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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것들
2013-12-16 17:24:10최종 업데이트 : 2013-12-16 17:24:1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깥출입이 부쩍 줄었다. 게다가 눈이 놓지 않고 얼어붙어 있는 거리를 함부로 다녔다가 본전도 못 찾는 일을 당할까 내심 나가고 싶어도 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월요일 오전 집안을 흔드는 요란한 집 전화 벨소리.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중이라 스팸전화겠지 하고 무시했는데 끈질겨도 너무 길게 신호가 울려 한판 붙을 요량으로 수화기를 받았더니 우악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을 때린다.
"넌 집에서 뭐 그리 큰 일한다고 전화도 안 받고...... 나와"한다. 근처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게다가 인근에 있는 친구 한 명 더 데리고 집 앞에 대기 중이다.

엉거주춤 수화기를 들고 가타부타 얘기도 못했는데 일방적으로 제 할 얘기만 하고 끊어버린다. 베란다 밖에 바라보니 빨리 나오라는 손짓을 할 뿐 대꾸도 없다. 
친구가 옆에 있어서 좋을 때가 많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릴 때는 거절할 수가 없다. 외모는 성인이나 가끔 하는 짓은 딱 고등학교 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워 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두 친구가 작당을 해서 찾아온 이유는 지난 밤 텔레비전에서 어묵 국물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던 모습이 보았는데 지난 가을 나의 안내로 갔던 못골시장에서 먹었던 그 어묵 맛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도 의견이 제 각각이다. 이럴 때 보면 유치함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학창시절을 함께 지낸 동창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유치함에 가세했다. 
"버스 타고 갈 거면 가고 안 그럼 니들끼리 가" 하자 입술을 삐죽거리며 결국 나의 뜻대로 시내버스를 타고 못골시장 앞에서 내렸다. 

수원에 살면서도 남문에 몇 년 만에 나온다는 동행한 친구는 시장입구에 있는 찐빵과 만두 파는 가게 앞에서 멈췄다. "우리 찐빵 하나씩만 먹고 갈까?"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안으로 들어갔더니 막 익힌 만두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만두 하나씩만 더 먹자. 우리 만두도 한판주세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주문을 하고 해해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계집아이 표정이다. 

점심 손님을 받기까지는 한 시간도 더 있어야 하기에 빈 홀에서 눈치 안보고 시끌벅적 수다삼매경이다. 단팥이 충분하게 들어간 찐빵이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덜 식은 만두를 급하게 한입 물은 친구가 팔딱거린다. 먹음직한 속임수에 뜨거움을 인식하지 못했다. 김치 만두 한판 5개에 삼천원, 찐빵 한판 5개 삼천원. 육천원으로 배불리 포식했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것들_1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것들_1

고등학교를 동해에서 다닌 우리들은 토요일이 되면 묵호에 있는 중앙시장에 자주 갔었다. 토요일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위해 일주일 동안 적게는 몇백원에서 돈천원까지 계를 모아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닭발이나 떡볶이, 잡채말이, 호떡 등 각종 분식집을 투어를 하곤 했었다. 
그 시절 우리만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근 학교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고 영화관도 있어 더 주말 중앙시장은 학생들 천지였다. 그때는 영화관도 고등학생들에게는 출입제한 지역이라 교외지도 선생님들 눈을 피해 영화를 봤었는데 월요일 등교하고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선생님의 호출에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었다. 

날 잡아서 시장에 왔는데 그냥 돌아가겠는가? 학교에 간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위해 포장한 만두와 찐빵을 들고 못골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보지 못했던 호떡이 눈 안에 들어왔다. "얘들아. 신기하다. 기름 안 넣고 하는 호떡인데 한번 먹어올래? 하나씩 주세요" 배부르다고 가장 먼저 말한 친구가 호떡을 받아들고는 "맛있는데"한다. 호떡 안에는 소와 견과류를 함께 넣어 처음 맛은 달콤하고 뒷맛은 고소했다. 

월요일 오전이었지만 시장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속이 다 비칠듯 투명하게 보이는 새끼 꼴뚜기, 싱싱한 물미역,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가게를 지나 정작 목표로 했던 어묵 가게 앞에 도착하여 망설인다. "너. 어묵 먹을 거야? 매운 어묵으로 우리 하나씩만 먹고 가자"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을 보고도 무시한 채 손에 쥐어준다.

"맛있지? 정말 맛있지? 이건 진짜 oo어묵이래. 다른 어묵이랑 달라서 생선살이 확실히 많이 들어 간 것이 느껴져. 겨울에 먹으니까 정말 더 맛있다. 그치?" 누가 보면 주인인줄 알겠다. 유난히 어묵을 좋아한다는 막내를 위해서 포장 어묵을 구입하고 우리에게도 막무가내로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전통시장이 가까이 없는 지역에 살다보니 대형마트만 주로 이용한다는 친구는 오늘 오전 못골시장 먹을거리 투어로 신세계를 발견한 듯하다. 보는 것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물건들이 싱싱하고 좋다는 예찬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셋이라 먹을 것에 목숨 건다는 친구는 집 앞에서 마지막으로 붕어빵까지 사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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