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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어머니의 묵묵한 사랑 먹고 산다
2014-02-16 22:20:58최종 업데이트 : 2014-02-16 22:20:58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엄마, 왜 할머니는 우리말을 안하고 다른 나라 말을 해?"
설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정체된 차 안에서 7살 큰 아이가 어렵게 말을 꺼내왔다. 시어머니는 어릴 때 사고로 청각을 잃었다. 덕분에 말씀하시는 것이 매우 어눌하다. 소리를 잘 못 들으시니 우리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주 단순한 의사소통만 겨우 가능할 뿐이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아이는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다. 어릴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더니 이제 벌써 7살이 되었다고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나 보다. 더군다나 예민한 문제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명절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조용히 물어온 것이다.
 
"휘준아, 할머니가 다른 나라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어릴 때 귀를 다치셔서 소리를 잘 못 들으셔서 그래. 소리를 잘 못 들으면 말도 잘 할 수 가 없거든."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이해하는 눈치였다. 아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괜히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혹시라도 남편이 속상해하거나 자존심 상해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릴 때 엄마가 말씀 못하셔서 힘들었어?"
넌지시 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아니,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도 우리 엄마가 말을 못한다는 걸 몰랐어. 인식을 못했던 거지."
"정말?"
"응, 우리 엄마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불편한 것도 없었고 그냥 그게 우리 엄마 모습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시어머니의 묵묵한 사랑 먹고 산다_1
어머니가 떠나면 고향도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일테지

처음 시집 오기 전, 시어머니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손과 발을 못 쓰시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소리를 못 듣고 말씀을 못하신다는 게 무슨 흉이겠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친정 부모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저 시집 가서 시부모님 공경하고 잘 살라는 말씀만 하셨다. 

시어머니가 말씀을 못하시는 것은 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가 말씀을 못해서 아쉬운 점은 의외로 많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랑 전화통화하면서 소소한 대화도 나누며 때로는 남편 흉도 보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아니, 우리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나한테 할 말이 많으신지 몰라. 내가 정말 못 산다니까."
가끔 친구들이 이런 말을 하면 속으로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무척이나 많다. 그저 그렇게 전화통을 붙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말로 얼마든지 오해를 풀기도 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고부간에 얼마나 손쉽고 좋은 소통 방법인가. 
"내가 이번에 어머니께 제대로 한 말씀 드렸잖아. 그랬더니 그냥 알았다고 하시더라고."
한동안 고부갈등으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어머니께 자기 사정을 요목조목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는 말을 하는데 그 마저 부러웠다.

어디 나만 부럽겠는가? 아마 우리 어머니도 자식들과 쑥덕쑥덕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더 하실 테지. '어머니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속에 쌓아두고 계실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언제나 뭐든 해주고 싶어하는 어머니는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불편으로 긴 대화가 어렵다. 물론, 그런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 못하는 우리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자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고 아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함께 교감하고 나누고 싶은 게 많으실 텐데 그러지 못하는 어머니 심정은 오죽할까 싶어 맘이 짠해진다.  

한 때는 시어머니가 청각 장애인이신 게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의논해야 할 때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 지 막막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 힘듦은 여전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실 가장 불편하고 힘든 것은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잊었던 거 같다. 

어머니는 자신이 말씀을 잘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시키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묵묵히 해내시는 분이다. 하물며 명절 아침상도 늘 어머니 손으로 지으셨다. 물론, 우리가 모두 아이가 어려서 밤잠을 설쳐 잠이 부족하고 피곤한 탓도 있지만,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이 모두 모인 명절에 혼자 아침상을 차리고 싶어할까. 

눈치껏 어머니를 돕다가 몰래 꾀를 부리고 빠져 나온 적도 많다. '이 정도면 꽤 도와드린 거 같으니까 가서 좀 쉬어야지'하는 마음에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쉴수록 어머니의 손은 더욱 바빠진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한번도 우리를 불러 야단치거나 혼낸 적이 없다. 때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너무 유난스럽게 움직이시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실 많이 두렵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시는 날, 내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의 무게가 과연 어느정도일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시어머니 입장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슬픔을 감내하며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있었을까?
"바 더 머거!(밥 더 먹어)"
명절에 내려와서 할 일없이 빈둥대다가 겨우 밥상 차리는 것과 설거지 정도 한 며느리에게 맛있는 반찬을 먼저 건네주며 미소를 띄우는 어머니의 모습. 

나는 시어머니의 묵묵한 사랑 먹고 산다_2
얘들아, 말씀은 못하셔도 너희 삶을 늘 마음으로 끝없이 기도하는 할머니가 너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가난하고 배운 거 없는 부모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자주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이면 막 대해도 되는 것처럼 여길 때가 많다. 그들이 있기에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또는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귀한 독립적인 존재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살아 보니 가장 귀한 부모는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를 떠나, 자녀들을 한없이 사랑해주고 끝없는 인내와 포용으로 감싸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없이 좋은 부모님들을 만났음에 큰 감사를 느낀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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