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안받고 안주기’가 훨씬 편안해요?
선물, 받으면 기분 좋아
2014-01-17 11:54:40최종 업데이트 : 2014-01-17 11:54:4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20대 첫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언니와 강원도 철암에 여행 갔을 때 일이었다. 1980년대 황지는 탄광촌으로 보이 것 중 하늘만 제외하고 모두 새카맸다. 삼척이 고향이고 친척 아저씨가 철암에 살았기 때문에 방학에 가끔 왕래가 있어 온 천지가 그렇게 까만 세상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언니는 전라도 목포가 고향으로 철암은 초행이었다. 

그때는 골목에서 사방치기 하는 아이들도 까맣게 보였고 코를 흘리는 아이들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남동 시장 입구에서 새카만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얼른 새우과자를 사와 봉지 채 건네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그 언니는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도 나눠주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손수건도 쓰라고 내주었었다. 

'안받고 안주기'가 훨씬 편안해요?_1
'안받고 안주기'가 훨씬 편안해요?_1

이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선물을 자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 그 친구가 그랬다. 모임으로 만나 알게 되었지만 나이도 같고 성향이 비슷해서 금세 친구가 되어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만날 때마다 크고 작은 것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작게는 사탕 몇 알부터 주방에서 쓰는 소금까지. 이유는 간단했다. "맛있을 때 나눠먹기, 여유 있을 때 나눠쓰기"였다.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미안해서 책도 사주고 이런저런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려고 애 썼다. 그러나 의도적인 생각은 오랜 시간 지속 될 수 없었고 부담스러워졌다. 솔직한 내 마음은 '안받고 안주기'가 훨씬 편안했다. 

언젠가부터 받는 것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유년의 시간이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에 익숙하고 의도적인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잘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작은 모임이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몇 번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개인적인 만남은 처음이었다. 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에서 근사한 저녁도 먹고 친절한 주인의 배려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멤버 중에 가장 어린 친구가 가방에서 양말을 꺼내 돌린다. 
선물이다. 모두 구성원은 그 친구보다 나이가 많은 인생의 선배였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당황스럽다. 어린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하다. 

사소한 일에서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선물을 자주 못하는 이유는 선물이란 선물 같아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하고,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어찌되었던 그럴싸해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자기 주머니의 것을 쉽게 나눠주는 사람들이 부럽다.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부럽다. 나는 내 주머니 속의 사탕을 누구에게 나눠줄 생각을 스스로 해 보았는가 반문해 본다. 

움켜잡으려고 의도하지 않았고 남의 것에 욕심을 낸 적은 더 더구나 없는 나이다. 양말하나 사 신을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은 생각했던 것을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양말은 받는 사람이 아니고 주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더 기쁜 마음이었을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작은 나눔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선물조차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떡을 가져왔다는 소리에 문도 안 열고 "우리 그런 것 안먹어요"라고 했다던 이웃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고 나의 감추고 싶은 치부이다.

선물을 받았다고 당장 돌려주는 식의 나눔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오늘부터라도 가방 속에 작은 사탕이라도 넣어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눠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왠지 그 실천이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