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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정성을 시에 담는 윤주은 시인
윤시인과 함께 떠난 서산 송년 해넘이 여행
2014-01-01 15:01:23최종 업데이트 : 2014-01-01 15:01:2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삶의 진정성을 시에 담는 윤주은 시인_1
서산 부석사 찻집에 앉은 윤주은시인

2013년 12월31일 정오를 막 넘긴 시각 그녀와 난 서산 부석사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다녀온 사찰이지만 '누구와 언제, 왜?'에 따라 감정도 사정도 달라진다. 그녀의 이름은 윤주은! 글을 다루는 사람, 시인이다. 나이는 나와 동갑, 백말띠 해인 1966년에 태어났다. 
2014년은 청마(靑馬)의 해, '한번 달리면 냅다 달리는' 역마살(?)의 운명이니 새해를 맞이하기 전 겸허히 산사에서 '해'를 보내주자는 의미로 선택한 곳이 바로 서산 부석사였다. 

도비산부석사 일주문 앞에서 합장하고 가람을 향해 터벅터벅 올라갔다. 사위가 온통 눈으로 덮여 위용을 떨치는 산사의 풍경을 기대하면서 다다랐지만, 그 욕심을 버리라는 듯 산그늘 응달을 제외하곤 독야청청 소나무 사이로 회색빛만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기온상승으로 설경의 꿈은 사라졌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에서온 스모그 현상이었다. 저 멀리 내포평야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오늘 저녁 일몰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낙수(落水)소리가 마치 합창을 하듯 아름다워요. 저기 곳곳에 움튼 초록의 풀들도 보세요. 자연의 색에서 '봄이 오는 그날' 같지 않나요?"
아차, 그녀가 시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물을 보는 눈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인답게 전각의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나 푸르디푸른 댓잎과 초목들을 보면서 자연현상을 예찬했다. 마치 실력을 잘 다진 권투선수가 잽을 날리며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듯 톡톡 마음을 건넸다. 

한겨울이었지만 봄철처럼 따뜻한 바람이 가는 곳마다 얼굴을 간질이며 길을 열었다. 약사전을 지나 토굴로 향했다. 안내자처럼 가지런히 깔린 구불구불 박석을 따라 잠깐 걸었다 싶을 즈음 거대한 바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공손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듯 허리를 최대한 낮추고 들어갔다. 

삶의 진정성을 시에 담는 윤주은 시인_2
선묘각 뒤편 토굴로 들어서는 윤시인

토굴은 그야말로 한 뼘 수행처였다. 바위 틈 전면이 5백원과 1백원짜리 동전으로 빼곡히 끼어져있었고, 나무좌대는 깨달음을 원하는사부대중의 체온을 기다렸다. 시인과 나는 잠시 그곳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경허선사와 만공선사의 깨우침이 온누리에 형형한 빛으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했다.

말(馬)은 생동의 상징인 만큼 예까지 왔으니 한층 더 멀리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린 부석사 입구 전통찻집에 들러 대추차와 오미자차로 몸을 달군 후, 간월암으로 향했다. 스모그 때문에 부석사 정상보다는 바다에서 만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 조율을 마쳤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동차 핸들이 돌려졌다. 
조바심을 누르며 간신히 다다른 간월암에서 해넘이를 볼수 있었다. 목숨을 내려놓는 절정의 빛은 아니었어도 인식만으로도 충분한 빛이었다. 간월암 위로 소원을 비는 연들이 너른 하늘을 향해 내일의 희망을 부르고 있었다.

삶의 진정성을 시에 담는 윤주은 시인_4
서산 간월암, 경허선사의 체취가 있는 곳이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얼마 전에 나왔다. '입안의 칼(시산맥사)'이다. 118쪽 시집은 오늘처럼 예고 없는 하루의 일상(혹은, 시인이 살아온 시간)들을 담고 있다. 때론 섬뜩하게, 때로는 새침한 정반대의 색깔로. 그렇지만 공들인 패키지여행처럼 다양한 시들에 담긴 진솔함이 감동이다.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시인들의 글처럼 세련된 언어, 현란한 기교를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절제된 시(詩)들이 진정성으로 꽉 찼다.

'맨발로 겨울을 밟고 오는/ 생명은 모두 꽃이구나.- (봄꽃)'
'한때 면도칼 좀 씹었다는 그녀와의/ 키스는 아슬아슬하다.....누구나 살다보면 그렇지/ 채 피지 않을 꽃을 물었던 입에/ 칼을 감추었다가/ 차마 뱉지 못하고 삼키곤 하지/ 사람으로 살다보니 삼키는 그 독- (입안의 칼)'
'외상값도 받지 못하고/ 버스비만 날린 채/ 터덜터덜 걸어 돌아가는 길// 주머니 구석을 털어/ 새우깡 한 봉지로/ 허기진 하루를 땜한다// 새우야, 너는 좋겠다/ 허리가 휘도록 삶이 고달파도/ 온 생을 갈아 깡이라도 남아 있으니- (새우깡)'
'그대가 언제는 나를 여자로 보았던가/ 새삼스레.....어정쩡한 그대의 말/ 감히 여자가/ 바다 앞에 먼저 고개 들다니- (페미니즘 2)'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만이 늘/ 아편의 양만큼 숨을 쉬게 하지만/ 플라토닉러브와 에로티시즘이 일치하는 순간이란/ 흔치 않은 법이지- (속물)'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야 길을 나섰다/ 특별히 그럴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발길은 성근 돌 사이나/ 웅덩이를 헤매는 습관이 길들여졌다/ 원망할 대상은 없었다- (슬픈 귀가)'

그의 시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인용했다. 그러나 시인은 현재 살고 있는 거처의 풍경부터 사랑의 허허로움, 이별, 배신, 사고, 상상 등 일상의 풍경들까지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 솔직 담담하게 그려 넣고 있다. 
시인과 함께 해넘이를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잘 포장한 거짓말 시어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솔함만을 새겨 넣는 '진짜시인'이다. 그래서 그녀가 마음에 든다. 

삶의 진정성을 시에 담는 윤주은 시인_3
간월암의 2013년 12월31일 일몰

시인은 이번 여행에서 또 어떤 감흥을 얻고 돌아갔을까. 
생(生)의 진정성을 담는 윤주은 시인이여! 갑오년 말띠 해를 맞아 더 찬란한 시들을 창작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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