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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2013-11-29 13:33:46최종 업데이트 : 2013-11-29 13:33:4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근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대라 할 수 있는 한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시기엔 세기를 뛰어넘는 국· 보물급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적으로 반출됐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해외소재문화재단'을 설립한 맥락을 짚을 수 있는 대목으로서 해외문화재 환수는 현재 진실로 우리들이 풀어내야 할 당면과업이기도 하다.

'환지본처(還至本處)'!  지난 추석 한국전쟁(6·25)때 미군병사에 의해 약탈되었던 문정왕후(중종의 왕비) 어보 반환이 확정됐다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LA의 라크마 박물관과 함께 온· 오프라인을 장식한 혜문스님은 우리문화재 환수운동을 가리켜 '환지본처'라 표현했다.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고.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2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2

28일 국가도, 힘 있는 단체도 아닌 양심적 지성 하나만으로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 찾기'에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혜문 스님이 수원화성박물관을 찾았다. 강연 주제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든 인파는 시작 전부터 강의실을 후끈 달궜다. 

그간 스님이 일궈낸 이력과 동향을 꾸준히 접해온 시민기자 역시 잰걸음으로 찾아갔다. 첫인상이 신문지상에서 뵌 것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었고, 어쩐지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굉장히 매서운 눈매는 관중을 향해 금방이라도 야단을 칠 기세여서 살짝 긴장감을 갖고 중간 어귀에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난 선생도 아니요, 그저 대한민국 국민이자 일개의 승려일 뿐이다. 그러니 나의 강연은 학술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 우리의 과업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2013년도를 살아가는 여러분과 내가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자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중에서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다."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3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3

스님은 2004년 일본유학중 교토의 고서점에서 도쿄대 조선사연구의 권위자 쓰에마쓰 교수의 '청구사초'를 발견하면서 약탈된 우리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비롯됐다고 한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일본 도쿄대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 스님은 귀국 후 바로 환수운동에 뛰어들었다.

'왜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의 주작대로가 삐뚤게 조성되었을까.', '왜 청와대 대문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대문을 닮았는가!', '경복궁역 5번 출구의 숨은 비밀을 알고 있나!', '경복궁 하향정은 존치되어야 마땅한가!', '보물로 지정된 경복궁 향원정의 삐뚤어진 다리는 본래의 위치였는가!'.......스님은 우리문화재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가며 더불어 그간 환수에 공을 들인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설파했다. 

"일제의 국권 침탈 후 조선총독부는 그들(일본)만의 방식 즉, 일본식 조경을 받아들이는 등 그들만의 축으로 모든 것을 변경한 결과물(광화문 광장)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옛것(남산 조선총독부)을 모방하여 청와대 정문 석등을 쌓고, 문화재 개념을 무시한 채 50년대엔 하향정을 짓고 하는 것들을 볼 때 어느 것이 진실인가 여러분도 생각해 보라. 그간 많은 노력 끝에 나의 의견이 받아져 철거된 것도 있고, 이승만 대통령이 휴식처 용도로 짓은 하향정은 경복궁 원형에 위배되는 것이라 철거내지는 이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이처럼 국내의 문제도 있지만 해외로 밀반출된 유물들을 되찾아오는 것을 일대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2006년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5년간의 노력 끝에 환수한 '조선왕실의궤', 내년에 돌아올 예정인 '문정왕후 어보'등 값진 보물 문화재도 있다. 그리고 오쿠라가 강탈해간 '조선 제왕의 투구와 갑옷',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 등 다수의 문화재 환수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식민지시대를 끝내고 1965년에 체결한 한일협정이 오늘의 현실을 낳았다. 당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었는데 총 4천479점을 우리가 반환 요청했지만 그들은 '인도'라는 명목으로 1천432점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품목들을 살펴보고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정국에 있었던 막도장이나 옷가지 그리고 짚신들... 그야말로 인사동에 가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 70%정도였다."

스님은 경제개발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우리경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원칙적으로 잘못된 협상이라면서 임기응변이 아닌 원칙을 재정립해 모순을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열강들의 이해 관계 속에서 힘이 없던 우리나라는 21세기 현재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직지대모 박병선 박사의 외규장각 의궤 환수, 안중근의사 유묵과 정조필국화도 등을 환수한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문화재 93점을 반환시킨 조창수 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학예관, 그리고 혜문스님처럼 시민들의 힘을 규합하여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제자리 찾기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일본(66,819)이 독보적으로 많고, 미국(42,325), 영국(10,727), 중국(8,278), 독일(7,954)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학계는 미공개된 수치를 가늠해 볼 때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1
혜문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청중들

"공명정대한 세상과 인간의 양심에 입각한 세상을 꿈꾼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꼭 문화재만을 한정시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시대의 왜곡된 혹은 잘못된 것은 바로고치고 원위치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혼이 담긴 계란은 힘이 강하다는 것을, 진실보다 강한 힘은 없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 모두가 아셨으면 좋겠다." 
우리문화재사랑, 깨어있는 지성이 필요한 까닭을 혜문스님은 강연 내내 모두 토해냈다.

한편 혜문스님의 강연이 끝난 뒤에는 스님의 저서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저자 사인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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