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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똑똑' 소잉이 나에게 말을 걸다
2013-12-12 23:05:13최종 업데이트 : 2013-12-12 23:05:13 작성자 : 시민기자   최지영

요즘 내 일상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소잉(sewing)을 하는 것이다. 
한때 신혼놀이 한다고 발매트도 만들고, 앞치마도 만들고, 쿠션도 만들고 했던 적이 있긴 하다. 

좀 더 제대로 해 보겠다고 미싱을 샀다. 그런데 기계가 달라지니 실을 끼우는 것도, 작동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보관만 하고 있다 양재를 재미있게 배우고 있는 분이 있어서 주었다. 
그렇게 소잉과 멀어져 갔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 신혼놀이 하던 때처럼 태교놀이가 하고 싶은지 또 소잉이 생각났다. 

마침 동네에 소잉샵이 생긴 것도 한 몫 했다. 이 미싱은 또 어찌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던지 그 기계를 경험한 이후 미싱 앓이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가의 미싱에 꽂혀버린 거다. 신랑이 예전부터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했었는데, 나는 완강히 지금 있는 것이라도 잘 쓰자며 알뜰한 티를 내고 있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는 축하 선물로 나는 미싱을 사고, 신랑은 카메라를 사는 것으로 경제 생활에 많은 지출을 남긴채,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나는 일상생활의 수선비를 줄이고 아이 옷을 만든다는 것, 신랑은 아이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눈 오는 날 '똑똑' 소잉이 나에게 말을 걸다_1
소잉을 하면서 만든 작품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눈이 많이 온 날이다. 외출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취소하고 집에 머물렀다. 그동안 일 하느라, 이것저것 하느라 소잉을 할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원없이 소잉을 하며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눈오는 날. 똑똑하고 소잉이 내 삶에 말을 걸어온다. 이를 통해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나는 무엇인가를 직접 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하게 되었다. 꼼꼼하게 무엇인가를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흥미를 느낀다는 것. 기계를 조작하고,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만들어가는 것에 꽤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런 과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또 다른 증거들. 소잉과 함께 신혼때 D.I.Y라는 것도 즐겼다. 이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서 일하느라 점점 잊혀져 갔지만 한 때 좋아하고 꽤 보람을 느꼈던 거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음식으로 보자면 조개구이나, 꽃게, 새우 이런 것들 이다. 어떤 이는 손이 많이 가서 싫다고 하는데, 나는 손이 가서 좋아하는 거다. 

신랑은 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조개 구이집에 가면 내가 장갑끼고 이것저것 하면, '이 테이블은 여성분이 다 하시네'하신다. 신랑은 순간 매너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것이 또 잘 맞는 궁합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손에서 시작해 손에서 끝나는 이 소잉이야 말로 내가 좋아하는 취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곡선 박기'가 주는 철학이다.
티셔츠 만들기를 하는데 목둘레를 박는다 던지 소매단 등을 재봉할 때, 대략 난감해 진다. 곡선을 어떻게 박아야 할까? 문득 엄마가 주행 연습을 하실 때, 굽은 길이 나오면, 얼굴색이 변하시며 '이렇게 구부러진 길을 어떻게 운전해서 가냐'며 난감해 하시던 것이 겹쳐진다. 
곡선 박기의 철학. 바로 곡선을 '짧은 직선'으로 바꾸는 것이다. 멀리 보지말고 바늘 앞의 짧은 구간을 보는 것. 곡선을 짧은 직선으로 생각하며 그렇게 짧게 짧게 가다보면 어느덧 곡선이 만들어진다.

무엇인가 하기 전에 '이걸 어떻게 해?' 라는 생각이 들 때,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직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지혜를 소잉을 하면서 발견해 본다.

세 번째는 '실패, 실수'의 미학이다.
내가 소잉을 즐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실패와 실수'에 대한 내 생각인 것 같다. 꼼꼼하게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 하며 꽤 실수에 관대한 편이다. 소잉 수업을 받을 때는 지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은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해 지지 않은 것을 집에서 혼자 하다보면, 순서도 헷갈리고 조작도 서툴러서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 보다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되든 안되든 스스로 해 냈다는 뿌듯함은 그 이상이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하면서 진짜 실력이 늘어가는 거다. 

최근에 '빨강머리 앤'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앤은 이런 저런 실수를 많이 한다. 친구에게 쥬스 대신에 술을 먹인다거나, 케익에 진통제를 넣는다거나. 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저는 실수를 많이해요.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잖아요. 누구에게나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실수를 할 때마다 그 개수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완벽하게 옮기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실수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이지 않은가?

소담소담 눈이내리는 날, 나 스스로 만든 아기 티셔츠는 참담하다. 목둘레의 안감 겉감을 잘못 대어 뜯어내야 하기도 하고, 기껏 예쁘게 박았다 했더니 재단이 잘못되었는지, 목둘레 감이 부족하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일들로 목둘레가 너덜해 졌고, 임기응변으로 목둘레 확장술을 썼더니 목이 지나치게 커졌다. 어려운 부분이라 소잉 선생님이 해 주었던 팔목둘레도 직접 하다보니 삐뚤하긴 하지만 두 번째 할 때는 좀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날 아기에게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 시행착오를 배웠다는 것에서 나는 '재미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다음 도전에서는 좀 더 능숙해 지기를 기대하면서.

네 번째, 글쓰기와 소잉의 공통점.
올해 새로운 도전 중의 하나는 글쓰기였다. 100일 글쓰기, e수원뉴스 시민기자 활동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 그림 그리기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즐겼던 활동이었다면,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끔 의외의 좋은 결과를 받곤 하던 영역이다. 

특히 시(詩)라던지, 기행문, 소감문 이런 분야에서 예상밖의 상을 받곤 했던 거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논술 대회'에 추천하셔서 가끔 나간 적이 있다. 
매번 시간부족으로 글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나오거나 마음에 들게 글을 쓰고 나온 적이 없어 언제부터인가 '나는 글쓰기를 못해'라고 마음을 접었던 분야가 되어버렸다. 
특히 논리적인 글에 대한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지, 대학원을 수료하고 아직 논문을 완성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소잉을 하면서 글쓰기와 소잉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조각조각을 끼워맞추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것, 그 연결을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 미싱으로 박고 다시 뜯고 하는 과정처럼 익숙치않은 사람에게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것.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다보면 더 좋은 절차와 과정을 스스로 알 수 있기도 하다는 것. 첫 완성품은 멋있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직접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또 소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하다 보면 분명 느는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소잉을 하면서 하나하나씩 작품을 만드는 것 처럼 나의 글들도 점차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 소잉을 하면서 나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어서 의미있는 날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좋아해오던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자. 이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이 걸 통해서 나는 어떤 배움과 감동을 얻어오고 있나?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일상처럼 하던 그 활동 역시 나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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