기로 한다. 김장김치를 큼직큼직, 넉넉하게 썰어 넣고 닭볶음탕용 닭을 넣는다.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마늘, 청주 등을 넣어 버무린 후 약한 불에 끓이기 시작한다. 

닭구이와 김치찜닭이 요리되는 동안 이번에는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닭똥집볶음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지만 다시 한 번 밀가루와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씻는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볶는다. 평소에는 매콤한 볶음을 좋아하지만, 김치찜닭이 있기 때문에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볶는다. 양파와 마늘을 많이 넣고 함께 볶아주면 깔끔한 맛의 닭똥집 볶음이 완성된다. 

AI, 두렵지 않아요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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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노릇노릇.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며 완성된 닭다리구이와 닭 날개구이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으니 일류레스토랑의 고급요리가 부럽지 않다. 오븐에서 막 꺼낸 따뜻한 닭구이를 먹느라 아이들은 정신이 없다. 우리 식구가 한 끼 먹을 삼겹살가격으로 사 들고 온 닭고기는 오늘 저녁식탁을 행복하고 풍성하게 채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닭은 며칠 동안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한 양이다.

그런데 싸다고 신나서 샀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겁다. 내가 산 닭으로 인해 양계농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으련만 과연 이렇게 싸게 팔아서 도움이 될까싶다. 어느 해는 조류독감으로, 어느 해는 구제역으로, 또 어느 해는 광우병으로 인해 한 번씩 몸살을 앓는다. 그럴 때 마다 무수히 많은 피해 농가들이 발생하며,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매장당하고, 무수히 많은 인력이 수고를 한다. 

추운 겨울날씨에도 24시간 도로를 지키며 지나다니는 차량에 방역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안타깝고, 뉴스를 장식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만날 때도 마음이 아프다. 
그저 마음으로만 아파할 뿐이다. 거의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최첨단의 시대에 우리가 대책 없이 당하는 것들을 보면 가장 원시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야만 지혜로운 건지 알 수가 없다. 입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무거웠던 저녁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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