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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통닭집 부부의 인생 후반이야기
죽는 날까지 함께 즐겁게 사는게 소원이지요!
2013-12-27 08:18:06최종 업데이트 : 2013-12-27 08:18:0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우리 남편은 원래부터 있는 집안의 자식이었어요. 그에 반해 저의 집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지요. 이처럼 양가 형편이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해서 혼사가 이뤄졌어요. 그런데 지금 저리 귀한 양반에게 닭을 튀기게 하고, 가게 청소까지 시키니 한없이 미안하기만 해요."

우리들이 자주 접하는 풍경, 남편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 '남편을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고하는 아내가 있다. 그녀는 연이어 이렇게 말한다. 
"덩치는 산만한 양반이, 배울 만큼 배운 멋진 사람이, 집에서 조용히 책만 들여다봐야 하는데... 저리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일을 하려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그러니 늘 미안하기만 해요"라고.

아름답다, 통닭집 부부의 인생 후반이야기 _1
몇 달 전 '술타령'이란 시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소야 스님이 찾아왔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받아 자작시를 선물하고 가셨다. 부부는 즉시 가게 한 벽면에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기자가 부부와 인연이 닿은 시기는 꼭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주인장의 성격이 마음에 들어 몇 년째 단골로 다니던 팔달문시장 근처 호프집이 있었는데 어떠한 사정이 생겨 몇 달간 찾질 못했다. 
그리고 일상의 여유를 되찾은 날 다시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새 간판에 통닭과 호프맥주란 새 메뉴를 걸고 새로운 주인이 들어와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멋쩍어 그냥 나올까하다 그래도 옛정이 남아있는 집이니 잠시 앉아 있다가 가자는 심정으로 주저앉았다.

'새로 개업했으니, 자주 찾아 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과일서비스를 내주는 주인장을 쳐다보니 어쩐지 이모인상이 풍기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단박에 나의 마음을 이끈 이유와 만났다. 바로 올해로 만 68세라는 다소 나이가 많은(?)남편과 단 둘이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아내의 나이도 당연이 60은 넘었을 터이다. 
세상에! 60이 넘은 부부가 치킨과 호프를, 그것도 번화한 중심가에서 판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후 근처에 볼일이 생길 때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한다면 노부부의 살가움이 그리울 때마다 내 집 드나들듯 찾아갔다. 
한번 안면을 튼 후 친해진 부부는 가게가 한적할 때마다 그간 살아온 인생 역정을 들려줬다. 아내는 오직 남편의 건강과 자식교육을 위해 지금껏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 이름이 쌍례예요. 남들은 이름을 듣는 순간 웃지만 제가 쌍둥이거든요. 가난한 집안에 쌍둥이에다가 자식들이 넘쳤으니 당연히 배움도 짧았지요. 그래서 제 인생목표를 '아이들에게는 최고 교육을 가르치자'로 삼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커서 홀로 되더라도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기술하나씩도 가르치자'였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줘서 큰 난관 없이 성장해 지금은 독립해 잘살고 있어요. 문제는 남편의 건강이었어요. 69년도 월남전 파병 후 고엽제 후유증 때문에 약으로 살아야했죠. 그래도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려고 늘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어요. 저 또한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일에 빠져 살았습니다."

남매는 성장해 사회로, 가정으로 독립했으니 더 이상 많은 돈은 필요치 않았다. 그리하여 젊었을 때부터 고생하고 살았으니 이젠 쉴 만도 하지만, 부부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월남전 유공자로 인정되어 국가에서 어느 정도 보조금이 나와요. 때문에 이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놀면 뭐해요. 오순도순 마누라와 둘이서 욕심 없이, 쉬엄쉬엄 장사하는 것이 즐거워요. 또 가게에 나오면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니 힘도 나고 행복하잖아요."

아름답다, 통닭집 부부의 인생 후반이야기 _2
정성을 다해 깨끗한 기름에 닭을 튀겨내고 계신 안사장님

생전 처음 하는 일이니 처음엔 낯설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품목이 닭 집이니 닭을 튀겨내는 일, 각양각색의 손님을 받는 일,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 등 모두가 생경하기만 했다. 그런데 일 년이란 세월이 훌쩍 흐르면서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아차릴 정도로 이젠 손발이 척척 맞는다. 단골손님도 생겨 많이 벌지는 못해도 가게 유지에는 지장이 없단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까요. 인생 후반이니 몇 년 더하다가 그만둘 겁니다. 둘이서 놀러 다녀야지요. 그러니 소중한 우리남편이 없으면 안돼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함께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내는 또다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편이라고. 아무리 춥고 주방일이 힘들어도 남편 얼굴만 보면 힘이 불끈 쏟는다고. 

아름답다, 통닭집 부부의 인생 후반이야기 _3
시민기자를 딸처럼 대해주시는 사장님, 늘 정겹다

며칠 전 우리나라 부부들이 하루에 얼마만큼 대화를 하는가에 대한 통계가 나와 장안에 화젯거리가 됐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에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와 함께 '늦은 귀가와 주말 근무'라는 이유를 앞세우며 결혼10년차 넘은 부부가 하루 대화시간이 10분도 채 안 된다는 부끄러운 수치를 기록했다. 
고령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고독한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니 이 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본 일이다. 안사장님 말마따나 덩치는 산만한 양반이 시장에서 사왔다며 검정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종일 서서 일하는 아내를 위해 구입한 굽이 낮고 예쁜 단화였다. 그 감동적인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들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님이 떠나면 상을 치우고 바닥을 쓸어 담는다. 그리곤 최고의 먹거리를 손님에게 내놓는다며 싱싱한 채소랑 과일을 사러 직접 시장으로 나선다.

우리가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 '어르신!',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시는 이분들이야말로 진정 멋진 실버 어르신들이다. 부부의 바람대로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수원통닭거리, 영동치킨, 통닭,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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