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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요
2013-12-13 23:49:18최종 업데이트 : 2013-12-13 23:49:18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따사로운 봄 햇살에 씨를 뿌리고, 무더운 한 여름의 태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가을이면 열매를 수확하고, 겨울이면 평안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겨울. 긴 겨울을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겨울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과 땔감을 잘 준비해 놓아야 한다. 김장과 연탄을 들여 놓으면 겨울 준비 끝이라고 했던 예전 우리 엄마세대처럼, 나도 오늘 긴 겨울 준비로 김장을 한다. 

내가 어릴 적에는, 김장하는 날이면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배추를 절이고 김치 속을 준비하고 항아리를 땅에 묻으며 김장 준비를 한다. 배추김치 뿐 아니라 큼지막하게 썰어 버무린 무김치부터 약간 매콤한 듯한 갓김치, 총각무김치, 파김치, 깍두기, 김치종류도 골고루 구색 맞춰 담가놓고, 겨우내 난방과 취사를 책임질 연탄을 몇 백장씩 들여놓고 나면 엄마는 겨울 준비를 끝냈다며 그제야 한시름 놓곤 하셨다. 

겨울 준비가 생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었으면, 그 시절에는 김장철이 되면 김장 보너스라는 항목으로 월동준비를 할 수 있는 보너스가 회사에서 지급 되기도 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날, 불구멍을 활짝 열어 뜨끈뜨끈한 방에서 보글보글 끓는 동태찌개에, 땅 속에 묻어놓은 항아리에서 바로 꺼내온 배추김치 한포기와 큼지막한 무김치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던 풍경이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겨울준비도 많이 달라졌다. 특별히 겨울준비라고 할 것도 없다. 난방은 아무 때나 스위치만 돌리면 금방 따뜻해지는 도시가스로 해결하며, 거주하는 집의 구조도 방문만 열면 찬바람 몰아치는 주택이 아닌, 창문으로 몇 겹씩 바깥 찬바람을 차단하는 구조인 아파트에 살다보니 특별한 겨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김장 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요_2
김장 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요_2
 
그나마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겨울준비 중 김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텐데, 김장하는 풍경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마당 한편 수돗가에서, 김장 하루 전부터 배추를 절이고 직접 담근 멸치젓을 달이고 마늘, 생강을 절구에 빻고 찹쌀 풀을 쑤며 김치 속을 준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그 대신 따뜻한 아파트 거실에서 절임 배추에 김치 속만 준비하여 거실 한편에 있는 김치 냉장고에 담기만 하면 김장 끝이니 얼마나 간단하고 편해졌는가. 

그럼에도 주부 입장에서는 김장이 아직까지 큰 일중의 하나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도 친구들 중 대부분은 김장을 혼자하지 않고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가서 다른 형제들 것까지 함께 해서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 
나도 십여년 전, 시어머님이 살아 계실때는, 어머님이 해서 보내 주신터라 편하게 겨울 준비를 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혼자 힘으로 김장을 한다. 평소에는 이런 저런 각종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주시는 친정엄마도 김장은 따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김장은 내 힘으로 직접 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장으로 30~40포기의 배추김치와 총각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깍두기 등 골고루 담가 김치냉장고를 꽉 채워 넣으면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 조금이라도 맛있는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김치에 들어가는 속 재료도 비싸고 좋은 것들로 이것저것 넣다보면 한해 김장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뉴스에서 보도되는 겨울 김장 재료비용 보다 훨씬 초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장도 몇 해 해보니 비싼 재료가 들어간 만큼 맛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은 가장 간단한 기본재료로만 김치 속을 만든다. 올해 우리 집 김장의 비법이라면, 친정 엄마가 직접 멸치를 사서 담근 멸치젓을 달여서 체에 내린 멸치젓이다.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액젓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거기에 김치의 시원함을 더해주는 청각을 넣는다. 미역, 다시마처럼 해초류인 청각은 김치의 시원함을 더해주면서 향긋한 바다내음을 선물해준다. 
청각을 넣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일반 마트에서는 판매하는 곳이 별로 없어서 김장때면 몇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구하던 청각을 이번에는 지난 가을 완도 여행 때 미리 사다 준비해놓은 덕분에 구하러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찹쌀풀과 황태와 표고버섯을 우려낸 육수, 마늘, 생강, 갓, 쪽파, 생새우와 새우젓 등의 기본적인 양념만으로 속을 만들어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직접 하는 김장의 짧은 역사에도 그동안 변화가 생겼다. 김장할 때 가장 힘든 과정은 배추를 절이는 과정이다. 

몇 십 포기의 배추를 손질하여 배춧잎 사이사이 소금을 뿌리는 과정은 허리가 끊어진다는 표현이 딱 알맞은 말일 정도로 힘들고, 또한 최적의 절임 상태를 맞추기도 어려워 김장의 성패를 가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내가 직접 배추를 절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배추를 손질하면서 나오는 겉잎사귀를 삶아서 우거지로 만들어 보관하면,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아무리 힘들어도 이 과정을 직접 했었는데, 드디어 작년 김장때부터는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김장을 하고 있다. 배추 절이는 과정만 한 가지 생략되었을 뿐인데도 김장이 훨씬 간단해지고 쉬워졌다. 

김장 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요_1
김장 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요_1
 
처음 절임배추를 주문 할 때는 여러 가지 걱정도 생겼다. 절임 상태는 적당할까, 위생적일까, 배추는 좋은 걸로 사용할까 등의 걱정을 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남들보다 조금 늦게 김장을 하다 보니, 벌써 김장시장은 다 끝나고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도 철수 해 버린 곳이 많아 김장재료 구하는데 약간의 불편을 겪었지만 무사히 김장을 마치고 나니 큰 짐을 하나 덜어낸 것처럼 홀가분하다. 

옛날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해졌지만 그래도 일 년 먹을 양식인 김장 하는 일은 아직도 큰일중의 하나라 은근히 부담이 되었던 때문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김장을 도와 주러온 여동생과,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라 집에 있던 큰딸까지 합세해서 올해 우리 집 김장이 맛있게 완성 됐다. 김장의 마지막 순서인 찜질방까지 다녀와서 쌓아놓은 김치통을 바라보니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마음까지 따뜻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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