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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있어 학교 가는게 신나요
2014-01-11 14:47:05최종 업데이트 : 2014-01-11 14:47:05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큰 딸아이가 재수를 하던 시절, 엄마가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딸의 말에 주말도 없이 도시락을 두 개씩 싼 적이 있다. 이제는 도시락을 쌀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며칠 전 아들의 요구에 또 다시 도시락을 싸는 엄마가 되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아이는 방학 중에도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간다. 대학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고등학생들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수능을 대비하는 수험생의 자세로 모든 학교생활을 해나가야 하는데, 방학 중에는 정규수업은 없지만, 필요한 과목을 신청해서 수강하며, 자습으로 평소에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충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큰아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강제적으로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을 붙잡아 놓고 야간자율학습을 시키고, 방학 중에도 학기 중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학생인권조례 등의 영향으로 학교생활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학교만 해도, 신청자만 받아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보니 반에서 절반이상이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며, 방학동안 실시하는 보충수업도 아주 적은 인원만 수강을 한다고 한다.

꼭 학교엘 가지 않더라도 이곳저곳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너무나 과한 사교육비가 감당 안 되는 나 같은 부모들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 같아 아들아이에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공부하러 가는 학교지만 그곳에서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학교에서 먹는 시간은 점심, 저녁 급식시간이 전부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급식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그 대단한 관심만큼 또한 아이들의 불만도 매우 높다. 

음식의 질이 낮아서는 절대 아니다. 학교급식 재료만큼 양질의 신선한 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드물 정도로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고, 엄격한 위생관리에 따라 조리를 하지만, 영양소를 맞추면서 식단을 짜다보면, 아이들 개개인의 식성과는 다른 식단이 제공되다보니 내 입에 맞는 음식만을 먹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항상 불만인 것이 바로 학교급식이다. 

이런 이유로 학교급식 대신 밖에서 사먹는 아이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아들 녀석도 입학 후 처음 몇 개월은 점심, 저녁을 학교급식으로 먹었는데, 몇 달을 지내보더니 저녁은 급식대신 밖에서 먹고 싶은걸 사먹겠다면서 급식비를 직접 달라고 한다. 학교 앞에서 파는 음식 이라는 게 대부분 분식 종류나, 아니면 그저 한 끼 배고픔만 면해주는 주먹밥 뿐 이라 아들 녀석에게 한참을 설명해도 굳이 사먹겠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고 말았다.

하루 세끼 중 겨우 집에서 먹는 밥은 아침 한 끼, 그것도 서로가 분주한 이른 아침의 식사라는 게 밥과 국으로만 먹는 간단한 식사라 학교에서라도 영양소 골고루 갖춰서 먹었으면 싶은 엄마 마음을 아들 녀석은 모른다. 친구들이 사 먹는걸 보니 아들 녀석도 부러워 보였던가 보다. 

그렇게 학기를 보냈는데 방학 중에도, 아들 녀석은 점심을 학교 밖에서 사먹겠다더니, 며칠 전 잠자기 직전 소풍 갈 때나 사용하는 3단짜리 도시락을 꺼내놓는다. 내일부터 도시락을 싸 갈 거란다. 자립심이 너무 강한건지, 엄마에게 도시락 싸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한건지, 혼자 도시락을 싸가겠다며 3단 도시락을 꺼낸 것이다. 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3단 도시락대신 딸아이가 쓰던 도시락통을 꺼내 씼어 놓고, 갑자기 도시락을 싸게 돼서 도시락용 반찬이 없으니 내일아침은 계란말이를 해주겠다고 하니 아들 녀석의 말이 참으로 효심이 지극하다. 계란말이는 힘드니까 그냥 계란프라이로 해주고 집에서 먹던 반찬 그대로 담아주기만 하면 된단다, 그런데 반찬보다도 날씨가 추워서 밥이 차가울텐데 걱정이라고 했더니 무조건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 첫날, 도시락으로 싸간 점심이 정말 맛있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다음날도 도시락을 싸주는데 겨울날씨에 차가운 밥을 먹을 아들 녀석이 안쓰러워 국물대신 컵라면을 하나 넣어 보냈다. 그랬더니 라면으로 더 신난 아들아이는 다음날 엄마가 일어나기도 전인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직접 도시락을 싸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알람소리도 못 듣고 자는 녀석이다. 몇 번씩 흔들어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녀석이 벌써 혼자서 밥도 담고, 김치도 담고, 계란프라이도 한 개 담아놓고, 군만두를 하겠다고 프라이팬에 만두를 굽고 있는 것이다. 도시락이 아들아이에겐 큰 즐거움이 되었나보다. 

그렇게 도시락을 싸서 아들은 학교로, 엄마는 회사로 출근을 해서 직장동료들에게 우리 집 아침의 재미난 광경을 이야기했더니 여기저기서 나에 대한 비난이 자자해진다. 어떻게 이 추운 날씨에 보온도시락도 아닌 그냥 도시락을 싸 보낼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장 보온도시락을 사야만 한단다.

도시락이 있어 학교 가는게 신나요_1
도시락이 있어 학교 가는게 신나요_1

나도 보온도시락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잠깐 쓸려고 사기에는 아까워서 아예 살 생각은 없었고, 주변에서 빌려다 잠깐 쓸까 생각은 했었는데 아이가 괜찮다며 극구 말리는 바람에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동료들은 나 보고 계모 같다며 한마디씩 하는데 내가 너무 무심한 엄마였나 싶은 미안함도 들어, 그날로 바로 보온도시락을 하나 샀다.

아들 녀석의 반응은, 역시나 뭐 하러 샀느냐는 반응이다. 그래도 다음날 따뜻한 밥에 따끈한 국물까지 담아 보내니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아들 녀석이 밥 먹는 것만큼 공부 하는 것도 즐거워하며 힘든 고등학생시절을 잘 이겨나가길 바란다. 조금은 부실하고 부족해도 엄마의 사랑으로 채워 넣은 도시락처럼 엄마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단다. 사랑한다, 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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