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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며칠 앞두고
2014-01-27 20:53:41최종 업데이트 : 2014-01-27 20:53:41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설날이 가까워지면 주부들은 미리미리 조금씩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이제 하루, 이틀만 지나면 부모형제가 있는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내가 어렸을 (1970-1980) 때는 오늘쯤에는 설날 장거리는 벌써 마치고 조청 만들고 있겠다. 직접 내린 엿질금으로 시커먼 무쇠가마솥에 넣고 아침부터 장작을 넣고 졸였다. 희뿌연 엿질금물을 가마솥 반 채우고 조청이 될 때까지 졸이는 것을 지키는 것은 어린 내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의 강도를 조절하는 할머니 옆에서 졸여지지도 않은 허여멀건 국물을 족히 열댓번은 더 맛보고도 조바심을 냈지만 애간장을 끓일 대로 끓여 저녁이 다 돼서야 찰진 조청으로 완성되었다. 

조청은 달콤했다. 땅콩이 들어간 넓적한 호박엿보다 더 달고 입에 쩍쩍 올라붙었다. 많이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밥숟가락으로 퍼 먹곤 했었다. 한 다스에 달하는 그 많은 식구가 그렇게 풍족하게 먹는 것도 조청 하는 날에만 가능했고 작은 항아리에 담고 나면 명절에 손님들이 오면 떡과 함께 내왔었다. 조청항아리에 들어간 조청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땐 감질날 만큼의 양이었고 그렇게 겨울동안 할머니는 조청 항아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 내일이면 조청을 졸였던 가마에 맷돌에 간 콩으로 두부를 만들 것이다. 전날 밤에 큰 대야에 불린 콩을 새벽 식전부터 드르륵 드르륵 맷돌을 넣고 할머니와 엄마는 마주 앉아서 돌렸다. 졸린 눈을 비비고 옆에 앉아 맷돌 돌리는 것을 구경했다. 맷돌을 돌리면서 멈추지도 않고 작은 구멍에 숟가락으로 콩을 넣는다. 맷돌과 맷돌사이에 우유 빛깔의 걸쭉한 콩물이 흘러나왔다.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것도 잠시도 쉬지 않고 큰 손잡이가 있는 주걱으로 바닥까지 저어가면서 끓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지하수가 꾸룩꾸룩 올라오는 것 같다. 그것을 할머니가 직접 만든 베 부대에 넣고 뽀얀물이 다 빠질 때까지 물을 갈아가며 치댔다. 부대에 찌꺼기로 남은 것이 비지다. 비지는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여먹거나 남는 것은 소에게 먹였다. 

비지를 짜낸 콩물은 약간의 소금을 넣고 마시면 고소한 맛이 났다. 덩어리로 된 간수를 대접에 녹여서 주걱으로 조금씩 콩물이 끓는 곳에 첨가하면 뭉글뭉글 덩어리가 되는데 그것을 양념간장을 넣고 먹어도 맛있었다. 그것을 촛국이라고 불렀다. 

그 뭉글뭉글한 덩어리가 깨지지 않게 전에 보다 더 부드러운 보자기에 넣고 사각 틀에 담았다. 물기를 어지간히 짠 다음 맷돌을 올려 단단하게 눌렀다. 말간 물이 다 빠지고 베 보자기를 열어 보면 따끈따끈한 두부의 모습으로 완성이다. 두부 하는 날에는 양념장이나 고추장을 발라가면서 실컷 먹었던 것 같다. 

설날을 하루 앞두고는 아침부터 식구들이 둘러 앉아 만두를 만든다. 솜씨가 거친 엄마에 비하여 할머니는 유별나게 솜씨가 좋았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한 입에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 중에 복만두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복만두란 만두 속에 식구 수만큼의 작은 만두들 품은 큰 만두였다. 솜씨가 좋은 할머니가 만든 복만두는 크기가 같아 외관으로 알아볼 수 없었으며 우리들이 만든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돼지같이 만두 배가 불룩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_1
설날을 며칠 앞두고_1

만두를 빚을 때 할머니는 늘 그랬었다.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할머니 말씀엔 유감이다. 우리 세 자매들 중에는 한명도 딸을 갖지 못했다. 

지금 시댁에서는 아침에 떡국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친정에서는 아직도 만둣국 제사는 설날 전날인 저녁에 주방에서 지낸다. 

현대식 주방이 아니었던 그때 아궁이가 있는 부엌에 자리를 깔고 제사를 지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한 번도 부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본 일이 없다. 제사를 끝내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먹을 때마다 그 수만큼 나이를 먹거나, 나이 수만큼 만두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던 것 같다.

일 년을 함께한 소나 개에게 먹일 만둣국도 고기 없는 것으로 별로도 끓였으니 가축들도 식구나 다름없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마음 넉넉했던 풍경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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