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30년 만에 만난 친구..또 다른 나의 모습
2014-01-21 01:32:01최종 업데이트 : 2014-01-21 01:32:01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살면서 앞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길이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아득할 때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절망 가운데서도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 앞을 가로막는 벽을 뚫고 빛을 찾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저앉아 벽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빛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자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30년 만에 만났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같이 부산에 사는 큰언니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올라온 것인데 친구가 보고 싶은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가서 만난 것이다. 그동안 통신망을 통하여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터라 30년 만에 만났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사진을 통해서는 늘 보던 친구이지만 직접 만나는 건 사진과는 또 다른 모습일수도 있어 행여나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병원을 찾아가는데, 지하철역에 내리니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친구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던 모습과 똑같아서 서로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그래도 직접 만난 친구의 모습은 심청이가 심봉사를 만난 듯 반갑고 감격스럽다. 외모는 변한 게 없었지만, 친구의 성격은 조용하게 변해 있었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만난 친구는, 나의 기억에는 항상 밝고 명랑하며 약간은 천방지축이던 친구였는데, 그동안 카톡 등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느꼈던 친구의 모습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변해 있어서 낯설었다.

직접 만나본 친구의 모습은 역시 조용하다. 성격이 변한 것 같다고 말하니 친구는 원래의 자기모습은 조용한 아이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대로는 다 컸다고 생각하던 중학교 1학년, 그때의 우리들은 선생님들께 살짝살짝 반항도 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특히 친구는 선생님들 눈에는 좀 튀는 아이였던지 담임선생님의 친구에 대한 미움은 나의 눈에도 보여질 정도였다.

30년 만에 만난 친구..또 다른 나의 모습 _1
30년 만에 만난 친구..또 다른 나의 모습 _1

친구와의 만남에는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지난 이야기들이 빠질 수 없다. 우리의 첫 만남인 중학교 1학년 시절로 돌아가서 추억을 나누던 중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는 건 사람이라면 거의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친구도 당연히 선생님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또 반사적으로 친구도 선생님을 미워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와 지나간 이야기들을 나누던 중, 친구의 말이 내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초등학교때 부모님을 모두 잃은 친구는, 그 당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언니 오빠들은 이미 도시로 떠난후 였기 때문에 할머니와 살던 친구는 늘 외로웠다고 한다. 거기에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더 상처가 많았던 친구는 가난과 외로움으로 상처받은 자신을 들키기 싫어서 학교에 오면 명랑한척 까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시끌벅적 떠들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집에 가면 다시 말없는 아이로 변했단다. 아픔과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명랑한척 했던 친구의 행동들은 원래부터 명랑한 성격을 타고난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으리라. 친구인 내 눈에도 살짝 모난 부분들이 보이며 왜 그렇게 행동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다루기 힘든 제자였을 수도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있는 친구는,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때 선생님의 자신에 대한 행동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친구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처럼 공부하면 납부금 면제 해 줄 수 없다" 라며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단다. 

할머니와 겨우겨우 살아가는 형편에 납부금까지 내고 다닐 수는 없던 친구는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음 시험에 성적이 많이 오르자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시며 학급 청소시간에 친구에게는 개인적인 어떤 일을 꾸준히 시키셨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친구는 선생님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그때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생 시절을 보낸 우리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는데, 약 500명 정도였던 중학교 동창생들 중, 단 8명만이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해에는 서로 반이 달랐음에도 쉬는 시간마다 견우직녀처럼 복도 중간에서 만나 수다를 떨다, 수업종과 함께 아쉬운 이별을 하곤 했다. 

시골에서는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우리였지만 우수한 인재들만 모인다는 지역명문여고로 진학을 하니, 도시에서 공부하던 친구들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고 선생님들의 수업방식도 쫓아가기 힘들어 좌절감을 느끼던 우리는 더욱 서로를 의지하며 고등학생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첫 시험에서 나온 성적을 보고 친구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거라고는 공부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형편없는 성적을 받은 친구는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3이 되던 해 5월, 친구에게는 부모님대신이었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며 다시금 캄캄한 어둠속에 내던져진 나의 친구. 그때부터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정말 죽어라고 공부만 했단다. 일반대학보다 수업료가 저렴한 교대를 진학한 친구는 지금은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내 아이들보다 훨씬 더 어렸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마음이 아파서 친구를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정말 기특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잘못된길로도 가지 않고, 그때마다 학생으로서 최선의 방법인 공부에 매달렸던 친구가 진심으로 대견하다.

변하는 세상 따라 갈수록 결손가정도 늘어나고 아이들에게 부적당한 환경들로 인해 우리가 말하는 비행청소년들도 많아지는 요즘. 그들에게도 핑계거리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경우처럼,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에게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던 큰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아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미 이곳저곳으로 전이된 부위가 너무 많아서 수술도 힘들 것 같다며 친구는 참 속상해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살만하니 몹쓸 병에 걸렸다고. 우리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참 안타깝고 속상하다. 

언니의 병이 안타깝지만 마냥 언니 곁에만 있을 수 없는 친구는 조카에게 언니를 맡기고 다시 부산으로 향한다.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친구는 서울역에서 기차 타는 것까지 보고 가란다. 기차 안까지 가방을 들어다주고 친구를 꼭 안아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벌써 여고동창생들 중 몇 명의 친구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경험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서로의 눈에 열심히 담아둔다. 30년 만에 만나본 친구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