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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란 죽어서야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
건강한 사회일수록 아버지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
2009-01-02 12:33:10최종 업데이트 : 2009-01-02 12:33:10 작성자 : 시민기자   권오기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지난해 부터 미국발 국제 금융쓰나미를 겪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도 하고, 경영지난 10여년 난을 겪는 회사들은 구조조정을 하여 수많은 가장들은 길거리에 내 몰리고 있다. 
'가족을 맡을 능력이 없는 가장', '식솔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딱지를 붙인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설 곳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고, 가뜩이나 위태롭던 그들의 자리는 불투명하게 되어 가고 있다. 

드라마 '아버지'의 줄거리이다. 
정수(박근형)는 무능하고 무관심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불만의 대상이다. 어느 날 정수는 친구인 남박사(이호재)로부터 자신의 생명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정수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비밀에 부치고 혼자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든 정수는 술로 괴로움을 달래고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가족들의 불만은 커지고 아내 영신(장미희)의 생일인 것도 잊어버리고 늦게 들어온 그에게 가족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다음날 '아버지는 차라리 남이었다'는 딸의 편지를 발견한 정수는 쓸쓸히 집을 나간다.

"지금보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예요"

최근 '아버지의 기를 살려주자' 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군인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면, 99%가 '어머니'라고 외친다. 동서고금을 떠나 어머니의 힘은 자녀에게 거의 절대적이다. 
이 모든 게 '아버지'의 존재가치가  땅에 떨어졌다는 반증이고, 아버지의 존재가 어머니의 존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하다. 

호주제가 중심이었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의 헌법이념을 법적으로도 현실화하고 있다. 고 최진실은 전남편 야구선수 조성민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환희(8)와 딸 수민(6)의 성과 본을 자신의 성과 본으로 바꿔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했다. 지난 2004년 이혼뒤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을 확보한 최진실은 지난해부터 시행되는 가족관계 등록제에 따라 자녀의 성 변경이 허용되었다.

아버지란 죽어서야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_2
아버지란 죽어서야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_2

MC 허수경은 자발적으로 정자기증을 통해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한 딸 은서를 출산했다. 아비없는 자식이라는 편견에 가득찬 말이 엄연히 존재해 온 사회에서 용기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은서는 당연히 허수경의 성을 따른다. 
한편 탤런트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선택한 공개 입양 역시 남성본위 혈통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회 흐름과 같이 한다. 신애라의 뜻을 따랐다는 두 딸의 입양은 모성애의 발휘로 나아가 가부장적 혈연의식을 깼다는 데 주목된다. 모계사회는 가문승계가 아닌 양육을 최소한의 단위로 작동하는 사회를 말한다. 

남편인 동료 탤런트 박철과 떠들썩한 이혼 사유 공방을 벌인 옥소리. 그녀는 간통이라는 박철의 혐의 주장에도 이혼 소송에서 외동딸의 양육권을 요구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아이는 아버지 가문에 속한다는 통례를 반영한 법률로 귀책사유와 상관없이 이혼하면 여자는 아이에게 대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권리 조차 갖지 못했다. 
고 최진실(40), 허수경(41), 옥소리(40) 등 최근 연예계 인사들이 중심에 선 몇가지 사례가 우리 사회가 새 모계중심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며느리냐, 형제들이냐 놓고 분분하다. 현대일가 형제들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명분과 설득력 없이 넘보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될것이다. 현재 현정은 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을 대신하여 경영을 잘하고 있고 지분 또한 적절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상속 또는 이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늘 가까이에서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보살펴주는 역할이 어머니의 몫이다 보니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는 은혜의 존재로, 아버지는 율법의 존재로 본다. 어머니란, 무슨 말이든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요구할 수 있는 존재로, 그러나 아버지는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요구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무엇인가 요구당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아버지, 그 쓸쓸하고 허전한 이름

아이가 태어난 후 몇 년까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동안, 아버지의 존재는 어머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와 먼 거리에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다른 아버지의 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아버지는 잘하는 일에는 칭찬을 하고, 못하는 일에는 징계를 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에 그의 율법적 요구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모성애가 있듯이 부성애도 존재한다. 사랑의 성격과 역할이 다를 뿐이다. 모성애는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건강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자녀일수록 문제아, 인격장애, 성격장애의 가능성도 훨씬 줄어든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모성애를 제대로 경험한 아이들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볼 줄 알고, 남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로부터 체득한 무조건적인 사랑 저 너머에 있는 세상의 질서와 규칙, 규범과 법, 미지와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한 아이가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여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되는 데에는 모성애와 부성애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면, 아버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어머니의 역할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아버지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일 것이다. 

아버지의 기를 살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운동은 봉건적 아버지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건강한 인격체로 양육하여, 휼륭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본래의 기능인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한 월간 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들의 46%가 아들이 자신을 닮기 소망한다고 답한 반면, 아버지를 닮겠다고 하는 아들은 33%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닮기를 거부하는 반수 이상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닮기를 거부하는 2/3의 아이들이 있다면, 가정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성실.우직한 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름 '아버지'

여권 신장도 좋고, 온갖 정성과 배려를 아이들에게 쏟아 붓는 것도 좋다. 그것들이 너무 지나쳐서 정작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아버지가 없다면,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여권신장에 의한 양성평등도 좋고, 모계사회도 좋다. 그것이 진정 세상의 여인들을 행복하게 할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남편이 있어서 울타리가 되어서 세상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노년이 되어서는 자식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수 있을까?

요즘 우리시대의 아버지는 속된 말로 '낙동강의 오리알'로 비유되고 있다. 
아버지란 사람은 죽어서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일지 모른다. 중년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식이 무척 서운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히끗히끗해지고 보니 세상의 모든 현상이 새롭게 보이고, 세상에 진정 '내 것'이 있는지 다시 반문해 본다. 
그러면서 아침이 되면 혹여 아들녀석들이 학교에 지각할까봐 밤잠설치고, 감기 걸릴까봐 잠자리 다시 한번 보는 것은 그것이 진정 아버지 마음일까?

아버지란 죽어서야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_1
아버지란 죽어서야 자기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_1

2009년 기축년 (己丑年), '소'의 해이다. '소'는 참으로 성실하고, 순하고, 희생적인 동물이여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것이 아버지와 조상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든든하고, 푸근한 언덕을 지닌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여유롭고, 풍요롭지 않은가? 그래서 화가  이중섭의 '소'를 비롯, 소를 그린 작품들이 많은 지도 모른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가난한 우리들의 삶에 소는 언덕이 되어준다. 
새해에는 어렵고 힘든 삶에 소처럼 듬직한 언덕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서로서로 언덕들이 되어주어 어려운 사람들이 그 언덕에 비비게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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