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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졸업식이 재밌고 새롭네
숙지고등학교 제 15회 졸업식에 가다
2014-02-08 16:39:39최종 업데이트 : 2014-02-08 16:39:39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1987년 2월.  여고 졸업식이 있던  날은 새벽부터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대학을 합격한 친구, 재수를 결심한 친구, 서울로 진학해서 집을 떠날 친구. 내 주변의 모든 친구가 겨울비처럼 울었다.  한 해 동안 대학 입시를 위해 물심양면 애를 쓰시던 담임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져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졸업장 한 장씩 나눠주시고 애써 눈물 참고 웃어주셨던 선생님. 지나고 보니 가장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던 참 스승이셨다. 일 년에 한번 찾아가 만날 줄 알고 떠났던 선생님은 단 한번 만남 이후로 찾아뵙지 못했다. 대학 진학과 이른 결혼으로 빨리도 잊혀져 버렸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만나 뵙고 싶은 마음뿐이다.

졸업 후 교문을 나서면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많았던 20살. 더불어 입시에서 해방되면 뭐든 다 쉬울 줄 알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여고 시절은 잊고 살았다. 두 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문득 하나씩 추억이 되 살아났다. 많이도 울었던 졸업식 날의 풍경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작년 수능을 마지막으로 두 딸의 교육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은 끝이 났다.
감사하게도 딸의 수시 합격 덕에 마음 편히 연말을 보냈고 드디어 졸업식까지 왔다.
2002년 초등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12년간의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친 학부모의 소감을 어찌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다만 고맙고 감사하고 다행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 졸업식이 재밌고 새롭네  _1
딸아~졸업을 축하한다.
2014년 2월 7일 금요일 10시. 졸업식은 지루하고 복잡할거란 예상을 하고 숙지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대견한 자녀들을 축하해주러 부모님은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대강당 안으로 몰려들었다.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아슬아슬하게 걷는 80대 할머니는 추위와 상관없는 씩씩한 발걸음이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날씨를 고려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양복을 입으셨다. 손녀의 졸업식을 위해 찬바람을 이겨내실 모양이다. 

501명의 졸업생은 대강당에 마지막 정렬을 하고 있다. 간간히 뒤쪽의 학부모들로 눈길을 보내는 학생들 틈에 딸을 찾아보지만 불가능했다. 복잡할거란 예상은 처음부터 들어맞았다. 대강당과 계단 층계까지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꽃다발의 향기 역시  3층  대강당을 모두  채우고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확산되었다. 

졸업생들의 학교 생활상을 담은 UCC 영상을 보고, 졸업장과 각종 수상들이 일정표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권순일 교장선생님의 짧고 재치 있는 덕담은 졸업생들의 많은 환호를 받는다. 평소 학생들과 어떤 교감을 주고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교장 선생님의 노력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나머지 일정도 예전 그대로 틀에 박힌 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축하공연에서 나름 틀을 깨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고양골 축제 (팔달구 화서동 마을축제) 대상 팀이라고 소개된 학교 댄스동아리 멤버가 무대위에 등장하자 졸업생이 일제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낯설지 않는 반응과 호응이 분위기를 더욱 달구었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환호성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최신 노래에 맞춰 선보이는 댄스는 연세 지긋한 어른들에겐 사뭇 충격(?)적이다. 과감한 의상과 격렬한 댄스는 기존 졸업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물했다.
필자는 신선한 졸업식 문화로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80년대 졸업식과 비슷한 분위기였다면 나름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간혹 낮게 들려오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이었다.
"어머~ 졸업식이 재밌고 새롭네~"
"우리 때는 울고불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이렇게 하네"
"밀가루 뒤집어쓰고, 교복 찢고 그런 것 보다 훨씬 낫다"

축하공연을 준비한 팀원들이 아낌없는 갈채와 박수를 받았다. 그 시간을 내준 학교 측 관계자도 박수 받을 만했다. 졸업생들이 환호하고 즐기는 졸업식을 위해 모두가 애쓴 결과다.
고 2 듬직한 남학생의 노래 선물로 축하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졸업식도 끝이 났다.

딸은 교무실로 달려가 그동안 따르고 좋아했던 선생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왔다. 출근을 미루고 졸업식에 참석한 아빠를 위해 친구들과의 약속은 뒤로 미뤄진 듯하다.
3년 동안 지각을 피해 내달린 교문 앞에서 우린 가족기념 사진을 찍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교문을 배경삼아 찍은 사진이 훗날 어떤 추억이 되어 이야기될지 기대된다. 

졸업식엔 짜장면이 최고! 라는 의미로 우린 근처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할머니는 축하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내내 말씀중이다.
"너무 예쁘고 잘하더라~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딱딱 잘 맞고 아주 좋았어!"
"춤추느라 고생했는데 점심 사주고 싶다~"
당신 손자 손녀처럼 보이셨나보다. 반면 할아버지는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는지 헛기침만 계속하셨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어설픈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학교생활이 나름 의미 있었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어떤 활력이 될지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또한 참았다.
모든 것을 딸이 겪으면서 깨우쳐 나가길 바랄뿐이다. 안개 속 같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자기 길을 선택해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천천히 전진했으면 좋겠다.  
졸업식 날 마냥 흥에 겨운 딸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기쁨 반 걱정 반이다.
 
 

숙지고등학교, 졸업식, 권순일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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