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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생신 어떻게 하십니까?
2013-11-29 10:49:35최종 업데이트 : 2013-11-29 10:49:3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 동안 세 들어 살고도 
한 달 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우유 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소야 신천희 시 '외상값' 전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가끔 갔던 치킨골목 통닭집에서 보았던 '외상값'이란 시이다.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 가슴이 찡하고 맞아 맞아하고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그러나 이내 다른 사람도 부모에게 염치없고 뻔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혼자만이 별나게 지낸 것임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숨의 내쉬었던 것 같다. 

부모님 생신 어떻게 하십니까?_1
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줄 양식이다

부모님께는 항상 핑계거리가 많았다. 사시사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푸성귀를 보내주고 일주일만 안부전화가 없어도 웬일인가 싶어 걱정이 앞서는 분들인데, 아이들 건강, 학교, 각종 행사와 사소한 사교 만남까지 과대하게 포장되어 부모님의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부모님 얼굴에도 점점 깊게 골이지는 주름살이 세월의 흐름을 각인시켜주지만 돌아설 때마다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생활이라는 핑계 속으로 이내 사장되어갔다. 

친정 엄마의 일흔 여섯 번째 생신 아침이다.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이 죄송스러워 지난밤에 전화를 드리고 오늘 아침 전화기 앞에 몇 번 섰다가 통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추수가 끝나고 매년 서울에 사는 오빠네로 올라가 엄마의 생신을 빌미로 형제들이 떠들썩하게 모이는 것도 차타는 것이 힘에 부친다는 말씀에 친정으로 갔었는데 올해는 어쩌다보니 제각각 형편이 되는대로 찾아뵙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세간에는 남아선호 사상이란 말이 없어진지 오래겠지만 우리 친정에는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부모님 중에 친정 엄마의 오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지천명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세 여동생들은 아무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았었다. 
그런 중에도 언니는 친정 가까이 살면서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부모님의 불편이 없는지 살폈고 동생네는 아산에서 맞벌이를 하면서도 매달 친정에 가는 것을 목표로 잡을 정도로 각별했었다. 

그러나 이번 생신에는 오빠네만 부모님과 함께 아침상을 같이했다. 문득 남아선호 사상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남아선호 사상이라기보다 오빠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께서 가끔 하는 "그래도 아들이지"하는 말씀이 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했었는데 오늘 부모님 생신에 부재를 겪고 보니 염치없이 받을 것만 취하고 뻔뻔하게 갚아야할 빚이 태산인데 그곳에 더 보태고 있으니 분명 악덕채무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 관계 속에는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하다못해 작은 마음의 징표에도 주고받음을 표했는데 가장 넓고 큰 부모님의 은혜에는 눈감고 귀 막고 살았던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부모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셨으니 치사랑이 웬 말인가? 부모님의 사랑은 퍼내고 퍼내도 끊임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마를 길이 없고 기한 없는 채무라 했으니 급하게 상환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면 후일이 걱정일 것이다. 내 아이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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