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관계의 ‘친함’이 주는 안락함에 대하여
2014-01-14 12:25:15최종 업데이트 : 2014-01-14 12:25:15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지난 2008년,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자주 가던 분식점이 있다. 아이를 가진 후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몸은 무거운데 내가 먹을 밥 한끼를 차리는 게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30대후반으로 보이는 두 부부는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으면서도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맞아주었다.
임신하고 나서 아이를 낳고도 자주 데리고 가다 보니 어느새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을만큼 친근해졌다.
 
"최근에 이사하셨다고 했죠? 저희 이사업체 좀 소개해주실래요? 몇 군데 불러봤는데 견적이 너무 세서요."
가게를 운영하느라 이사에 신경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면서 한숨을 내쉬며 물어오던 분식집 아줌마의 얼굴에 나는 얼른 핸드폰에 연락처를 찾아 알려줬다.
 
"고마워요, 덕분에 싼 가격에 포장이사 잘했어요."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잘 했다면서 아줌마는 고구마 튀김 2개를 서비스로 건네주었다. 그 이후로 간혹 아이가 어묵꼬치가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면 가면서 먹으라며 공짜로 한 꼬치를 건네주곤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간혹 자유시간이 생기면 그곳에 가서 호젓하게 나만의 한끼 식사를 하고 다른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은 웬일로 혼자 오셨어요?"
늘 그렇듯이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오는 아주머니께서 나의 홀가분한 외출을 더 기뻐해주는 거 같았다.
"저도 이런 날이 있어야 숨을 쉬죠. 자유시간이에요. 자유시간 생기면 늘 여기에 와서 끼니를 때우네요."
나도 모르게 그곳이 나만의 아지트처럼 편한 한끼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한동안 자주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늘 가까이 있어서 훈훈한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고는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오랜만에 시간이 생겨서 간단히 김밥으로 한끼를 때우려고 갔는데 주인이 바뀌어있었다. 좀 전에 허기져서 금방이라도 쳐들어갈 기색이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떡볶이와 튀김, 순대, 어묵꼬치 등 이전의 맛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낯선 곳처럼 느껴져서 발길을 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발길을 돌리고 최근에 큰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서 그 아래에 새로 알게 된 포장마차 분식집으로 향했다.
"사실은요, 저기 건너편에 김밥을 먹으려고 갔었거든요. 근데 거기 주인이 바뀐 거예요.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부터 간 곳이라 나름 정이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실은 맛이 좋아서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깨달은 사실인데 그게 아니었더라 구요. 맛도 맛이지만, 주인이었던 사장님이랑 사모님이랑 정이 들어서 갔던 거였어요. "
"아, 그래요? 거기 얼마 전부터 인수인계 하는 거 같더니 결국 바뀌었나 보네."
"아주머니도 김밥 파세요. 그럼 더 자주 올게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아주머니는 그만두지 마세요. 그럼 너무 서운할 거 같아요."

그날 알았다. '단골'은 단지 어떤 상품이나 제품에 대한 신뢰나 기호보다는 그것을 판매하는 주체와의 관계의 친밀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인이 바뀐 후 그 분식집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분식집에 대한 분위기를 잃게 될까 두려워지기도 하고 그곳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면서 이전에 그 분식집 주인분들과 마주치지 않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서 그냥 분식집이나 시작하자하고 하게 되었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최근에 임신을 하신 건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밀려오고 그분들의 근황이 많이 궁금하다.

어제 캐나다에서 올해로 10살이 된 사촌오빠 아들이 왔다. 몇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데, 새언니 친정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상황에 처해 급하게 언니랑 둘만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사촌오빠와 새언니는 우리 친정아버지가 중매를 해서 결혼한 케이스라 우리 집과는 많이 친해서 언니로부터 조카 요셉이를 잠깐 부탁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주변에 시댁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편하고 좋은 게 너희 식구라면서 안 그래도 아이 둘 돌보느라 바쁜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엄마에게 정신교육을 잔뜩 받고 왔는지 아이는 거실에 소파에 앉아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아이패드를 잡은 채 게임이나 조금하면서 조용히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덩치도 큰 녀석이 주는 간식도 찔금 먹고 밥도 주는 양 이상은 먹지 않았다. 아이의 불안하고 낯선 마음을 풀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셉아, 조금 뒤에 올해 7살 된 남자동생이 유치원에서 올 거야. 유치원에서 끝나고 나면 미술학원 갈 건데 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고모랑 같이 동생 데려다 주고 바람 쐬고 오자."
한국말을 알아 듣는 데는 문제 없지만 말하기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고개만 끄덕이는 녀석의 손을 잡고 밖을 나갔다. 큰 아이를 미술학원에 들여 보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은 서툰 아이기에 그 아이가 잘 하는 영어를 매개로 삼기로 했다.

관계의 '친함'이 주는 안락함에 대하여_1
캐나다에서 온 조카와 친해지려고 제안한 영문장 맞추기 놀이, 오히려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요셉아, 여기 연습장에 영어로 문장 써서 고모한테 내줘 봐. 고모가 한번 맞춰 볼게."
아이는 엷은 미소를 띄우며 곰곰이 생각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영작문을 건네왔다. 나 역시 평소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지라 아이가 내는 영어문장을 맞추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불과 1시간도 채 되기 전에 친해졌다.

확실히 아이의 태도는 아침과는 달라졌다. 피곤하다고 침대에 가서 잠이 들기도 하고 동생들과 히히히 웃으며 놀 줄 알았다. 덕분에 나도 편해졌고 조카 요셉이에게 더 정이 갔다. 한국에 있는 동안 더 좋은 추억 만들어주고 싶고 다시 이런 시간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시간 동안 무척 잘해주고 싶었다. 

아이를 통해서도 '친함'이 주는 의미를 다시 깨닫는다. 아이가 오랜만에 만난 나를 친한 사람으로 받아들인 후 우리 집에서도 편안함을 느낀 것처럼 친함이란 그렇게 안락함과 평안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임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새해에는 내 주변 모든 이들에게 친한 사람으로 다가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먼저 오픈 마인드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